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욱 장편소설> 762년 - 17회

난파선(難破船)

등록 2006.03.23 16:14수정 2006.03.2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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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용천부는 동모산에서 동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목단강 유역에 있었다. 상경용천부의 도성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한가운데 자리잡았다. 이곳은 경박호에서 시작된 목단강이 흐르고 있어 삼면이 천연의 해지를 이룬다. 또한 강 주위로 충적평야가 이루어져 땅이 걸고 물길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도성은 기본적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외성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졌다. 동서의 길이는 그보다 훨씬 길었다. 외성으로 들어서자 여러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마을 한 가운데 성을 둘로 가르는 큰 길이 뚫려 있었다. 이 길을 중심으로 도성을 82개의 방(坊)으로 구획해놓았다. 이 모양은 당의 장안 성처럼 중앙에 주작 대로를 놓고 그 주변에 조방제(條坊制)에 따라 방으로 구획한 것이다.


이러한 수도 상경용천부의 형태와 구조는 대부분 왕신복 자신이 직접 계획하고 설계한 것이다. 그는 당나라의 빈공과에 합격하여 그곳에서 오랫동안 중앙 관리로 있으면서 장안성의 형태를 연구하여 이곳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당시 상경용천부의 규모는 천하의 장안성 다음으로 큰 것으로 만주 최대의 도시이기도 했다.

문왕이 처음 수도를 동모산에서 상경용천부로 옮기려고 계획했을 때 안팎으로 수많은 반대에 직면했다. 반대의 이유는 시조 대조영의 혼이 깃든 이곳을 떠날 수 없을 뿐더러, 주변 국가와의 영토 전쟁을 위해서도 동모산이 더 알맞다는 것이었다. 문왕이 동모산 대신 내륙으로 깊이 들어간 상경용천부로 수도를 옮기고자 한 것은 전쟁을 중단하고 내치를 다지기 위해서였다.

문왕은 그 앞의 무왕과 달랐다. 무왕이 정복 전쟁을 벌이면서 사방으로 힘을 뻗쳤다고 한다면,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무왕 대흠무는 내부로 힘을 결집시켜 여러 제도를 정비해 나갔다. 문왕이란 시호도 이러한 그의 업적 때문에 붙여졌다. 발해 최초의 문민왕인 것이다.

그는 당나라 문물제도를 받아들여 통치제도를 마련하였고, 유학과 불교도 진작시켰다. 무왕은 자신을 불교의 이상적인 통치자인 전륜성왕(轉輪聖王)에 비겼고, 일본에 대해서는 스스로 하늘의 자손(天孫)임을 과시했다. 이러한 문왕의 행보는 당연히 무인들에게는 커다란 위기감을 안겨주었다.

발해는 건국부터 지금까지 왕을 비롯한 모든 고위 관리들이 무인들이었다. 무인들이 발해의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벌임과 동시에 내정도 함께 다스려왔다. 그러던 것이 문왕이 즉위를 하면서 주변 국가와의 전쟁을 중지하고, 인재도 무인대신 문인들을 등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인들의 끊임없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왕은 수도 이전을 강행했다. 무인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할 태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강한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이에 무인들이 반란까지 계획하고 그 실천에 옮기려 했지만, 민심을 등에 업은 문왕을 함부로 내칠 순 없었다. 그들은 일단 거사를 중단하고 후일을 도모하기로 했다.

그렇게 어렵게 천도를 한 곳이라 왕신복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작 대로를 거닐며 성문 안을 둘러보았다.


궁성과 황성 앞의 가운데에는 광장이 펼쳐져 있고, 양쪽으로 관청들과 절들이 자리 잡았다. 이 집들은 흙을 다진 기초 위에 흙벽돌로 벽을 쌓고 푸른 기와를 잇고 있었다. 그 관청들 뒤편으로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시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갖은 물건을 놓고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여기 시장에는 발해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교역을 벌였다. 키와 코가 크고 눈이 푸른 백인들도 있었다.

왕신복이 다가가자 그 백인이 거푸집에서 청동거울을 끄집어내며 이야기를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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