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하는 여성인력 양성할 터"

[인터뷰] 소통하는 CEO형 총장으로 돌아온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

등록 2006.04.18 16:11수정 2006.04.2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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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 사진 노민규 기자] 지난 3월, 덕성여대 총장으로 취임한 지은희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덕성여대가 '실천하는 여성인재'를 키워내는 대학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여대 총장이 된 이상 여성의식은 기본이고, 전문성과 추진력을 갖춘 실천력 있는 여성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앞으로 자신의 소임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 총장은 졸업할 때까지 모든 학생들이 여성학을 선택이 아닌 필수교양 과목으로 수강하게 바꾸고, 국제적인 교육과 커리어개발센터를 강화할 계획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와 시민사회단체연대회 공동대표 등을 지낸 지 총장은 여성가족부 장관 재임 시절 호주제 폐지, 성매매방지법 추진, 보육업무 이관 등 역점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개혁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관에서 물러나 대학 총장으로 변신한 그를 만나봤다.

우먼타임스
- 덕성여대 7대 총장에 임명됐다. 총장으로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총장으로서 가장 주력하고 있는 활동은 덕성여대의 대외 인지도를 높이는 것과 내부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했던 내부 구성원들 간의 감정적 앙금 해결을 위한 노력이다. 구성원들에게 '내부 분규는 끝났고 이제는 새로운 발전을 시작해야 할 때다. 우리가 그 발전을 시작하자'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대외 활동을 위한 업무는 기본이다."

- 덕성여대 총장으로 취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이번 총장 선임은 공식 채용 절차를 통해 결정됐다. 법인이사회가 내부 인사 6명, 외부 인사 8명으로 이루어진 총장 후보자 중에서 임명했으니 14:1의 경쟁률을 뚫은 것이다.(웃음)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선되긴 했지만 총장 취임에 앞서 내가 덕성여대에 꼭 필요한 인물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나도 만족해야 하지만 덕성여대도 '지은희가 총장이 되는 것'이 좋은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덕성여대 발전에 과연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물인지 조언을 구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많이 받았다. 자신감을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10년 동안 덕성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0년대 우수한 인재들이 덕성에 얼마나 많았나. 그 여성들을 직접 가르쳤기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독립운동가인 차마리아 선생님이 세운 여성학교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설립가의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고, 그것은 앞으로 덕성여대가 어떤 출발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또 어떤 정신을 가지고 발전해 나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 여성운동 활동가이자 여성가족부 장관 출신의 여성교육자 입장에서 강조하는 여성의 덕목이 있을 듯하다. 어떤 여성인재를 키워내고 싶은가.
"여자대학의 승패는 대학 자체의 아이덴티티를 여자대학에서 찾느냐 아니면 남녀공학과 크게 다르지 않은 대학에서 찾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나는 우리 대학의 정체성을 진취적이고 책임감 강한 여성인재를 키워냄으로써 강화할 생각이다. 생각을 실천하는 여성인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한국사회가 또 한국대학이 당면한 중요한 과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대한민국은 여성을 위한 법과 제도가 마련된 국가다. 법과 제도를 만들고, 이를 집행하기 위한 예산 확보를 하는 일까지는 이제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예산을 원래 목적대로 쓰기 위해서는 여성의식은 물론, 전문성과 헌신성을 갖춘 여성인력이 존재해야 한다.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확보한 예산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제 대학 총장이 되었으니 그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것이다. 전문지식을 갖추고 그 지식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 인력을 키워내는 데 주력할 것이다.


구체적인 전략으로, 졸업할 때까지 모든 학생들이 여성학 과목을 선택이 아닌 필수교양 과목으로 공부하도록 바꾸고, 여성학대학원과 평화·인권대학원을 구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적으로 생각하는 리더십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과 커리어개발센터를 강화할 계획이다. 영어학습을 위한 언어생활관은 오는 7월 오픈된다."

