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생존경쟁'... 과외받는 교사들

교원평가제 때문에 고달픈 교사들

등록 2006.05.09 16:35수정 2006.05.1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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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 교사들도 과외를 받는다. 지난해 11월부터 교원평가제가 시범 실시되면서 일부 교사들이 학원에서 부족한 공부를 하는 등 강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일부는 추락된 교권을 비웃으며 현직 교사에게 금지된 과외지도까지 하는 등 일탈 행동을 보이고 있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사부터 교원평가 항목에 포함돼 있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교사까지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

현재 교육부는 교사의 수업활동을 위주로 하는 교사평가제 전면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교원평가 시범운영 이후 나타나고 있는 교사들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조명했다.

노력형 [정면돌파형 교사들…명강사 수업들으려 발길]
외면형 [평가제외항목은 무관심…학생생활지도 소극적]
일탈형 [“교사가 별거냐”…고액과외 알바로 실속챙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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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찾는 선생님들

서울 ㅊ여고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김아무개 교사는 매주 토요일이면 노량진에 있는 입시학원으로 향한다. 영어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 3월부터 유명 강사들을 스카우트해 화제가 된 M학원의 최고인기 강사에게 3시간씩 강의를 듣는다.

“반신반의하고 수강 신청을 했는데 확실히 느끼는 게 많아요. 반복학습으로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모두 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나 어휘를 지도하는 노하우와 학생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까지, 잘나가는 강사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교사는 학원 강의를 들은 이후 자신의 교수법에 변화를 주고 있다. 학생들에게 유형별, 모의고사 기출 어휘 총정리를 하도록 했고, 전 시간에 배운 내용을 짧게라도 꼭 복습시키는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교사사회에 본격적인 교원평가가 곧 시행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며 “능력 있는 교사만 살아남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철밥통으로 인식됐던 교직에도 교원평가 도입으로 정리해고, 부적격 교원 퇴출 등의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생존을 위한 교사들의 몸부림이 치열하다. 입시학원의 인기 강사에게 강의를 들으면서 수업 진행 노하우를 벤치마킹하는가 하면, 교사 해외연수에 필요한 자격요건을 충족시키기기 위한 자기계발 노력도 한창이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교사 자질을 심판받는 교원평가가 ‘잘 가르치는 교사’, ‘실력을 갖춘 교사’ 되기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이 같은 교사들의 움직임은 대입시험과 연관이 큰 국·영·수 과목 담당 교사들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종로에 위치한 G논술학원에는 현직교사 수강생만 10명이 넘는다. 각 대학이 입시에서 논술 비중을 크게 늘리면서 학교에서 논술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이 학원 강사의 강의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강의를 수강하는 진풍경이 벌이지고 있는 것.

G학원 대표는 “논술 지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현직 교사들의 수강 신청이 증가하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현직교사 1백여 명이 우리 학원 논술 강의를 들었다”고 말했다.

노량진 한샘학원에서 수강 신청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수강 학생들의 연령에 대한 통계자료가 없어 수강 신청을 한 현직 교사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직장인으로 보이는 교사 수강생이 꽤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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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생활지도엔 무관심 일관

수업 지도를 위해 입시학원까지 찾는 교사가 늘고 있지만 교원평가 항목에 포함돼 있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새 학기임에도 불구하고 학급 문제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거나 학생 진로상담에 무성의한 교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학생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강원도 춘천시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이진수(18·가명)군은 같은 반 친구와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군과 상대편 친구 모두 얼굴이 심하게 붓고, 손에서 피가 흐르는 등 부상을 당했지만 담임교사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새 학기부터 싸움질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만 던졌다.

이군의 부모는 이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었지만 학교에서 징계가 내려지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워 조용히 넘어갔다.

