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보다 10년 젊게 입어야 돼"

온수리 재활용 옷 가게서 만나는 이야기들

등록 2006.03.26 09:38수정 2006.03.2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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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고 산 거도 아닌데 철만 바뀌면 입을 옷이 마땅찮아서 고민이다. 옷장에는 옷이 차고 넘치는데도 막상 입고 나서려고 보면 입을 옷이 없다. 그래서 또 사고 또 사게 되는 게 옷이다.


철이 바뀌자 옷장 정리를 했다. 이 옷 저 옷, 옷도 많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입은 옷도 있다. 버리기엔 아까워서 그냥 두었는데 역시 작년에도 한 번도 안 입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과감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막상 옷장 정리를 하고나니 옷을 처분하기가 마땅찮다. 버리기엔 아깝고 누구 주기에는 좀 그렇고. 이걸 어떡한다지?

우리 이웃 동네(강화도 길상면 온수리)엔 재활용 옷을 파는 가게가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길가 맨바닥에 그냥 매트 한 장 깔고 그 위에 두서없이 옷을 펼쳐놓고 장사를 했다. 그러다가 점점 손님들이 찾기 시작했고 단골고객들이 생겼다. 지금은 구석진 곳이긴 하지만 번듯한 가게를 얻어서 이제는 매일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장족의 발전을 했다.

연탄재도 쌓여있는 구석진 곳에 있는 재활용 옷가게
연탄재도 쌓여있는 구석진 곳에 있는 재활용 옷가게이승숙
언젠가 저녁 무렵에 그 가게에 들른 적이 있었다. 외상으로 가져간 옷값을 치르기 위해서 가게에 들렀는데 그 언니는 차 한잔 하라며 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나는 그 곳에서 맨 바닥을 차고 올라온 언니의 성공담을 들을 수 있었다.

나라 경제가 안 좋았던 아이엠에프 시대를 지나면서 그 언니네도 하던 사업이 어려워졌단다. 대학 다니는 자녀 둘에 시부모님까지 모시고 사는 대식구였는데 생활비까지 바닥날 정도로 어려운 처지에 빠졌단다. 몰리고 몰리자 체면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었단다. 그래서 언니는 누구 소개로 재활용 옷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더란다.

그 언니는 처음 하는 장사인지라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죽을 각오로 했다고 한다. 텃세가 심해서 펴보지도 못하고 쫓겨 간 적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비가 와서 중간에 전을 걷기도 했단다. 그렇게 하다가 구석진 곳이지만 가게를 얻게 되었고 이제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가게를 열 수 있고 또 앉아서 사람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언니는 성공한 거다.


들머리에도 옷을 걸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 눈길을 끈다
들머리에도 옷을 걸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 눈길을 끈다이승숙
온수리 옷가게는 이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기까지에는 그 언니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많이 작용했으리라.

이곳은 시골인지라 버스가 하루에 몇 번 안 다니는 곳도 많다. 볼 일 보러 면소재지에 나온 사람들이 볼 일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린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차를 운전해서 나들이를 하지만 나이 드신 어른들은 그저 하루에 몇 번 안 다니는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옷집 언니는 그런 어른들을 보면 차 시간이 될 때까지 쉬었다가 가시라고 청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찾아오는 할머니들에게 뜨거운 차도 대접하고 이런 저런 말벗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 곳은 이제 쉼터이자 사교의 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심심하거나 말벗이 필요할 때 그 곳에 가면 언제나 웃으면서 반겨주는 언니가 있고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 주고받는 여인들이 있다. 몇 천 원밖에 안하는 옷들을 마음대로 골라가며 입다 보면 기분도 좋아지고 괜히 신이 나기도 한다.

옷집에 가면 이런 옷 입어봐라 저 옷이 어울리겠다 그러면서 서로 추천도 하고 품평도 해준다. 나이랑 몸매 신경 쓰지 말고 내 마음에 드는 옷으로 골라서 입어라 충고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잔뜩 가져다놓고 입어보고 거울에 내 모습 비춰보며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간다.

연탄난로 위에 있는 주전자에는 항상 따뜻한 물이 준비되어 있다.
연탄난로 위에 있는 주전자에는 항상 따뜻한 물이 준비되어 있다.이승숙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기분 전환도 하고 옷 걱정도 없앨 수 있으니 온수리 재활용 옷집은 이제 우리들에겐 없어서는 안될 집이 되었다.

"이제 비싼 돈 주고 옷 못 사겠어. 여기 오면 옷 싸게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뭐하려고 돈 많이 주고 옷 사?"
"그러게 말이야. 다음 주에 제주도로 가족여행 갈 건데 옷 좀 골라줘 봐."
"아이고 뭐든 입으면 다 예쁘네. 몸매 예쁜 사람들은 얼마나 좋아 입으면 다 내 것이니."

"아유, 언니도 매력 있어요. 뚱뚱하다고 펑퍼짐하게 입으면 안 돼요. 자신 있게 딱 붙는 걸로 입고 볼륨을 강조하세요. 그러면 더 멋져."
"나이보다 10년 젊게 옷 입어야 돼. 그래야 젊어져."
"맞아, 맞아, 젊게 입으면 젊어져. 그러니 언니도 이런 옷으로 입어 봐."

온수리 옷가게에서는 오늘도 내일도 파티가 벌어진다.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나를 드러내며 살아가는 여인들의 파안대소가 떠날 줄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계절이 바뀌면 어느 집 없이 옷장 정리를 합니다. 옷이 많아도 즐겨 입는 옷은 얼마 안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옷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대기중입니다. 몸이 가벼우면 행동이 빠른 것처럼 옷장에도 여유를 주어야겠습니다. 그러면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겠지요.

덧붙이는 글 계절이 바뀌면 어느 집 없이 옷장 정리를 합니다. 옷이 많아도 즐겨 입는 옷은 얼마 안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옷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대기중입니다. 몸이 가벼우면 행동이 빠른 것처럼 옷장에도 여유를 주어야겠습니다. 그러면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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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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