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스톱' 국회... 이재오는 잃을 게 없다

[김종배 뉴스가이드] 사학법 재개정 실패해도 타격 없을 듯

등록 2006.04.21 10:08수정 2006.04.2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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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월 30일 오전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북한산 대동문에 올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회동에서 양 당은 2월 1일부터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월 30일 오전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북한산 대동문에 올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회동에서 양 당은 2월 1일부터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오마이TV 김윤상
한나라당이 또 다시 사학법을 꺼내들었다. 지난 19일 열린 원내대책회의를 기점으로 한나라당이 법안 심의를 거부하고 나섰다. 사학법 재개정안을 포함해 쟁점법안을 일괄처리하지 않는 한 법안 심의에 응하지 않겠다고 한다.

예정은 돼 있었다. 한나라당은 여야 원내대표의 '북한산 합의' 이후 4월 임시국회에서 사학법 재개정을 관철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보면 당초의 공언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거꾸로도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이 4월 임시국회를 사학법 재개정안 처리의 마지노선으로 잡았다면 개회와 동시에 처리를 압박했어야 했다.

'북한산 합의' 이후 열린우리당은 사학법 재개정을 '논의 한다'고만 합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논의 결과는 담보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열린우리당의 태도가 이러했다면 집요한 설득과 압박은 필수였을 것이고, 그만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4월 임시국회 개회 보름이 넘도록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회기를 두 주일 정도 남겨놓고서야 사학법 재개정안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 뿐이 아니다. 한나라당에겐 아주 유용한 카드가 있었다. 총리 인준청문회였다. 사학법 재개정이 정말 절박했다면 차라리 총리 인준청문회와 연계하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 여당을 압박하는 효과가 적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연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총리 후보자의 당적 포기와 연계해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만 자초하다가 결국 물러섰다.

다른 의도가 있다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오마이뉴스 이종호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의도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두 가지 점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나는 '다른 쟁점법안'이다. 목록이 꽤 두툼하다. 3·30 부동산대책 입법안, 비정규직법안, 금융산업구조개선법안, 주민소환제법안 등등 굵직한 것만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쟁점법안들엔 공통점이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린다. 부동산 부자, 재벌,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한편에 서 있다면 그 맞은편엔 무주택자, 비정규직 노동자, 보험가입자, 주민 등이 모여 있다.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당의 정책 색깔을 분명히 하고 싶지만 지방선거가 코앞에 와 있다. 한 표라도 더 긁어모아야 하는 입장에서 다수와 각을 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다수에 굴복하면 당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거세진다.

이럴 땐 피해가는 게 상수다. 외곽을 때림으로써 민감 부위를 피하고 법안 저지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또 하나는 원내사령탑인 이재오 원내대표의 처지다. 이 원대대표에게 사학법은 양날의 칼이다. '북한산 합의'로 이 원내대표는 리더십을 확보했다. 소득 없이 지루하게 전개된 사학법 장외투쟁의 퇴로를 엶으로써 원내대표 위상을 공고히 했다.

하지만 대가 없는 소득은 없는 법이다. '북한산 합의문'을 '논의 한다'로 끝맺음으로써 '논의 후 관철'의 부담을 동시에 안았다. 그래서 그의 리더십은 '담보부 리더십'이었다.

이제 끝을 봐야 한다.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이 원내대표는 오는 7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경선에 나설 계획이다. 그 전에 사학법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6월 국회가 남아있지만 이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표와 함께 6월에 물러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 원내대표에겐 4월 임시국회가 사실상 마지막 무대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의 선택은?

사학법 재개정을 관철시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관철에 실패한다고 해서 꼭 손해 보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화끈하게 재개정을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투쟁하는 야당 지도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 또 알 것이다. 대다수 의원과 당원이 사학법 장외투쟁의 퇴로를 연 것이 최대치라는 것을….

한나라당의 원내 전략은 섰다. 이제 열린우리당 차례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쟁점법안을 강행처리하는 건 열린우리당으로서도 부담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에 끌려다니면 '무능' 이미지는 더욱 짙어진다.

이럴 땐 나눠 접근하는 게 상수다. 생색을 낼 수 있는 민생 법안은 다른 야당의 협조를 얻어 처리하되 민감한 쟁점 법안은 뒤로 미룬다 명분도 있다. 한나라당이 사보타지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명분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결사반대하는 비정규직법안 같은 건 처리 목록에서 뺄 수 있다. 그러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동계의 반발이 극심해지는 상황을 피해갈 수 있다.

어차피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 모두 밑질 게 없는 상황이다. 상대방을 향한 삿대질과 고성은 잦아지겠지만 거기에 진심이 듬뿍 실릴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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