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99회

등록 2006.03.30 08:20수정 2006.03.3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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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宋代) 궁궐지인 용대(龍臺) 근처의 마을 남쪽으로 꽤 커다란 규모의 장원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언제부터 그곳을 이가장(李家莊)으로 불렀는지 알 수는 없었다. 아마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일찍 죽은 아내를 기리며 아내의 부모, 장인장모(丈人丈母)를 모시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그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은 한 때 대단한 부호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그곳은 인적이 드물 정도로 황량하게 변했고, 누가 그곳에 사는지 동네 사람들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부쩍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언뜻 보기에도 무림인들처럼 보이자 접근을 꺼려하는 형편이었다.


간간이 야조의 파드닥거리는 소리만 적막을 깨는 어둠이 짙게 깔린 술시(戌時) 말이었다. 갑자기 멀리서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일며 땅을 박차는 급박한 소리가 들렸다. 곧 이어 어둠을 가르며 빠르게 이가장을 향해 다가오는 사내가 있었다.

빠르기는 했지만 그의 움직임은 어딘지 부자연스러워 부상을 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사내는 이가장 쪽으로 다가와서는 정문이 아닌 우측으로 담을 타고 돌아가 잠시 멈추었는데 그곳에는 원형의 조그만 쪽문이 있었다.

똑...또...똑똑똑.....

마치 무슨 신호를 보내듯 문을 두드리자 어느 순간 문이 열리며 사내의 신형은 빨려 들어가듯 그 안으로 사라졌다. 헌데 곧 이어 세 줄기 파공음이 들리더니 사내가 사라진 문 쪽으로 내려서는 것이 아닌가?

한결같이 흑의를 걸치고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검은색 면구를 쓴 모습이었다. 그들의 감정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빼꼼히 뚫린 구멍에서 쏘아 나오는 눈빛 뿐. 그들은 이가장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멈추어 서서 어둠에 묻힌 이가장을 응시했다.


“결국 한 놈을 놓쳤군.”

우측에 있던 인물이 실망스런 어조로 중얼거리자 중앙에 서 있던 인물이 머리를 흔들면서 말을 받았다.


“대단한 놈이야. 그렇게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도 여기까지 도망을 칠 수 있었으니....”

“일이 급박하게 된 것 같아. 빨리 보고를 올리는 게 좋겠군.”

“어쩌면 기주(旗主)께서 시기를 앞당길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한 놈이 저곳으로 들어간 이상 서둘러야 할 것 아닌가?”

“자네가 가도록 하게. 우리는 남아서 이곳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네.”

“그러지.”

중앙에 서있던 인물이 대답과 동시에 그들이 날아 온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허나 그 사내는 땅을 두 번 박차기 이전에 나무 위에서 쏘아지는 검날에 몸을 홱 비틀었다.

“네 놈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대접을 소홀히 해 그냥 보내면 남들이 욕할 게 아닌가?”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더구나 급히 피하는 흑의면구사내를 향해 틈을 주지 않고 연속적으로 세 번의 공격을 했기 때문에 흑의면구사내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급기야 몸을 땅에 대고 구를 수밖에 없었다.

“헛.....!”

그것을 본 두 명의 흑의면구사내가 빠르게 나무 위에서 나타난 인물을 향해 날아들었다. 한 명은 권법을 익힌 자 같았는데 두 주먹을 뻗자 위맹한 기운이 요동치며 몰아쳐 왔다. 더구나 그의 양 주먹은 기이한 각도로 꺾여 들어왔기 때문에 일순 나무 위에서 나타난 사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흑의면구사내의 권법은 중원에서 볼 수 있는 초식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흑의면구사내 역시 어느새 폭이 얇고 매끄러운 기형도(奇形刀)를 뽑아들고 일직선으로 찔러왔는데 너무나 빨라 대처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으음....한 가닥 하는 놈들이군....”

나무 위에서 나타난 인물이 침음성을 흘리며 쏘아오는 도를 튕겨냄과 동시에 몸을 비틀며 빠르게 발을 뻗어 파고드는 흑의면구사내의 주먹을 비껴나가게 했다. 허나 발과 주먹이 마주치는 순간 마치 바위를 찬 듯한 느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단한 자들이다!)

