"돈 없는 사장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체불임금을 받지 못한 인도네시아인 '월리'의 항변

등록 2006.03.21 16:50수정 2006.03.2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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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는 사장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체불임금 300만 원을 약간 넘게 못 받은 윌리의 항변이었습니다. 체불임금 문제로 요즘 윌리는 입이 뽀로통해졌습니다.

인도네시아인 윌리는 작년 가을에 자신이 일하던 회사에서 임금을 받지 못하자, 지방노동사무소에 모 단체의 지원을 받아 진정을 냈습니다. 그러나 부도 직전이었던 업체 사장은 100만원만 받겠다면 주고, 그렇지 않다면 벌금을 물고 말겠다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월리는 임금 전액을 받겠다고 했고 사장은 주겠다는 약속만 하고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초 윌리를 도와줬던 단체에서는 더 이상 진행해 봤자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지난해 10월 지방노동사무소에서 '체불금품 확인원'을 발급받은 후 상담을 종결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말이 서툰 윌리에게 상황 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월리는 노동부를 통해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계속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가 바뀌어도 임금을 받지 못하자, 월리는 그 이유라도 제대로 알고 싶다면서 말이 통하는 우리 쉼터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쉼터에서는 윌리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그간 일이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 지방노동사무소 근로감독관에게 물어봤습니다. 담당근로감독관에 의하면, 사장이 벌금만 물겠다고 해서 형사 처벌하고 체불금품확인원을 떼줬던 건으로 사건을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a 윌리 사장의 회사 부동산 등기부등본 일부

윌리 사장의 회사 부동산 등기부등본 일부 ⓒ 고기복

결국 윌리는 노동부를 통해 체불임금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난주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무료법률서비스 지원을 받아 임금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법률구조공단에 다녀 온 윌리는 자신이 체불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설명해 달라면서 쪽지를 내밀었습니다. 그가 갖고 온 쪽지에는 해당업체의 '법인등기부등본'을 떼보라고 적혀 있었고, 인터넷을 통해 열람해 본 해당업체의 토지, 건물 등의 모든 부동산은 은행과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으로부터 압류 혹은 근저당이 설정 돼 있었습니다.

윌리에게 회사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장님 돈 없어요"라고 하자, 대뜸 하는 말이 "돈 없는 사장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월리는 사장이라는 사람은 다 돈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이 체불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는지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사장이 돈 없다면, 왜 지금도 회사가 일을 해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월급은 어떻게 줘요?"

윌리는 심기가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혀를 차면서 사장이 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외국인이라고 주지 않는 건 아닌지 물었습니다. 저는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 중 한 명이 '백만 원이라도 받지!' 하며 잊으라는 듯 등을 토닥거려 주더군요. 그 와중에 윌리의 속을 뒤집어 놓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넌, 나중에 사장하면 안 돼. 회사 망하면 돈 없어. 그거 모르면 사장 No야!"
"사장님, 에쿠스 있어. 아파트 있어. 회사 있어. 그런데 돈 없어? 거짓말이야!"

속이 상한 윌리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사업을 하다 망하는 사람을 숱하게 보아 온 제삼자의 입장에서야 돈 없는 사장이 이해가 가지만, 자신이 받아야 할 돈을 떼인 사람의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a 체불임금 상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체불임금 상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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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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