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낙타 시대의 도래?

중국의 모래바람, 해를 거듭할수록 심상치 않아

등록 2006.04.24 21:03수정 2006.04.2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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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당나라의 한 시인이 노래했던 이 구절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중국 내륙으로부터 불어 닥치는 모래 바람의 기세가 해를 거듭할수록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도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18일 사이 중국에서는 사상 최대의 황사가 있었다. 이 기간 중 하룻밤 사이 베이징에 쏟아졌던 모래 먼지의 양은 자그만 치 33만 톤이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중국에서 황사를 샤천바오(沙坌暴), 즉 모래 폭풍으로 부르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올해만 들어 벌써 8번째 대규모의 황사가 수도 베이징을 휩쓸고 갔다.

33만 톤의 모래는 베이징 시내의 교통망을 일시에 마비시킬 만큼 위력적인 것이었다. 두텁게 쌓인 먼지와 거센 모래 바람으로 버스와 택시, 자동차는 속수무책으로 그저 한 뭉치의 고철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지하철은 사람들로 미어터져 그야말로 '지옥철'이 되었다. 베이징에도 머지않아 교통수단으로 낙타가 필요한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뼈있는 우스갯소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정도이다.

베이징이 이 정도이니, 황사의 진원지인 내륙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내몽고의 한 지역 신문에 따르면, 4월 6일부터 7일까지의 대규모 황사로 8명이 사망했으며 3만 마리의 가축이 몰살되었고, 통신과 전력의 공급마저 중단되기까지 했다. 한여름의 태풍 못지않은 봄날의 재난을 초래한 것이다.

내몽고를 초토화시킨 이 샤천바오가 바로 4월 8일 한반도를 집어삼킨 그 황사이다. 2002년 이래 최악이었다는 그 황사로 서울의 공기 중 미세먼지 농도는 평상시의 20배를 넘었다고 한다. 당시 한반도에 쏟아진 먼지의 양은 약 7만 톤이라고 하는데, 이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 피해액만 1억 달러 이상이었고, 간접 손실까지 합하면 2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 수치에는 물론 북한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제 황사는 바다를 건너 일본 열도에까지 다다르고 있다. 나고야 서쪽의 칸사이 지방도 황사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간 것이다. 한때 황사로부터 자유로웠던 일본도 2000년 이후부터 황사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2001년에 과거의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운데 이어, 2002년에는 그 최고 수치의 두 배를 경신하기까지 했다. 올해는 모래 폭풍 탓으로 큐슈 지역의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침묵의 봄에서, 암흑의 봄으로


a 33만 톤의 모래 먼지가 쏟아졌던 베이징 시가

33만 톤의 모래 먼지가 쏟아졌던 베이징 시가 ⓒ 이병한

지구상에 '봄'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는 지역은 그리 넓지 않다. 사계가 뚜렷한 계절을 누리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향유할 수 있는 특별한 행복 가운데 하나이다. 동양의 옛 시인들이 가장 많이 노래했던 계절도 바로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봄은 동아시아인들에게 주어진 천혜의 환경이자, 문화의 원천이고, 소중한 재산이다.

40년 전, 레이첼 카슨은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과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고발하는 '침묵의 봄'을 써 인류에 경종을 울렸다.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고, 새가 울지 않는다는 음울한 미래에의 묵시록은 전 인류의 각성을 촉구해, 환경문제에 대한 범세계적 관심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침묵의 봄 대신에 '암흑의 봄'에 대비해야만 할 것 같다. 특히 황사의 직접적 영향권 안에 들어있는 동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공동의 각성이 요구된다. 바람을 타고 국경을 넘나드는 황사에 적절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국적을 따질 이유도,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중국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를 비난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기업이 중국 대륙에 진출해있고, 자본을 투자하고 있으며,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의 혜택을 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의 환경 파괴에 우리는 모두 '공모자'이고, 황사는 우리 모두의 '업보'인 것이다.

동아시아의 환경 안보를 위해

봄날의 눈부신 햇살과 찬란한 푸른 하늘을 앗아가고 있는 황사를 계기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운명 공동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의 뒤늦은 산업 혁명이 야기하고 있는 이 대규모의 자연 재난은 지난 세기 이 지역에서 저돌적으로 추진해왔던 산업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가능케 한다. 공동의 환경 보호는 지역 협력의 으뜸가는 중요 과제이며, 나아가 21세기의 가장 절실한 '안보'문제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요즘 황사와 함께 '낙타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가공할 만한 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중국의 사막화에 따라, 낙타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낙타는 임신 기간이 400일 가량으로 번식이 더딘 동물이라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못 미쳐 걱정이라는 농담도 들려온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이 유머 속에서 그들 스스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중국 정부도 황사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중국 과학원은 국경을 초월한 공동 연구를 제안한 상태이다. 지난 주말에는 시사 토론 프로그램의 주제로 황사를 다루기까지 했다.

이미 1992년부터 동북아 환경 협력 회의가 시작되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지역에 확고하게 뿌리내린 경제 발전에 대한 맹목적 신화와 각국의 내셔널리즘의 확산으로 인해 환경 보호를 위한 강력한 조치가 좀처럼 취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말로 인간들의 속 좁은 아귀다툼으로 낙타의 서식지만 늘어날 판국이다.

유난히도 황사 피해가 많았던 올해야말로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온전한 삶을 위해 '환경 안보'에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야 할 시기이다. 하늘에는 국경이 없고, 봄도 나라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우리의 아이들과 후세들에게도 봄날의 행복함을 전해주는 것은 우리, 동아시아인 모두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덧붙이는 글 | 중국 교민지에도 함께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중국 교민지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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