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민 59% "노력해도 격차 극복 못할 것"

양극화 심화로 패배의식 확산... 젊은층 비정규직 증가로 연금 고갈 우려도

등록 2006.03.24 19:14수정 2006.04.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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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현재 일본에서도 '양극화'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도 '양극화'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 flickr.com

일본 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원의 임극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이 23일 발표한 '2005년 임금구조 기본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이 정규직의 약 60%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사원(평균 40.4세, 근속 12.9년)의 평균 임금이 월 31만8500엔인 것에 비해, 계약이나 파견 등의 비정규직(평균 42.9세, 근속 5.7년)은 19만1400엔에 그쳤다.

특히 비정규직 사원의 임금은 20대 전반에는 정규직의 86% 수준을 유지했으나, 40대 전반에는 60%, 40대 후반에는 56%에 머무는 등 연령이 높아질수록 임금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후생성은 격차 요인에 대해 "정규직 사원은 승진 등으로 임금이 오르거나 근속 연수가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젊은 층에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프리터 등 비정규직이 많으므로 앞으로 소득 격차가 더욱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사회 양극화 심화... 고이즈미 '구조개혁' 탓?

최근 일본에서도 사회 전반에 걸쳐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이른바 '격차사회'가 도래할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종 규제완화와 도로공단 민영화 등 '공평한 경쟁'을 주장해 온 고이즈미 정권의 구조 개혁이 양극화 심화를 불러일으켰다는 불만도 팽배해지고 있다.

일본 최대 노조연합단체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가 지난 2월 발표한 '고이즈미 총리의 격차사회 인식'에 따르면, 저축을 전혀 할 수 없는 '저축 제로 세대'는 2005년 23.8%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 결과는 1963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악의 수준이다. 그러나 저축 보유 세대의 평균 저축액은 오히려 증가해 2004년에 1544만원을 기록, 1997년 대비 20%나 증가하며 일본 사회의 '자산 격차'를 여실히 드러냈다.


고이즈미 총리가 취임한 2002년에 78만 세대였던 생활보호 수급 세대도 2005년에는 약 104만 세대로 급증했다. 또 경제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일본의 빈곤율이 15.3%로 가입국 24개 중 5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지니계수'도 2001년 0.47에서 2005년에는 0.50으로 상승했다. "지니 계수 0.50"은 소득 상위 25%의 사람들이 총 소득액의 75%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으로, 그 만큼 '소득 격차'가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지역간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일 내각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2003년도 현민 경제 계산'에 따르면, 각 지방별 1인당 소득 격차가 2년 연속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1위를 차지한 도쿄도와 최하위의 오키나와현의 차는 222만 5000엔으로 2002년도의 209만 4000엔에서 13만 1000엔이나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지방 보조금 삭감 등 고이즈미 정권의 구조 개혁으로 공공 사업이 급감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소득 격차 확대되고 있다" 81%

그러나 문제는 이런 '숫자'보다는 일본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양극화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11~12일 양일간 실시한 조사에서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81%를 기록했다. 일본여론조사회에서 실시한 동일한 조사에서는 87%에 달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격차 사회'에 관한 국회 답변에서 "고령자 세대의 증가, (독신 세대 등) 세대 구성원 감소 등의 세대 구조 변화를 감안하면 소득 격차의 확대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하면서 "승자, 패자가 고정화되어서는 안 된다, 한 번 지더라도 다시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현재 '격차'가 점차 고정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미우리신문>의 조사에서 "오늘날 일본은 노력하면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인가"라는 질문에 59%의 사람이 "극복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일본의 대표적 블로그 사이트인 'exite'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도 "격차는 앞으로도 확대될 것"이라는 응답이 70.8%로 가장 많았다.

'화물의 진화'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일본의 한 블로거는 이와 관련해 "격차 사회는 경쟁 사회를 부추겨 사회의 활력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 목적이지만, 현 상황을 감안해 볼 때 격차 사회라는 시스템은 결국 '격차의 고정화'를 가져올 뿐" 이라고 지적했다. 또 "격차사회의 문제점은 그 격차가 '인간의 차(差)를 의미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격차 사회는 격차를 해소하는 또 하나의 힘을 갖추고 있어야 그 사회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 면서 "그러나 현재 그 힘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고, 격차를 부정화는 주장마저 '가치관의 상대화' 라는 이론에 밀려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고 덧붙였다.

"격차의 재생산"

일본 사회가 양극화 문제에 더욱 당황하는 것은 현재의 격차가 장래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특히 가계의 소득 격차가 자녀의 학력 및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교육 격차'의 확대가 우려되고 있다.

<자녀 미래 재단>은 지난해 10월, 20~44세의 기혼 남녀 약 2400명을 대상으로 가계 소득을 연간 '200만엔 미만'에서 '1000만엔 미만' 등 6개로 분류하여 대학 진학률과 과외비 등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연간 소득 1000만 이상의 가계에서는 89%가 자녀의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고 있는 것에 비해, 200만~400만엔 미만에서는 44%, 400만~600만엔 미만은 60%를 기록했다. 특히 200만엔 미만 가계에서는 30%가 특별히 희망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또 과외 지출 비용도 부모의 소득과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교도통신>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도 "가계의 소득 격차 확대가 아이들의 학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교사가 50%를 웃도는 등 부모의 소득 수준이 자녀들의 학력과 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에하라 세이지 민주당 대표는 지난 2월28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현재의 격차가 장래의 격차로 이어지는 상황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학력이 따라주지 않아 정규직사원에 채용되지 못하는 등 '격차의 재상산'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의 젊은층에는 '프리터'나 파트타이머 등 비정규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2차세계 대전 이후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이른바 '단카이 세대'가 2007년 정년 퇴직을 맞으면서 연금으로 생활하는 '연금 생활자'가 대거 증가할 전망이지만, 젊은층의 국민연금 미납자 및 미가입자가 급증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요인들은 앞으로 일본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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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국제부에서 일본관련및 일본어판 준비를 맡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2년간 채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 대학원 한일 통번역을 전공하였습니다. 현재는 휴학중입니다만, 앞으로 일본과 한국간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기사를 독자들과 공유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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