이군은 “요즘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며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뜻인 것 같다”고 말했다.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의 한 교수는 교사들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집단은 학생들인 것 같다”면서 “일부 학생들은 반에서 몸싸움이 일어나도 교사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알리지 않는다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원평가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상당수 교사들이 평가 항목에만 치중하고 평가받지 않는 항목에 대해서는 소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은 “전교조가 교원평가 재논의를 요구하는 것도 이 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며 “교사는 학습자의 인지적 측면과 정의적 측면 모두 교육하고 지도해야 하는데 교원평가 항목들은 지식전달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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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도 못받는데 돈이나 벌자

교원평가제 시행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교직을 생계수단으로 인식하는 교사도 늘고 있다. 교사를 학생들의 과목 성적을 올리는 능력을 기준으로 평가하기 시작하면 학원강사와 다를 바가 없어지기 때문에 교사들도 실속이나 챙기자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

이들은 틈틈이 고액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 잘 버는 교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경기도 평촌의 한 중학교에 근무하는 노모 교사는 200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학교 수업과 과외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영어지도를 하는 대가로 80만원을 받아왔다.

노씨는 “교사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계약직 교사들은 상당수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월급도 많지 않은데 교사로서의 자긍심까지 느끼지 못하게 되면서 돈이나 더 벌자는 생각을 하는 교사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직 교사가 과외를 하는 행위는 불법이지만 학부모들의 현직 교사 과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비밀만 유지한다면 일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올해 사립학교 정규직으로 발령 받은 최모(27) 교사도 얼마 전까지 교회에서 알게 된 지인의 두 딸을 과외 지도했다. 최씨는 ‘이래도 될까’ 잠시 망설였지만 어차피 교사 대접도 못 받는 계약직이니 괜찮다며 스스로 정당화했다.

그는 “주변에서 먼저 과외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며 “교사의 권위가 날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과외를 부탁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체감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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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단체 "대입학원화 될 것"반발
교육부, 시범 교원평가제 48곳 진행

교육부가 공모를 통해 선정한 48곳의 시범학교에서 진행된 시범 교원평가는 동료 교사, 학부모 등이 개별 교사의 수업을 참관한 뒤 해당 학교의 교원평가관리위원회가 마련한 설문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설문 결과는 모아서 해당 교사 혹은 해당 교사와 학교장에게 통보한다.

교사를 평가하는 설문 항목은 교원평가관리위원회가 각 학교 교사와 학부모 대표들과 참여해 구성한다. 학교경영 활동(교장), 중간관리자로서 학교교육지원 활동(교감), 수업활동(일선 교사)이 평가 내용의 핵심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부분은 교원평가자와 평가 결과 처리 부분이다. 현재 교육부는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두 개의 안을 마련했다. 하나(A안)는 교장, 교감이 교사평가에 참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B안)는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48개 시범학교 중 절반에는 A안이, 나머지 절반에는 B안이 적용됐다.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로부터 받는 평가는 두 안 모두 포함하고 있다. 평가 결과는 본인, 학교장에게 통보할 것인지 교사 본인에게만 통보할 것인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단체들은 교원평가제도 도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으며 특히 다면평가 방식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다. 수업활동이 평가 내용의 중심이 되는 교원평가는 ‘지식 전달형’ 교사를 요구할 뿐이고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 교감, 교장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평가는 날로 추락하는 교사의 권위를 더욱 떨어뜨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학교는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교육을 실행해야 하는데 학교가 앞장서 대입시험 위주의 교육을 조장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편 중국 서부 쓰촨성 청두 옌다오제 소학교가 전개하고 있는 ‘신싼하오(新三好)’ 운동이 교원평가제의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이 교원개혁운동은 ‘우수한 교사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교사는 학생을 사랑하는 교사’라는 결과가 나오자 학교는 학생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원평가제도를 실시했다. 국내 교원평가제도와는 실행 취지부터가 다르다.

이 학교가 실시하고 있는 교원평가 항목에는 교사의 행동, 학업지도 능력, 인격적인 매력, 학습상황 이해, 협력의식, 연구 성과, 창조의식 등 12개 부문이 포함돼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들 항목에 우, 양, 합격, 불합격 4단계로 나눠 점수를 준다.

옌다오제 소학교는 학업지도 능력과 함께 교사의 인성지도, 인격 등을 평가하는 항목을 추가함으로써 교원평가제도 개혁이 전인교육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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