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97회

등록 2006.03.28 08:25수정 2006.03.2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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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자들이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많은 사람들을 현혹해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는가? 현 대명 역시 그렇게 세워진 것이 아닌가 말일세.”

“우리는 다르오.”


“모두들 그렇게 말을 했다네. 하지만 결국 모용화천은 현 황실을 몰아내고 자신의 일족을 영원히 황실에 들어앉히고 세세손손 부와 권력을 독점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네.”

“그분은 다를 것이고 우리들이 그렇게 되도록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오.”

“대명 역시 그랬다네. 하지만 그렇게 세운 현 대명에 남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모두 숙청당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지. 그래서 자네가 후회할 것이라 말한 것일세.”

“육노조의 말씀대로 후회될 일이 발생한다 해도 나는 할 것이오. 육노조가 생각하는 망상을 꿈꿨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오.”

누가 옳은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없다. 언제나 새로운 시도가 옳았다고 할 수도 없고, 기존의 틀 속에서 안주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도 없다. 틀을 깨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어 왔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 또한 계속되어 온 것이 우리의 역사다.


“그렇게 큰 뜻을 품은 자가 고작 자신의 아내를 인질삼아 목숨을 구걸한단 말인가? 자네는 정말..... 쯧쯧.....”

“아직 나에게는 할 일이 많고, 이렇게라도 하도록 강요한 것은 육노조였소.”


“아무리 옳은 뜻을 품었다 해도 목적이 수단까지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니야.”

사람들은 왕왕 오해를 한다. 원대하고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신념이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명을 한다. 목적을 이루고 나면 모두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육능풍이 꾸짖듯 말하자 여후량의 얼굴이 붉어졌다. 허나 그는 아내를 밀면서 한발자국 나섰다.

“이제 비켜 주시겠소?”

그 때였다. 여후량의 진로를 방해하듯 한 걸음 앞으로 나선 강환도(剛環刀) 위인충(魏絪沖)이 차갑게 말을 밷았다.

“죄인 여후량이 제시한 면사철부의 효력은 이 순간부터 사라진다.”

“이미 알고 있으니 굳이 강조할 필요 없소.”

“그렇다면 보주를 인질로 잡아도 본 보를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겠군.”

그 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병장기가 부닥치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억---! 윽----!”

동시에 고막을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소리가 뒤따랐다.

“어떤 놈들이냐? 감히 철혈보에 들어와 난동을 부리다니 죽기로 작정들 한 모양이구나.”

바로 철혈보 네 개의 기둥 중 일편(一鞭)인 무적신편(無敵神鞭) 신철(申鐵)의 고함소리였다. 그 소리는 어둠을 뚫고 철혈보 기둥을 뒤흔들 정도였다. 여후량의 입가에 득의의 미소가 흘렀다.

“이제 온 모양이군.”

뜻밖의 소란과 여후량의 중얼거림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진독수가 잠시 긴장을 늦추는 듯한 여후량의 태도에 한 순간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우수를 흔들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만개한 화영(花影)이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주위는 마치 봄날 화창한 꽃들이 피어난 듯 계화(桂花)의 향기가 가득 찼다.

스으으----!

보이지 않는 지풍이 비수를 쥐고 있는 여후량의 손목과 미간을 향해 쏘아졌다. 그의 독문무공인 만향지(滿香指)였는데,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모든 상황을 끝내야 하는 만큼 그의 손속에는 추호도 용서가 없었다.

갑작스런 진독수의 기습에 변변한 무공을 익히지 못한 여후량은 어찌해 볼 사이도 없이 제압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진독수의 기습은 시기적으로 적절했고 노련했다. 허나 진독수가 공격을 하는 것과 동시에 천정의 일부가 내려앉으며 진독수를 향해 위맹한 장력이 쏘아오고 있었다.

우찌끈---- 슈우욱---!

그 장력은 매우 특이해 공기의 진동이 심하게 느껴지는 반면에 변화가 매우 심해 어느 방향에서 다가오는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진독수가 더 이상 여후량을 공격하지 못하고 신형을 좌측으로 옮기며 천정에서 내려오는 인물과 마주쳐갔다.

파직---파지직---!

지풍과 장력이 부딪치며 역겨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위의 공기도 일순 폭풍이 몰아치는 것과 같이 방 안에 있는 인물들의 옷을 휘날리게 했다. 여후량과 독고향이 몸이 움찔거리며 옆으로 한발자국 밀려날 정도였다.

“웬 놈들이냐?”

위인충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진독수 옆으로 다가들었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스르르르-----

천정에서 미풍이 일며 다섯 명의 인물들이 방안으로 내려섰다. 한결같이 짙은 청의를 걸치고 있었는데, 육순 정도로 보이는 노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십대의 사내들이었다.

노인은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청수하고 머리를 틀어 올려 옥잠을 꽂은 모양이 도가(道家)에 몸담고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정순한 눈빛과 백발, 적당히 기른 흰 수염이 심후한 공부의 경지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단망인(斷網印)인가?”

큰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육능풍이 말을 던졌다. 단망인(斷網印)은 공동파(崆峒派)의 초절정독문장법이다. 장법이면서도 그 위력이 마치 비수처럼 날카롭다고 해서 붙여진 장법으로 그 변화가 괴이하고 치명적이어서 공동파 절정의 장법으로 알려져 있다.

“진노선배와 육선배의 얘기는 많이 들었소.”

부인하지 않았다. 독문무공이라는 것은 아무리 변형해도 그 근본과 특징이 있는 법이다. 단망인이 분명했다. 허나 육능풍이 애써 기억을 더듬었지만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노인이 누구인지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공동의 제자인가?”

“한 때는 그랬소. 허허... 지금은 도호마저 잊어버렸지만..... 그저 청룡기주(靑龍旗主)라 아시면 될 것이오.”

천동의 오행기(五行旗) 중 청룡기주인 모양이었다. 허나 육능풍을 비롯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명칭이었다. 육능풍은 빠르게 뇌리를 굴렸다.

(청룡기주라....? 보이지 않았던 모용화천의 세력이 이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 더구나 자신의 지위를 떳떳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설 모양이군.)

육능풍이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노인은 방 안을 가볍게 훑고는 여후량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본 기주가 조금 지체하는 바람에 안량(岸亮)이 곤욕을 치렀군. 미안하게 되었네.”

안량은 여후량의 호(號)다. 친근한 말투가 이미 여후량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별 말씀을..... 기주께 성가시게 해 드린 것은 모두 제가 부주의한 탓입니다.”

“자네는 지금까지 모든 일을 훌륭하게 처리해왔네. 그 점에 있어서는 동주(洞主)께서도 매우 흡족해하고 계시네. 더구나 자네는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사람이네.”

“기주께서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는 무의식중에 자신의 아내의 목젖에 갖다댔던 비수를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헌데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숙였던 고개를 들던 여후량의 눈이 부릅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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