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

다도해의 생활문화 '우실'

등록 2006.04.18 08:37수정 2006.04.1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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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태도 송곡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 어른 키의 두 배는 됨직한 돌담이 앞을 가로막는다. 주일예배를 알리는 음악이 돌담 끝에 매달린 교회 확성기에서 흘러나오고, 가방을 들고 교회로 들어가는 어른들의 틈바구니에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이렇다 할 놀이가 없는 섬 아이들은 바람을 막아주는 돌담을 따라 생긴 도로는 자전거도로요, 돌담이 기댄 나무들은 아이들의 친구들이다.

a 신안군 암태면 익금리 우실

신안군 암태면 익금리 우실 ⓒ 김준


a 신안군 비금면 우실

신안군 비금면 우실 ⓒ 김준


a 신안군 암태면 익금리 우실

신안군 암태면 익금리 우실 ⓒ 김준


마을 울타리


이 돌담은 멀리서 보면 작은 산과 낮은 구릉을 막아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중간에 차들이 다닐 정도의 출입구가 만들어져 있다. 이 '돌담'이 서남해의 섬지역은 물론 내륙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우실'이다. 마을의 울타리라는 '우실'은 고대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시절에 야수의 위협과 자연의 재해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기 위한 주거지 표시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주거공간을 은폐하기 위한 생존수단이며 생산, 휴식을 위한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다.

이러한 흔적들은 성이 축조원리에도 남아 있고, 주거공간의 울타리(돌담)에도 재현되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주변 석성의 입구를 보면 밖에서 직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옹성을 쌓고, 일반주거 공간에서도 차면(遮面)담을 세워 밖과 안을 구분한다.

도서지역의 민가구조를 보면, 밖에 들어올 때 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꺾어서 들어가도록 출입문이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우실도 한쪽 담은 반원으로 만들어 둘러치고, 맞은편 담은 기역자로 꺾어 반원에 집어넣는 형상을 하는 형태가 있다. 이를 자웅교합형이라고도 하며, 이외에도 갈지자형으로 엇대어진 우실, 직선형 우실 등 자연지형을 고려한 다양형태가 있다.

a 신안군 암태면 익금리 우실

신안군 암태면 익금리 우실 ⓒ 김준


a 진도군 관매도 우실

진도군 관매도 우실 ⓒ 김준


a 신안군 암태면 송곡리 우실

신안군 암태면 송곡리 우실 ⓒ 김준

우실이 반드시 돌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흙을 이용한 토담우실, 기둥을 박아 만든 목책우실, 대나무나 갈대, 짚을 엮어 막는 파자우실, 남해의 물건리의 어부림처럼 나무숲을 조성한 생우실 등이 있다.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바다건너 제주의 환해장성도 우실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도대체 우실는 누가 쌓은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그곳에 사는 마을주민들이 쌓았을 것이다. 남도의 많은 우실들이 고승이나 옥황상제 등 영험한 인물의 현몽에 의해 마을 주민들이 쌓았다고 전한다. 오랫동안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순응, 환경에 대한 적응과정에서 인간은 늘 신성한 절대자의 공간을 만들려 했다.

암태도 송곡리의 우실은 1905년 마을 앞을 지나가던 스님이 마을의 번창과 우환을 막으려면 담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어 수목의 우실이 있던 좌우에 석장을 길게 축조했다고 전한다. 이를 입증하듯 송곡리 돌담 사이에는 몇 그루의 팽나무가 끼어있다.


우실은 지역에 따라 우술, 우슬, 마을 돌담, 돌담장, 당산거리, 방풍림, 방조림, 방파림, 사정터, 어부림, 노거수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다. 남도의 민속연구자인 최덕원 선생은 우실은 본래 '울실'에서 비롯된 말로, '울'은 둘레를 에워싸서 지킨다는 의미이며, '실'은 마을, 곡(谷)의 고어로 집단주거지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용성과 신성성을 갖춘 생활문화의 총체, 우실

a 신안군 암태도 송곡리 우실

신안군 암태도 송곡리 우실 ⓒ 김준

신안의 암태도나 비금도, 진도의 관매도의 우실이 만들어진 장소를 보면, 남향에 위치한 마을의 뒤쪽에 있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높바람=북풍)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실이 반드시 마을 뒤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에 맞서 부는 맞바람(남풍)을 막기 위한 나무숲 우실도 있다.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을 뒤에 만들어지는 우실은 돌담인 경우가 많으며, 마을 앞에 맞바람을 막고, 밖에서 바로 마을을 들여다보는 것을 제어하는 경우는 나무숲인 경우가 많다. 남쪽의 섬마을의 경우 마을앞 바다와 경계를 이루는 곳에 어부림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 남해 물건리의 어부림의 경우, 태풍 매미가 남해의 여러 마을에 피해를 입혔을 때, 수백 년 된 자신의 몸을 던져 바람을 막고 마을을 보호하기도 했다.

만들 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우실은 바람을 막아주면서 농작물 수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돌담들이 동물들이나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이 일차적이었다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일차적 목적의 의미가 약화되고 농사를 짓기 위해 바람과 모래를 막는 기능이 강화된 곳도 있다. 바람이 많은 곳에서 농사를 지을 때 담을 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a 농사를 짓기 위해 바닷가에 쌓은  돌담(여수시 백야도)

농사를 짓기 위해 바닷가에 쌓은 돌담(여수시 백야도) ⓒ 김준

이러한 실용적인 기능 외에 민속신앙의 의미부여를 하는 우실도 있다. 최덕원 선생은 우실을 성(聖)과 속(俗)의 경계담으로 해석한다. 온갖 재액과 역신을 차단하는 자아경계이며, 마을의 경계, 우리 영역으로서 '우실'이라는 의미도 부여한다.

외부세계와 내부세계를 연결하는 결절점이며, 우실의 문은 마을주신이 상당(마을 밖 산에 위치)과 하당(마을내부에 있는 당산, 우물, 장승 등)을 이동하는 '신의 길'라고 풀이한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상여가 나갈 때 산자와 죽은 자의 마지막 이별의 공간도 이곳 우실이었다. 우실은 이렇게 단순한 돌담을 넘어서 자연과 인간이 만난 문화의 총체이며, 삶의 집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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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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