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으로 춤을 춥시다

무심의 경지에서 자유를 찾아가는 길

등록 2006.05.03 15:44수정 2006.05.0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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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모두 벗고 함께 춤을 출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솔직해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옷을 모두 벗고 함께 춤을 출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솔직해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여성신문
[조기숙 /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 내가 아끼는 후배 남자 춤꾼의 실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이 친구가 몇 년 전에 백두산에 관광을 갔단다.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가 천지를 본 순간 싹 벗고 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껴 잽싸게 옷을 몽땅 벗고 천지 물에 풍덩 온 몸을 담갔다.

맑은 하늘이 보이고 천지의 기운이 온몸에 전달되는 걸 느끼려는 순간 호루라기 소리가 요동을 쳤고 중국 공안에게 풍기문란 죄로 체포돼 벌거벗은 채로 체포되어 끌려가고 말았다. 중국의 실정법에 따라 감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중국인 1년 연봉만큼의 벌금을 물고 나서야 겨우 풀려났다고 한다.

영국엔 누드 비치가 여러 곳 있다. 난 가본 적이 없지만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주로 가족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일이십 분 지나면서 벗고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고 무한한 자유까지 느끼게 된다고. 자신은 벗지 않고 남의 벗은 모습만 훔쳐보려 했던 이들까지도 결국엔 자신도 모르게 옷을 벗게 되고야 만다고 했다.

우리의 공중목욕탕에선 그 누구도 벌거벗었다고 창피해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네 살 때 영국으로 가 만 9년 넘게 살다 귀국한 중3짜리 딸아이는 공중목욕탕에 처음 데려갔을 때 기겁을 하면서 너무나 이상하다고 했었다. 난 아직까지도 이 아이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너도 언젠가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가 주는 무한한 자유와 편안함을 느낄 날이 오리라.

영국에 체류 중이던 2002년 여름, 여성문화예술기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춤 여행'이라는 강좌를 여름 방학 중에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내건 조건이 첫 수업에 목욕탕을 빌려서 모두들 벗고 만나자는 것이었다. 여자들이 집단적으로 벗을 수 있는 장소가 목욕탕 밖에는 없으니까. 물론 빌리는 것이 쉽지 않아 목욕탕 수업은 무산됐지만 그때 난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무심의 경지에서 자유를 찾아가는 나체 춤 여행을 생각했었다.

목욕탕에서 여자들이 나체로 있는 것만 보면 그들과 다함께 춤추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고 함께 춤을 춘다면 얼마나 자유롭고 솔직해지며 서로 친해질까. 위아래도 없고, 잘나고 못난 자도 없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분도 없이….

벌거벗고 함께 춤추는 일이야말로 지금 여기, 나와 우리를 온전히 함께 나누는 자각의 수행이 아닐까. 여성들이여 이번 음력 6월 15일 밤 12시에 계룡산 계곡에서 알몸으로 만나 보름 달빛 아래서 손에 손을 잡고 나체 춤을 추어보면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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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성신문은 1988년 국민주 모아 창간 한국 최초의 여성언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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