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왈츠>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소설의 산문적 아름다움과 삶의 일상적 감동이 버무려진 미학의 극치

등록 2006.03.22 17:28수정 2006.03.2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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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왈츠>에는 깨끗함과 싱싱함이 있다. 싱그러운 봄이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 같다. 작은 소품들도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다. 바로 ‘봄’처럼 말이다. 이런 봄이 가져다주는 생동감은 드라마의 역동성이 된다. 바람이 손에 잡힐 듯한 화면은 내겐 더 큰 기쁨이 된다. 넘실대는 파도와 잔잔한 파도가 한 곡의 피아노 연주곡이 되기도 하고 때론 한 폭의 수채화가 되기도 한다. 은은한 배경음악의 감동과 더불어 주인공들의 절제된 미학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낸다.


오랜만에 드라마의 미학에 빠졌다. 평소 드라마는 그다지 많이 보지 않는 편이지만 말이다. 사실 윤석호 프로듀서의 계절 시리즈 드라마를 한 편도 본 적 없다. <여름향기>를 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하지원이 나오는 <다모> 파도에 휩쓸리는 불행을 경험한 적이 있을 뿐이다. 솔직히, 무주 리조트에서 <여름향기>의 송승헌과 손예진의 촬영장면을 보고 드라마를 보려고 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윤석호 프로듀서의 <겨울연가>와 <가을동화>도 일본에서 인기가 있다는 외신뉴스를 보고 알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봄의 왈츠>는 달랐다.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내가 윤석호 프로듀서의 팬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봄의 왈츠>를 볼 때 힐끗 힐끗 보다가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 것이다. 사탕의 달콤함에 이가 썩는 줄 모르는 아이처럼 옆에서 책을 보다가 책은 남이 되고 텔레비전 모니터에 빠져든 것이다.

무엇보다도 <봄의 왈츠>는 깨끗한 드라마다. 다시 말해서 화면이 예술이다. 영화가 시적 이미지를 간직한 운율적인 아름다움이라면 드라마는 소설의 산문적 아름다움과 삶의 일상적 감동이 버무려진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긴장과 연속이 서로 엇갈려가면서 시청자들을 장시간 동안 묶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우리가 흔히 느낄 수도 있고, 우리 주변에서 볼 수도 있는 것들이다. 물론 그런 아름다움을 우리가 느끼거나 보려면 때론 시적인 직관력이 필요하고 사물에 대한 애정과 통찰력이 필요할 때도 있다.

예술적 아름다움은 그래서 일상적이면서도 뭔가 특별한 시각(視覺)을 보여준다. <봄의 왈츠>를 보면서 느낀 것은 바로 이러한 일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윤석호 프로듀서의 특별한 아름다운 시각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섬을 배경으로 펼쳐진 이수호(은원재 분)와 박은영(한소이 분)의 어린시절의 생활모습들은 슬프고 안타깝지만 시청자에게 아름답게 보인다. 물론 이런 느낌은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에서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보통 아름다운 어린시절을 떠올리는 우리들의 본성을 강하게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바다를 최대한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든 윤석호 프로듀서의 연출이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드라마의 미학은 스토리에 이끌려가는 드라마 매니악에게는 단점이 될 수 있다. 윤석호 프로듀서 드라마의 스토리는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이와 같은 아름다움 화면으로 감추려는 의도도 있겠다는 것을 시청자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스토리의 탄탄한 구성과 전개는 드라마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윤재하의 온유미와 박은영의 청순미를 돋보이게 하는 드라마
윤재하의 온유미와 박은영의 청순미를 돋보이게 하는 드라마kbs
이런 아름다운 화면은 시청자들을 현실과 동떨어진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부수적 효과를 내는데 이는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비현실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절제된 아름다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봄의 왈츠>는 이런 드라마의 감동과 미학적 접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영화 <형사(Dualist)>를 미장센이라는 마력에 이끌려 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이 <봄의 왈츠>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봄의 왈츠>에는 순수함과 청순함이 있다. 필립(다니엘 헤니 분)을 제외하고는 윤재하(서도영 분)와 박은영(한효주 분)은 청순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억지로 만들어낸 아름다움이 아니라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꾸며낸 아름다움은 순간적이다. 그렇지만 청순미와 자연미는 지속성을 갖는다. 박은영의 청순미는 은은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색의 적절한 조화로 만들어진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부드럽다. 생득적 아름다움과 절제된 아름다움이 생기발랄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윤재하의 아름다움은 정적이고 순수하다. 이준기처럼 화려하거나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분명한 얼굴선과 실루엣이 깊은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배경의 아름다움과 적절하게 조화된 윤재하의 아름다움에는 힘이 있다. 섬세하면서도 커다란 동작과 동작선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는 생각의 깊은 여운이 스며있다고 할 수 있다. 어린시절의 이수호의 아름다움이 생동감이라면 윤재하의 아름다움은 원숙미이고 삶의 고뇌로 성숙된 아름다움이다.

윤재하의 아름다움과 박은영의 아름다움이 만들어내는 미학은 순수한 자연미와 인위적인 온유미(溫柔美)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전체적으로 인간적인 아름다움과 자연적 배경의 아름다움이 적절하게 구사되어 아름다운 이미지가 진하게 배어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 구성의 상투성과 빈약함이 주는 식상함이 이런 미학에 의해 상쇄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전개과정에 섬세한 고려의 부족과 전개과정의 지나친 사건의 인위적 우연성이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려 극의 긴장의 흐름을 미리 예견할 수 있는 약점이 <봄의 왈츠>에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약점은 서스펜스와 의외성을 기대하는 시청자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드라마 구성의 복잡성이 떨어지면 시청자가 드라마에 대해 가지는 진지함과 치밀함이 떨어지게 된다.

‘화면이 참 아름답다’라고 감탄하는 아내의 말이 아직도 내 귀에서 사라지 않는 것은 <봄의 왈츠>가 주는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봄의 향기로 연결되기 때문이리라. 윤재하와 박은영이 펼치는 사랑과 갈등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는 아름다운 배경과 어떻게 조화되고 대비되는 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교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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