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광주문화중심도시는 '거리문화'부터

등록 2006.04.11 18:51수정 2006.04.1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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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고향 광주를 문화도시로 만든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문화의 전당이 들어설 땅은 호남 식민지 수탈의 중심이었고, 독재정부가 줄지었던 시대에는 나쁜 권력의 상징이었다. 나는 그 죄악의 중심이 5월 이후 민중의 피로 씻겨졌기를, 그래서 거듭났기를 감히 희망한다. 그것은 민중이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21세기인 지금, 천문학적인 돈으로 사들인 거대한 땅 위에, 거대한 자본으로 지은 문화의 전당이 들어섰을 때, 거기에 민중의 참여와 즐김이 없거나, 전시행정의 습관이 예외 없이 존재하거나, 눈높이가 달라서 감히 흙 묻은 신발로, 값 비싸고 윤기가 흐르는 대리석을 밟기가 두렵게 하거나,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면, 도청이 서 있던 그 땅, 문화의 전당이 서 있는 그 땅은, 여전히 과거 관료주의 권력과 나쁜 경제권력과 문화권력이 관성의 법칙처럼 존재하는 그런 상징물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시대, 모든 대극장에는 그런 면모가 스며있다.


여기서 다시 나는 낫을 말해야 한다. 낫은 남을 해치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농사짓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들의 숲에서 가장 낮은 곳, 가장 낮아서 물을 쉽게 댈 수 있는 땅에 순수한 노동으로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키우는 거기에는, 유익한 물만 존재한다. 어떤 죄도 없다. 그리고 낫은 거기서 잡초를 제거하고, 또 다른 생명을 먹일 풀을 베며, 알곡을 수확하는 도구였으며, 이 땅에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로 줄곧 있어온, 역사적 상징이다. 나는 그 안에 있던 정신이 '온고지신'되기를 희망한다.

산업사회에, 가내 수공업에서부터 소기업, 중기업,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존의 존재 값을 가질 때, 잘 갖춰진 산업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지은 농사인 것이다. 숲에는 아주 작고 하찮은 풀부터, 거목에 이르기까지 공존한다. 만약 숲에, 큰 나무만 몇 그루 서 있다면, 그것은 숲이 아니다. 파괴된 생태계를 보기 싫은 모습으로 보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망친 농사다.

2006년 지금, 문화는 거리와 소극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래에서부터 위로의 문화, 그것이 참된 민중문화다. 아주 작고 여린 소나무 한그루가 숲을 이룬다.

내 고향 숲은 핍박과 고난의 역사 속에서, 감옥에서 고생한 나무들도 있고, 굵고 좋은 재목들은 대개 다른 숲으로 옮겨가기도 했고, 구부러지고 고집 센 나무들도 다수 있으며, 서울의 돈 많은 대학에서 부르자마자, 유배생활 후 풀려난 서울양반처럼 떠나버린, 잠시나마 존경받았던 교수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이곳에는 좋은 부엽토가 언제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척박한 맨땅에, 배고플 줄 뻔히 알면서도, 서툴고 어색하다 해도, 다시 한번 숲을 이루어 보자고 의지를 불태우는 소나무들이 서 있다.


이제는 마음을 모아서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따뜻한 공기와 좋은 바람과 비와 햇살의 혜택을 작은 나무들과 풀들에 안겨주어야 할 때가 와야 한다. 시작은 거기서부터다. 그래서 어떤 미래에 문화생태계, 문화의 숲이, 균형과 조화가 잘 갖춰진 모습으로 거듭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응원과 축하의 인파로,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축하와 환영의 뜻으로만 그렇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거기에서는 어떤 가능성이 발견된다.


'거리문화', 100년 대계의 문화를 위한 투자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무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문턱의 박물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거리의 음악과 소극장의 숨소리와 대극장의 무대에 이르기까지 공존하는 숲, 거리의 화가들의 작품에서부터 박물관의 국보급 미술품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숲, 나는 문화가 낮은 곳에서 싹튼다고 생각한다. 물은 낮은 곳에 고이고, 거기서 생명은 자연 발생한다.

작은 나무가 세월이 지나서 큰 나무가 되고, 가내 수공업이 대기업이 되기도 한다. 오늘 거리의 음악인이 5년 뒤 성공한 음악가가 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적어도 작업실에 틀어박힌 채, '사람들이 왜 나를, 나의 재주를 몰라줄까'를 고민할 것도 없이, 눈높이를 맞추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사람이다. 그때 대화의 폭은 넓어지고, 공유의 기회는 많아진다. 동시에 그의 자아는 살아있는 존재값을 소득하게 되지 않을까?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척박해진 땅에, 농사짓는 사람이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며, 잡초를 제거하고, 때가 이르러 수확하듯이, 농사를 짓는 사람의 마음으로 일굴 것을 제안해 본다. 그래서 숲을 지키고, 우리들의 씨앗이 숲에서 잘 자라고, 꽃을 피울 그때까지 마음을 아끼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햇살이 미치지 않았던 낮은 곳에서부터 문화를 일으키는, 그래서 그것이 들불처럼 번지는, 그런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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