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정희재가 마음으로 본 티베트

정희재가 쓴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를 읽고

등록 2006.03.27 19:53수정 2006.03.2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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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불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티베트는 누구에게나 성스러운 장소로 통한다. 중국인들에 의해 티베트인들이 억압받고 있는 비극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또한 친일파가 그랬듯 중국인들에 협조하는 티베트인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와도 티베트는 여전히 티베트로 다가온다. 달라이 라마의 정신이 영원히 배어있는 곳, 이 세상의 성스러움이 살아있는 곳으로.

정희재도 그런 마음을 지녀서일까. 다른 이들보다 티베트에 한걸음 다가서 있는 정희재는 언제라도 티베트로 떠날 준비를 한 순례자다. 티베트에 가자면 주저 않고 동행해줄 것 같은 그녀, 누가 티베트에 대해 물어본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엇이든 다 말해줄 것만 같은 그녀는 한국인 속의 티베트인이다. 몸은 비록 한국인일지언정 마음은 오롯이 티베트인의 그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는 그런 정희재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난 티베트 순례기다. 그녀는 인도와 네팔 등에서 많은 티베트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에서 절망감을 느낀다. 그들은 어렵게, 아주 어렵게 티베트를 탈출해 나와 교육을 받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나라에 힘을 보태려고 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가 어렵다.

한국만 해도 중국 눈치를 보느라고 티베트에 민감한데 다른 나라들이라고 오죽할까. 고국 잃은 그들이 해외에서 딱히 무얼 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교육은커녕 살아가는 방안을 찾기도 어려울 테니 말이다.

꿈에 나는 티베트에 있었네
하지만 깨어 보니 여기는 인도 땅
너무나 슬펐다네
여보게, 티베트인들아
제 한 몸 돌보고 살아가는 일에만 애쓰지 마세
우리 조국은 중국 손아귀에 갇혀 있다네
7백만도 넘는 중국인들이 티베트 땅에 있다네
수천 명의 티베트인들이 죽어 가고 있지
시간은 혹독하게 지나가게
(…)
인생 최고의 행복은 자유로운 내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라네.

티베트인들의 노래 - '얼마나 슬픈가'


그러나 정희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한다. 지옥을 연상케 하는 히말라야를 넘어 탈출하는 티베트인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나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 마음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다. 불과 백년도 안 되는 과거에 우리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때, 중국의 모진 땅에서 독립을 꿈꿨던 독립 운동가들과 그들을 도와줬던 민초들이 희망의 열매를 만들어냈듯 티베트인들도 그 마음을 지녔기에, 더욱이 그들에게는 달라이 라마가 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감격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만난 정희재는 곧장 티베트로 향한다. 정희재도 이유를 딱히 설명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티베트, 그곳이 자신을 호명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심을 굳힌 정희재는 불법 내륙 진입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한다. 본래 티베트를 관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국으로부터 허가서만 받으면 된다.

하지만 허가서를 받지 않는다면 상황은 180도로 뒤바뀐다. 정희재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위험한 길을 택한 게다. 중국 관광 산업에 돈을 보태 주기 싫기도 하거니와 티베트 점령에 대한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다.

"이번 티베트 여행에서 나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히말라야를 횡단하며 티베트를 탈출한 내 친구들의 심정과 고생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기 위해서 편하고 쉬운 길만을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것, 그리고 티베트를 침략해 유린하고 있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라도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는 중국 당국의 정책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 것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희재는 시도한다. 위기는 매순간 찾아온다. 그러나 마음이 진실하기 때문인지 정희재는 우여곡절 끝에 해발 6714미터에 자리 잡은 티베트의 카일라스 산을 도착한다.

정희재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는가? 믿고 싶지 않았던 것들, 중국의 유흥문화에 젖어가고, 나약해지는 티베트인들을 본다. 그리고 살벌하게 티베트를 지배하는 중국의 실체를 확인한다. 그러나 정희재는 실망하지 않는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그곳에서 찾기 때문이다.

정희재는 느낀다. 가난한 이들이 오체투지로 오는 그 심정을. 그리하여 깨닫게 된다. 만족이라는 것,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무 곳에서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티베트의 카일라스 산에 있다 하여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티베트인들처럼 티베트인들의 마음으로 고된 여정을 거쳐 그곳에서 세상을 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순례자들처럼 말이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산, 그 속에 불멸을 얻은 깨달은 존재들이 살고 있다는 카일라스 산이다. 이곳에서 내가 저지른 모든 악들이 두려워진다. 깨어 있지 않았기에, 몰랐기에 저지른 실수와 죄악들, 중국인들이 발산하는 폭력에 티베트인들의 무한한 연민의 마음을 가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행동하는 이의 가난한 마음." -책 속에서


글이 마음을 닮은 것일까.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는 아름답다. 성스러운 곳에서 조금이마나 겸손해지려는, 순례자가 되어 세상을 보려는 마음을 닮은 글이기에 글을 두고 아름답다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또 한 명의 티베트인 정희재, 그녀를 쫓아 티베트를 보자. 실망스러운 소식이 들려온다 할지라도 동경하는 그곳, 영원하기를 바라는 그곳에 희망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테니까. 또한 함께 느낄 수 있을테니까. 또 한 명의 티베트인이 되는 기이한 그것을.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 - 희망과 치유의 티베트.인도 순례기

정희재 지음,
샘터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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