- 그동안의 활동 경력이 총장직을 수행하는 데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여성운동과 시민운동 경험을 통해 실천적 여성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장관직을 수행하면서는 우리사회 전반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쌓을 수 있었다. 대학은 미래를 책임지고 이끌어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는 곳인데, 생각보다 빠른 사회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고 그에 따른 예산 편성도 잘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국무회의에서 한국사회의 변화 속도는 굉장히 빠르고 그만큼 노동시장도 급변하고 있지만 대학은 그 변화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인재를 키워내는 사람과 인재를 필요로 하는 집단 간의 괴리가 너무 크다. 현장에서 여성운동가로 활동한 경험과 정부부처의 수장으로 일한 경험은 앞으로 균형적인 시각으로 전체를 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 대통령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여성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공동도서관 운동을 통해 평생교육을 실천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대학 역시 평생교육에 대한 책임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학과 도서관 모두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덕성여대의 경우 유아교육과가 특화돼 있고, 또 대학 부설 유치원이 지역사회의 맞벌이 부부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질 높은 수준의 프로그램 운영으로 지역주민들의 보육문제 고민을 일정 부분 덜어주기 때문이다. 대학, 공동도서관 교육 프로그램은 지역사회에 오픈 되어야 하고, 이를 발판으로 지역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평생교육의 밑거름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본다."

- 덕성여대는 여성인재 양성소라는 면과 함께 분규 사학이라는 상반되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총장으로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을 것 같다.
"과거 사학재단의 문제는 이미 정리됐다. 이제 어떻게 현재 상태를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만 남아 있다. 구성원들 사이에 남아 있는 감정적 앙금이나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에 아직 정리할 문제는 있지만 제도적인 부분들은 다 정리됐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덕성여대를 위해 어떤 구성원이 어떤 것을 잘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략기획팀을 누구에게나 열린 팀으로 활성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요일별로 단과대학 교수들과 만나는 일정을 잡았다. 일일이 만나서 무엇이 문제인지 들을 것이고 갈등요소가 무엇인지 물을 것이다. 하지 못할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 모든 갈등은 소통부재에서 온다는 것을 느꼈다.

취임 후 학생들도 자주 만났다. 총학생회 학생들은 물론, 학생회관 동아리 모임까지 찾아다녔다. 학교가 뭔가. 학생들과 거리를 두면 호흡을 같이할 수 없다. 학생들이 총장과 언제든 대화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강화했고, 홈페이지를 개편했다.

궁금한 것, 요구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물을 수 있도록 총장실까지 오픈 할 생각이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나는 소통하는 일에는 얼마든지 자신 있다. 소통의 한가운데서 다수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행하는 것과 실행하는 데 속도를 내는 능력만큼은 지금까지 항상 인정받아 왔으니까. 덕성여대에서도 실력을 발휘할 계획이다.(웃음)"

- 여성총리 시대가 임박했다. 여성계 인사로서 여성지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여성지도력이 사회의 질적 전환을 주도하는 시대인 만큼 여성 리더십에 대한 요구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여성 리더십의 특징은 경쟁보다는 포용, 발전보다는 공존을 강조한다. 공존의 의미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함께 생각한다는 뜻이며 전쟁보다는 평화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염원하던 새로운 세계를 실천해 낼 수 있는 시대가 여성 리더들의 등장으로 열릴 수 있을 수 있으리라 본다. 여성 리더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마음속에 지향하는 사회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성운동을 했던 한 사람으로서 갖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여성 리더십으로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생동하는 아름다운 도시가 탄생했으면 좋겠다."

지은희 총장은 누구?

지은희 총장은 '끝없는 낙관론자'로 불린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항상 현실을 낙관하며 미래를 설계하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1970년대, 여성운동을 할 때도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비결은 뭘까.

그는 "항상 그 시점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결과를 미리 예견하고 근심할 틈도 없이 현실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미래에 대한 확신이 든다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확신을 갖는 일 역시 지 총장이 현실을 긍정하고 낙관하는 비결 중 하나다.

"여성운동도 그랬죠. 지금 우리가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발걸음이 누군가의 어려움,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습니다. 호주제 폐지의 경우에서 보듯이 여성운동가들이 새로운 법을 만들면 처음에는 여러 세력들의 비난을 견뎌야 하지만 결국 그 시기를 잘 딛고 넘기면 호주제의 모순으로 고통 받았던 여성들과 가부장제의 낡은 틀 속에서 부담스러웠던 남성 모두 한층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습니까."

지 총장은 본지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은 여성들이 행복해지는 사회 실현'을 위해 힘써줄 것을 부탁했다. 여성운동의 최종 목표인 여성들의 행복을 위한 언론인만큼 확신을 갖고, 더 열심히 뛰어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여성운동의 최종 목표는 더 많은 여성들이 행복해지는 거잖아요. 더 많은 여성들이 인간다운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우먼타임스 창간도 가능했던 거였고요. 창간 5주년을 발판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공헌해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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