그가 신형을 바로 하는 순간 이미 세 명의 흑의면구사내는 그를 품자(品字) 형태로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은 한 인물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포위한 형국이었지만 흑의면구 사내들은 금방 그것이 오산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은 상대의 본거지가 있는 곳이었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모를 자들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이쪽저쪽 인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 십여 명의 인물들이 조용히 나타나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역시 균대위는 무시할 자들이 아니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것일까? 땅을 구르다 일어난 흑의면구사내가 옷을 털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미 여기 이가장이 어디인지를 알고 있다는 의미.

“그것을 알면서 이곳까지 왔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군. 여러 소리 할 필요는 없겠지?”

흑의면구사내를 공격했던 인물이 다시 차갑게 말을 밷았다. 그리고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위에 나타난 인물들은 소리 없이 세 명의 흑의면구 사내들을 공격해 가기 시작했다.

-----------

“우조장(于助長).... 어찌된 일이지?”

단사는 의외의 사태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않고 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까? 이 일은 아주 심각했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그 때문에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심한 부상을 입은 수하였지만 붙들고 상황파악을 먼저 해야 했다.

“일이 터졌소. 주모께서 이곳에 아직 도착하시지 않았다면...”

단사 앞에 부복해 있는 사내는 흑의면구사내들에게 쫓기다가 이가장으로 들어 간 인물이었다. 단사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도착하시지 않았지. 그것은 주모를 은밀히 호위하고 있던 우조장과 노조장(魯助長)이 더 잘 알고 있을 것 아닌가?”

“모두 당했소. 오늘 새벽 수하 두 명이 살해된 채 발견되어 주모가 탄 마차를 바싹 뒤쫓았으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이 기습해왔소.”

단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일이 이렇게 벌어지면 안 된다. 도대체 어디서 일이 틀어진 것일까?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마음을 모두 준 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의 잘못일까? 아니면 그가 자신을 속인 것일까? 균대위 일에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결같이 흑의를 걸치고 흑색면구를 쓴 자들이었는데 사용하는 무공이 괴이막측하여 전혀 짐작 할 수 없는 것이었소. 인원도 많았지만 무공 수위도 월등했소. 몇 번 손속을 나누지 않아 수하들이 당했고, 몇 명이 그곳을 빠져 나왔지만 그들의 추격으로 어찌되었는지 알 수 없소.”

단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자신의 사적인 감정으로 인하여 수하 열세명의 목숨이 사라진 것인가? 복잡한 기색이 연이어 그녀는 얼굴에 떠오르며 쉴 새 없이 변하고 있었다. 균대위를 공격했다면, 더구나 우조장이 상대의 무공의 내력조차 알아보기 어려웠고 괴이막측한 것이었다면 바로 그들이다.

그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하고, 그 사람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 이렇게 된 것일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부인하고 싶었지만 이미 불길한 직감은 바로 그 사람으로 인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정말 그들과 관계가 있는 사람일까? 그녀는 생각을 접고 다시 물었다.

“주모가 탄 마차는?”
“그들은 우리만 노렸소. 마차는 여전히 이곳을 향하고 있었소.”

그렇다면 그 사람이 말했듯이 송하령과 서가화가 탄 마차는 북쪽으로 향한 것일까? 아니면 이들을 기습한 자들이 납치해 간 것일까? 더욱 불길한 느낌이 그녀의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우조장 옆에 서 있던 사십대 인물 중 한 명이 불쑥 입을 열었다.

“우조장을 추격해 온 자들이 있소.”

“몇 명이나?”

“모두 세 명이오. 탁조장이 수하들을 이끌고 격전을 벌이고 있소.”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셈이었다. 그 때였다. 단사의 뒤로 풍철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고했네. 우조장. 일단 치료를 받고 대기하도록 하게.”

너무 정신이 없어 부복해 있는 우조장을 생각해 주지 못했다. 이미 탈색된 얼굴로 보아 출혈이 심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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