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바꾼 남자, 고이즈미 준이치로

고이즈미 총리의 취임 5주년 즈음하여

등록 2006.04.24 13:27수정 2006.04.2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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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을 깨뜨리는 한이 있어도, 개혁을 하겠다."

이 한 마디로 그는 혜성처럼 등장해 단번에 일본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연극과 오페라 등 극예술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는, TV를 자신의 무대로 삼아 직접 각본을 짜고 연출도 하고 연기까지 도맡으며 '이미지 정치'의 정수를 선보였다. 도로 공단 민영화에서 시작해, 북일 정상 회담, 야스쿠니 참배, 중의원 해산 등 끊임없는 화제를 제공해 '연인'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매스컴으로부터 유례없는 총애를 받았던 남자. 고이즈미 준이치로. 오는 4월 26일로 그가 취임한 지, 벌써 5년이 된다.

개혁! 개혁!

73년 이후 5년마다 실시되는 NHK 국민 의식 조사 2003년판은, 정확하게 한 세대(30년)동안의 의식 변화의 추이를 보여준다. 90년대 버블 경제의 붕괴와 10년 이상의 장기 불황으로 '정치에 기대하는 것'은 73년의 '복지의 증진'에서 2003년의 '경제 성장'으로 바뀌었다. 더불어 '일본'에 대한 자신감은 50%이상 급락했으며, 일본을 선진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국민도 과반수이상을 점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음울한 사회 심리적 상태는 '개혁'을 부르짖는 고이즈미 총리의 폭발적인 인기에 짙게 투영되어 있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과 급속한 자신감 상실 속에서 구체제의 정점으로 보였던 자민당을 부숴버리겠다는 그의 과격한 언사에 국민들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지지는 프리타, 혹은 니토 등으로 불리는 무직 또는 반 실직 상태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특히 높았다. '전후 일본'의 경이적인 풍요로움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의 미래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이들의 황량하고 쓸쓸한 생활 세계 속에서 고이즈미는 정말로 '쿨'하고 근사한 인물로 비쳐졌다. 환상 속에서 승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현실의 삭막함과 피폐함을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즉 고이즈미 붐의 역설은, 그의 인기가 진정한 사회 개혁에 대한 지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절망에 가까운 불안과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고이즈미는 혀를 내두를 만큼 탁월한 미디어 정치를 통해 단호한 구원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상징 조작을 통해 이들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문제의 해결사라기보다는 문제 그 자체의 핵심이다. 허나 그의 개혁! 개혁! 외침에 도취된 이들은 아직도 바로 그가 위기를 몰고 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으며, 개혁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구원자 고이즈미가 마술이라도 부려서 70~80년대의 그 안정적인 세계를 되돌려줄 것을 열망하지만, 고이즈미가 파괴해버리겠다고 다짐했던 그 세계야말로 70~80년대의 그 풍요로운 '전후 일본'임을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환상'을 걷어낸 고이즈미 개혁의 실체는 신자유주의, 시장 원리주의이다. '규제완화'와 '민영화'는 고이즈미 5년 내내 일본을 지배했던 대표적인 구호였다. 보수적인 관료들의 기득권을 타파하고 일본의 만성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시장 원리의 도입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일본의 젊은이들의 눈에도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공무원들은 '기득권' 세력으로 보였고, 그들 역시 자신들처럼 '평등'하게 불안한 세계 속으로 추락해야만 했다.

고이즈미와 낙오자들 간의 이 기이한 연대로 말미암아 고이즈미 '개혁'에 반대하는 진영은 청산되어야 말 '구세력' '저항 세력'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정치는 어느 순간 선과 악의 대결이 되었고, 국민들은 정치를 게임처럼 즐겼으며, '선'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로 귀결되었다. 신자유주의가 '정의'로 통했던 것이다. 그 결과 1억 중산층의 신화를 낳았던 일본적 고용 시스템은 철저하게 붕괴되었고, '1억 중류' 대신 '격차 사회'가 오늘의 일본을 상징하는 표어가 되었다.


