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구당에 학동들은 어디 갔을까?

담양 수남 학구당과 수북 학구당을 둘러보고

등록 2006.05.01 10:47수정 2006.05.0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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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신록들이 마음 설레게 하는 계절 봄이다. 이름 모를 들풀부터 온갖 꽃들까지 만개하여 봄의 절정에 이른 지난 주말에 수남 학구당이 있는 담양 고서로 향했다.

학구당 현판과 서고로 쓰였던 시렁
학구당 현판과 서고로 쓰였던 시렁고병하
고서에서 광주호 상류로 오르는 길에 좌측으로 보면 수남 학구당이 있는데 표지판이 없어서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광주호 쪽에 주차를 하고 비포장길을 200m 정도 걷다 보면 아담하게 자리 잡은 학구당을 볼 수 있다. 학구당을 지키고 있는 것은 공부를 하는 학동들이 아니고 한가로이 노니는 다람쥐였다.

수남 학구당 본당
수남 학구당 본당고병하
수남 학구당은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 1번지에 있는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2호다. 영산강 남쪽이라는 의미에서 수남이라는 했는데 영산강 북쪽인 수북면에 있는 수북 학구당과 구별하기 위해 칭한 것이다.

수남 학구당은 '창평 학구당'이라고도 불리며, 유교 사회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이 당의 근원은 고려말에 건립된 '향적사'라는 절이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에 따라 절이 문을 닫게 되자 승려들이 모두 흩어졌다. 이에 환학당이라는 스님이 승려들을 다시 불러들여 공부를 가르쳤다. 후일 그의 제자들이 그 뜻을 받들어 '학구당'이라 이름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88년 1월에 보수하였으며, 본당 4칸, 중류 2층 4칸이다.

본당 마루가 2단으로 돼있어 학비를 못낸 집자제들은 아랫쪽 마루에서 공부를 했다.
본당 마루가 2단으로 돼있어 학비를 못낸 집자제들은 아랫쪽 마루에서 공부를 했다.고병하
학구당은 이름 그대로 배움을 구하는 터로 이 지방 인재 육성을 위하여 별도로 25개 성씨들이 금전과 토지를 내놓아 자신들의 자식을 비롯하여 창평지역의 인재를 키웠다. 현재는 18개 성씨가 관리하고 있다. 요즘으로 치면 공립대학의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다. 전국에서 담양에만 두 곳이 있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수남 학구당 관리사
수남 학구당 관리사고병하
학구당 본당 마루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검정색 시렁이 보인다. 이 시렁은 책을 보관했던 서고였다고 한다. 옛 학동들은 책이 한 권 끝나면 시렁에서 다음 책을 꺼내서 공부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을 것이다.

특이한 것은 다소 지체 있는 집안 자제들은 본채 마루에서 공부를 하고, 돈을 내지 못한 집안 자제들은 본체보다 낮은 마루에서라도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돈을 내지 못한 집안의 자제들을 위한 배려였다고 한다. 매년 여름 방학이면 '천자문 교실'을 열어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수북 학구당 전경
수북 학구당 전경고병하
수남 학구당을 나와 담양읍을 거쳐 수북으로 향했다. 낯선 길이라 물어서 갔는데, 나를 반기는 것은 강아지와 다람쥐와 은둔처사였다. 노골적으로 사람들의 접근을 꺼리는 처사는 조용히 일하고 공부하는 선비의 생활을 원하는데 낯선 이들의 방문으로 리듬이 많이 깨지는 모양이다.

수북 학구당 본당
수북 학구당 본당고병하

수북 학구당 마루에서 바라본 풍경이 한편의 산수화다.
수북 학구당 마루에서 바라본 풍경이 한편의 산수화다.고병하
수북 학구당은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3호로 담양군 수북면 오정리 276번지에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많은 유생을 배출했다. 성종 4년(1473)에 남(南), 박(朴), 진(陳)씨 등 삼씨 성의 주관으로 건립하여 많은 유생이 수학하러 오다 호랑이에게 해를 입어 철폐했다고 한다. 숙종 35년(1709)에 김(金), 이(李), 우(禹), 정(丁)씨의 사성이 당초의 학구당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건립하여 많은 유생을 배출했는데 특히 이곳에서 진사가 많이 나와 당시 수북 학구당의 세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 후 영조 45년(1769) 윤광현 창평 현령이 주민을 동원하여 새로 복원했으며 지금 건물은 1966년에 보수했다. 건물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옆에서 볼때 八자 모양)이다.

수북 학구당은 멀리 보이는 삼인산 자락에 있다.
수북 학구당은 멀리 보이는 삼인산 자락에 있다.고병하
두 군 데 학구당을 둘러보았는데, 수남 학구당은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쉬어갈 수 있게 해놓았다. 반면에 수북 학구당은 찾아가기가 어려웠고, 관리도 좀 부실한 듯했다. 그러나 두 곳 모두 자연과 어우러진 풍광으로 심신을 수련하기에 좋았다. 학구당은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주민의 자율 의지로 설립된 학습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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