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혼선이다. 어떤 의원은 정원 내 10%를, 어떤 의원은 정원 외 5%를 주장한다. 실업고 학생 대입 특별전형 비율을 놓고 엇박자를 치는 열린우리당의 모습은 꼴불견에 가깝다. 설익은 방안을 흘려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한 이유마저 불온해 보인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급조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소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설익은 입놀림이 보수 언론과 대학의 해묵은 편견을 드러냈다. 이런 경우다.
여당의 설익은 입놀림과 보수언론·대학의 해묵은 편견
<조선일보>는 오늘자에서 "실업고생 대학 정원 외 입학확대 명암"을 전했다. 실업고는 대환영인 반면 대학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고 한다. 대학이 깊은 시름에 빠진 이유는 하나, 실업고생의 학업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를 거리낌 없이 내미는 데는 전제가 깔려있다. "대학은 우수한 인재를 받아 경쟁력 있게 키우는 곳"이라는 전제다.
얼핏 봐선 하자가 없다. 구체적인 조사결과까지 제시했으니 이 전제의 타당성은 한층 강화되는 것 같다. 2005년에 정원 외 3% 특별전형으로 실업고생 48명을 선발한 서강대가 이들의 지난 1년간 학업성취도를 분석하는 중인데 솔직히 실망스럽다고 하고, 올해까지 3년간 정원 외 1% 이내에서 실업고생 특별전형을 실시한 고려대도 2개 영역 2등급 이내 자격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지망자가 계속 미달된다고 한다.
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 실업고의 본래 목적이 산업기술인력을 배출하는 것인데 왜 대입에 초점을 맞춰 본래 목적을 변질시키려 하느냐고 지적한다면 공론거리로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실업고생은 학력이 떨어진다는 식의 주장이라면 반대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 2일 보도한 사례다. 7차 교육과정 들어 선택과목이 많아지면서 수험생들이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물리, 화학 등을 기피하는 탓에 이공계 신입생들의 기초지식이 부족해서 일부 대학이 '과외'에 나섰다고 한다. 성균관대는 신입생 자율학습 동아리를 통해 수학 등 기초과목을 공부시키고 있고, 연세대는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투터링 제도'를 운영 중이라고 한다.
서강대를 기준으로 할 경우 '공부 못하는 실업고생'은 48명에 불과하다. 규모가 이 정도라면 성균관대나 연세대처럼 '과외'를 시킬 수는 없는 걸까? 실업고생은 '과외'를 해도 안되는 둔재인가?
대학은 왜 실업고생의 열등성을 강조하는가
단순무식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있다. 김우식 과학기술부총리는 지난 6일 '국정브리핑'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공계 학생들이 갖춰야 할 요건 중에 하나가 창의적 설계기술입니다. 이 설계기술은 단순히 제도판 위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구상하는 것입니다."
김부총리가 말한 '머리'는 창의성이다. "모든 과학기술의 바탕은 창의성"이라며 이것이 빠지면 "김빠진 맥주"와 다름 없다고 했다.
그럼 창의성은 어떻게 배양될까? 수학공식이나 물리·화학법칙을 달달 외워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건 상식이다. 창의성의 바탕은 현실적 요구다. '수요를 반영한 새로운 생각'이다. 기발하기는 하나 현실성이 없으면 그건 창의가 아니라 황당으로 흐른다.
그럼 묻자. 실업고생은 이공계 학생의 최대 덕목인 창의성에 근접해 있는가? 기초지식은 그렇다 치자. 그럼 창의성마저 일반고생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가?
숱한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일반고 입시교육이 암기와 찍기 위주로 돼 있다는 데 이견이 별로 없다는 점, 실업고 교육은 현장 중심의 실무교육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실업고생이 창의성마저 떨어진다는 주장은 쉽게 내놓을 수 없다. 오히려 창의성의 바탕인 현실적 요구에 대한 인지·경험 측면에선 실업고생이 일반고생에 뒤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내놓을 수 있다.
그런데도 대학은 왜 거리낌 없이 기초지식을 빌미 삼아 실업고생의 열등성을 강조하는가? 큰 질문을 던지고 나니 파생 질문이 나온다. 혹시, 대학은 과학과 기술을 기계적으로 나눠 사고하는 건 아닌가? 고매한 '과학자'와 미천한 '공돌이'의 케케묵은 이분법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닌가?
여당이여, 발상이 좋다고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단정할 순 없다.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학생들의 학습이해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교육의 본령이다. 그건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는 것이다. 특히 교육단위가 고등교육기관이라면 '가능성 교육'에 대한 강조는 재삼재사 되풀이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업고생의 '학력 저하' 못잖게 심각한 문제는 이공계 대학의 획일화다. 다른 대학과 비슷한 커리큘럼에 다른 대학과 비슷한 교수방법이 지속되는 한 '평균 교육'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고, 그러다보니 '평균 학력'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창의성 교육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짚고 논의해야 할 사안은 이처럼 많은데 논의는 이상한 데로 흐르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혼선과 정치적 저의가 집중 부각되면서 사안의 본질이 묻히고 있다. 아니 도매금으로 넘겨지면서 정당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발상이 좋다고 결과가 좋으란 법은 없다는 세상살이의 자그마한 이치가 거듭 확인되고 있다. 발상 못잖게 과정과 경위도 정당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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