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제작소가 만들 신상품, '21세기 실학운동'

[인터뷰] 희망제작소 만든 박원순 변호사

등록 2006.04.10 14:59수정 2006.04.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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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차린 박원순 변호사

우먼타임스
[장정화 기자] "공자님 말씀대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거죠. 아집과 자만이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며 자기를 혁신하려고 노력합니다."

참여연대,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등을 일컬을 때마다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인물이 있다.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 그는 최근 대법관, 총리 후보로도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려 대중들의 두터운 신망을 확인받았다. 지난 3월27일 희망제작소 창립식을 성황리에 끝낸 뒤 휴식 삼아 북한산 등반을 마치고 돌아온 토요일 오후. 희망제작소 사무실에 마주앉아 늘 새것을 만드는 게 특기인 그에게 비결을 알아낼 수 있을까 싶어 생활신조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희망제작소는 '미' 씽크탱크가 롤모델

박 변호사는 1980년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부천경찰서성고문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90년 중반에는 안정적인 변호사 일을 마다하고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정치부패 개혁을 위해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했다.

그 후 2000년에는 1% 나눔 운동을 통해 우리사회에 나눔과 기부문화를 확산시킨 아름다운 재단의 상임이사 활동에 매진했고, 2003년 재활용에 대한 인식을 바꾼 아름다운 가게를 차리는 등 '아름다운 일'들을 벌여왔다. 이처럼 박 변호사가 늘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외국으로 나갈 때마다 구상한 아이디어 덕분. 아름다운 가게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1990년대 초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재활용 가게 옥스팜의 사례를 보고 나서다.

"새로운 일이라기보다는 전에 하던 일의 연장선에 있는 거죠. 일하다 보면 새로운 아젠다가 계속 생겨나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리더가 떠나도 조직이 굴러갈 수 있도록 시스템과 매뉴얼을 갖추는 것이죠."

이번 희망제작소 창립은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강의하는 동안 미국의 싱크탱크를 모델로 삼아 구상했던 것이다.

"서로마제국이 망한 뒤에도 동로마제국이 1000여 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매뉴얼이 잘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지고 매뉴얼이 상세하게 정해지면 리더가 떠나도 조직은 유지되겠죠."

이를 위해 그는 안정적인 재정 조달, 훌륭한 팀워크 구성, 창의적인 정책 포맷 생산 등 세 가지 점에 노력한다고.


"제가 추구하는 리더십은 비전과 통찰력을 갖고 남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리더는 현장에서 함께 일하며 함께 눈물 흘려야 해요. 함께하는 모습이 타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죠."
하지만 실무자들은 사무실에 박 변호사의 간이침대가 등장하면 긴장한다고 한다. 밤을 새며 정력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직원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소한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는 부드러운 성격이지만, 업무에 관한 한 용서가 없어 스스로 '악역'을 자초한단다.

박원순 변호사는 스스로를 공직이나 기업에 묶여 있지 않은 '자유인'으로 부른다. 희망제작소 창립 선언문에는 "18세기 명분과 관념에 사로잡힌 양반사회의 틈새에서 실학이라는 희망의 싹이 돋아났듯 21세기 실학운동을 펼치고자 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여행길에 오를 때마다 비행기 안에서 '로마인이야기' 같은 소설, 이순신 전기, 조선후기 지식인 연행사절단의 답사록 등을 집중적으로 읽었던 게 실사구시를 지향하는 희망제작소의 정체성을 만드는 모티프가 되었다.

지자체 정책·사회 창안연구 매진


오는 4월 중순, 아름다운 재단 뉴욕주 설립행사 출장길에는 도시계획과 관련된 책을 여행보따리에 담을 예정이다. 앞으로 1~2년간 희망제작소가 주력할 연구 주제가 지자체에 관련된 정책과 사회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창안 연구이기 때문이다. 남이 하는 일을 하기는 싫다. 그렇다고 자신이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하진 않는다. 희망제작소를 모델 삼아 한국에도 '행복제작소' 등의 다양한 제작소가 만들어지길 바란다는 박 변호사. 마지막으로 여성을 위한 컨텐츠 개발 계획은 없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당장 집중하지 못해도 중기적으로 고민할 이슈죠. 여성단체가 여유를 가지고 정책을 만들어낼 사회적 여건이 아직 안 되잖아요. 희망제작소는 여성계가 연합해서 정책기관을 꾸릴 수 있도록 지원할 순 있겠죠."

사회운동의 새 지평을 열면서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 그는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에 대한 투철한 신념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박원순표 성공작'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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