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리더되려면 대변인은 '필수코스'

탁월한 달변·유머·위트로 무장, 정치 지도자 된 대변인들

등록 2006.04.19 10:50수정 2006.04.1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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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기자]김대중 전 대통령, 박희태 한나라당 국회부의장,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대변인 출신이라는 것. 정계에선 최고 권력자가 되려면 대변인을 꼭 거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대변인들이 정치지도자로 급부상하는 이유에 대해 정치전문가들은 "탁월한 달변에 앞서 촌철살인의 유머와 위트를 겸비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쿠바의 혁명지도자 체 게바라, 미국의 케네디와 클린턴 대통령 등도 유머감각을 갖춘 지도자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유머감각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김대중 전 대통령. 그는 1958년 당시 강원도 인제에서 출마했다 낙선한 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1965년 민중당 대변인을 거쳐 1967년 통합야당인 신민당 대변인이 되면서 정계의 주목을 받는다. 바로 뛰어난 말솜씨 덕분이었다.

1970년엔 40대 기수론으로 촉망받던 김영삼·이철승 후보를 누르고,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뛰어난 논리를 갖춘 탁월한 달변가다. 해박한 식견, 원칙과 소신에 입각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사고가 강점으로 꼽힌다.

김 전 대통령의 유머는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에 빛을 발한다. 재치와 순발력 있는 유머는 자신을 겨누는 칼날을 가장 효과적으로 막아내는 방패인 셈. 약간 촌스러운 듯한 호남 사투리 특유의 억양, 세간의 유머를 절묘하게 섞은 '더듬거리는 달변'은 인기 개그맨들의 성대모사로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했다.

대변인들이 정치지도자로 급부상하는 이유는 탁월한 달변과 촌철살인의 유머를 겸비했기 때문이다. 사진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민주당 대변인시절의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 신민당 대변인에서 대통령 후보가 된 김대중 전 대통령, 한국 정치 사상 최장수 대변인으로 기록된 박희태 국회부의장, 정치입문과 함께  ‘앵커출신 대변인’으로 인기를 누린 정동영 열린우리당
대변인들이 정치지도자로 급부상하는 이유는 탁월한 달변과 촌철살인의 유머를 겸비했기 때문이다. 사진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민주당 대변인시절의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 신민당 대변인에서 대통령 후보가 된 김대중 전 대통령, 한국 정치 사상 최장수 대변인으로 기록된 박희태 국회부의장, 정치입문과 함께 ‘앵커출신 대변인’으로 인기를 누린 정동영 열린우리당우먼타임스
유머감각으로는 단연 빠지지 않는 사람이 한나라당 박희태 국회부의장이다. 그는 1988년 12월, 민정당 대변인을 시작으로 1993년 2월까지 4년 4개월간 대변인을 맡아 최장수 대변인으로 기록됐다. 박 부의장은 이후 법무부 장관, 당 원내총무, 당 대표를 지냈다. 그는 살벌한 정치판에서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화술로 언론은 물론 여야 모두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영원한 명대변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최근 대변인 시절 4년간의 정치 비사를 담은 회고록 '대변인'(랜덤하우스중앙)을 펴내기도 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는 모두 기자 출신이다. 방송사 앵커 출신인 정 의장은 1996년 정계 입문 후 장수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앵커에서 대변인으로 입지는 달랐지만 당의 입장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업무 성격 면에선 일맥상통한 셈이다. '얼짱 대변인'의 선두주자격인 정 의장은 앵커 이미지로 승승장구, 불과 10년 만에 집권 여당의 최고 권력자로 급부상했다.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는 역대 대변인들 가운데 가장 신사적인 대변인으로 손꼽힌다. 기자출신답게 늘 메모하는 습관, 꼼꼼한 일처리로 기자들 사이에서 정평이 났다. 상대 당이 아무리 막말 공세를 펼쳐도 화내는 법 없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차근차근 논평을 해나간다.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며 주위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유머와 위트는 정견과 갈등을 넘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대변인들이야말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술사이자 언어의 연금술사다. 살벌한 막말로 얼룩진 우리의 정치문화를 유쾌 상쾌 통쾌한 축제 마당으로 바꿔나갈 정당 대변인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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