탈아입미(脫亞入美)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고이즈미의 '환상' 개혁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계파 정치로 비판받았던 자민당은 당내의 다양한 파벌로 인해 한때 폭 넓은 합의기반을 가진 정당이기도 했다. 그러나 파벌을 타파하겠다는 그의 호언은 '고이즈미 아이들'로 불리는 당내 최대의 파벌 형성으로 귀결되었고, 고이즈미 지도하에 자민당은 탈규제와 합리화, 구조조정의 도그마에 빠져 일체의 이견이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근본주의적 도당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더불어 새로움과 개혁의 구호는 역설적으로 자민당을 당내의 반동적 극우파가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최악의 상태로 이끌었다. 그의 임기 동안 화려하게 부각된 아베 신조와 아소 다로는 대표적인 극우파 세습 정치인으로, 일본의 우경화를 주도하고 있다. 자민당이 일본 재벌들에 의해 전면 접수된 것도 전시 상황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일본 재계는 한 목소리로 고이즈미의 민영화와 규제 완화 등의 '개혁'을 지지하고 있으며, 그 과실을 독점하고 있다. 또 이들의 경제 활동 범위가 글로벌화 됨에 따라 평화 헌법 개정을 통한 자위대의 해외 파병도 적극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마도 고이즈미의 정치적 입장 중 가장 모순적인 것은 야스쿠니 참배를 주저치 않는 그의 내셔널리즘과 미국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인 추종일 것이다. 그는 일본을 '극동의 영국'으로 만들기를 열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을 신자유주의의 전범으로 재창조하려는 미국의 의도에도 열성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냉전 시기 일본을 '근대화'의 모델로 설정했던 미국은 현재 일본의 '자발적인' 신자유주의 도입에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후 일본'의 또 하나의 제도적 틀이었던 미일 안보 체제도 전면적 변화를 통해 그 구조의 영속화를 꾀하는 역설을 야기했다. 미국의 핵우산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이제는 동맹을 넘어 미군과 자위대가 하나가 되는 군사 일체화의 단계로까지 진입한 것이다. 경제, 군사, 외교 등 거의 모든 방면에서 고이즈미의 일본은 미국과 이해관계를 일치시켜왔다.

이처럼 미국으로의 올인(All-in)이 심해질수록 아시아 국가들과의 반목과 대립은 격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 분쟁, 영토 분쟁, 교과서 분쟁 등 고이즈미 5년 간 아시아와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이제 '고이즈미'와 '야스쿠니'는 아시아인 모두가 공유하는 일본의 상징어가 되었을 정도이다.

대항의 축이 보이지 않는다

실로 안타까운 점은 고이즈미 '개혁'에 브레이크를 걸만한 대항세력이 일본에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것이다. 제 1야당 민주당은 작년 선거의 대패 이후 지리멸렬한 상태다. 위기 타파를 위해 민주당이 대표로 선출한 인물이 구 자민당의 간사장 출신인 오자키 정도이다. 자민당과 민주당 모두 미국의 안보협력에 적극적이고, 개헌을 통해 자위대를 정규군화 해야 하며, 신자유주의적인 사회경제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데 완벽한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다. 현재의 의석 분포로 보자면 헌법 개정파가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일본 정계는 획일화되어 있고, 사회민주당 및 공산당의 역량은 지극히 미미하다.

냉전기간 내내 미국의 막후 영향력에 의해 노동조합, 시민운동, 학생운동 등, 일본의 시민사회가 철저히 무력화된 것도 암울한 대목이다. 절망과 무기력에 빠진 대중들은 근본적인 사회 변화에 주체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고이즈미나 아베 신조와 같은 이미지 정치에 능숙한 이들에만 열광한다. 그래서 결코 해결되지 않는 자신들의 불만과 불안은 대외적으로 표출되어 공세적인 내셔널리즘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극우파 정치인들의 선동과 대중들의 아래로부터의 우경화가 기묘하게 접합되어 공명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지식인 사회 또한 지독할 정도의 냉소주의에 빠져 연구실에만 틀어박힌 채, 현실에 대한 적극적 발언과 참여를 방기하고 있다.

'고이즈미 일본'은 어디로 가나

일본이 걷잡을 수 없는 군국주의로 치달았던 1940년, 국민 소득에 대한 국채의 비중은 96%였다. 고이즈미 개혁 이후, 지금은 그 비중이 124%를 넘어서고 있다. 현재의 의석 분포도 또한 당시의 대정익찬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획일적이다. 최근의 독도 탐사 분쟁도 과거의 영토 침략의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그는 자민당을 깨뜨리지는 않았으나, '전후 일본'의 틀을 부숴버린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9월이면 그의 임기가 끝나고, '고이즈미 극장'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러나 막후에서 그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이다. 포스트-고이즈미 시대는 고이즈미가 5년간 설계한 새로운 일본의 밑그림 안에서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후 일본'의 모든 것을 바꿈으로써, 전혀 바뀌지 않은 채 온존해 있었던 20세기 초의 일본을 되살린 것인지도 모른다. 취임 5주년을 맞아 요미우리신문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는 일본 국민의 70%는 고이즈미의 업적을 평가한다고 대답했다.

덧붙이는 글 | 일본 교민지에도 함께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일본 교민지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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