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428회

등록 2006.05.11 08:04수정 2006.05.1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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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네. 자네를 비롯해 이곳에 있는 인물들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절대 아니네. 노부가 보기에도 자네는 얼마 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네.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변화지. 솔직히 노부마저 자네의 성취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임을 인정하지. 청송도우나 독고보주 역시 노부의 아래는 아니라 생각하네. 허나 노부의 명예를 걸고 말하건대 현 중원에서 방백린과 평수를 이룰 인물은 단 두 사람뿐이네.

“두 사람이라 하시면...?”


좌중의 인물들은 다시 한 번 장철궁을 주시했다. 한 때 천하제일검으로 불리었던 섭장천의 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회한 그의 입에서 이렇게 단정적인 말이 나오기도 어려운 일이다.

“몸이 완전하게 회복된다는 가정 아래 여기 있는 장철궁과 지금 연동으로 들어오고 있는 강명뿐이네.”

듣는 이들은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너무나 단호한 섭장천의 태도에 좌중은 조금 전과는 달리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두려움이 솟아올랐다. 섭장천이 말한 장철궁과 강명이란 인물에 대해 불쑥 궁금증이 솟구쳐 올랐다. 절대구마를 무공으로 굴복시킨 저 장철궁이란 사내는 어느 정도이고, 또한 반당과 승부를 겨루어 그를 죽인 강명이란 사내는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그래서 노부가 처음부터 그 제안을 거절하라는 것일세. 차라리 이 기관과 그들의 공격을 뚫고 나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 한 것일세. 또한 모용가주에게 가문의 명예가 실추되는 한이 있더라도 희생해 줄 것을 요구했던 것일세.”

할 말이 없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목숨 하나를 걸고 하는 승부라면 패하더라도 도전해 보고 싶은 충동도 있을 것이지만 이 많은 군웅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만약 패했을 경우 그들은 바깥세상의 공기를 마셔보지도 못하고 평생 이곳에서 썩어야 할지 모른다. 과거 백련교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답답함이 천근 거암이 되어 담천의를 비롯한 좌중의 가슴을 짓눌렀다. 도대체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저들이 그런 제의를 해 온 것에는 분명한 확신이 있어서일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리 절망적인 상황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무당의 청송자와 철혈보의 독고문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좌중의 암울한 눈빛이 허공에 쉴 새 없이 교차되고 있었다. 일종의 의견교환이었지만 결론을 내고자 입을 여는 인물은 없었다. 한 순간이 억겁과 같이 느껴지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어쩔 수 없었다. 나서야 할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 담천의가 좌중을 쭉 둘러본 후에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제마척사맹의 맹주로서 여러분께 한 말씀드리겠소.”

인정을 하지 않는다면야 모르지만 좌중은 그가 입을 열기만 기다렸는지 모른다.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일을 추진해지길 바라는 것이 모여 있는 군웅들의 심리다.

“일단 여러분들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오. 최선의 방책은 이미 없소. 이제는 선택만 남았을 뿐이오.”

몽화 역시 이 순간에 있어서만큼은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선택은 어려운 일이었다. 섭장천의 말에 의하면 여기 누가 나서더라도 패한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비쳐주었다면 아마 승부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곳에 설치된 기관을 아무리 잘 파악하고 있다 하더라도 저들은 기관의 이점과 함께 이제는 막강한 고수들이 끊임없는 공격을 가해 올 것이었다. 그런 나관 속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인원은 얼마나 될까? 남겨둔 부상자를 제외하고라도 저들의 막강한 전력이라면 물론이지만 채 이 할도 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 진퇴양난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몽화는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은 머리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결정은 그녀의 손을 떠났다. 아마 좌중의 마음은 그녀의 생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맹주의 생각은 어떠신가?”

입을 연 인물은 무당의 장문인 청송자였다. 노회한 그로서도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일 게다. 누가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허나 세상을 오래 산 사람들은 이런 시기에 어려운 결정을 했다 하더라도 나중에 비난받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비난받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결정한 자신이 희생되던지, 아니면 예상하지 못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한 말이다.

담천의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좌중의 시선은 담천의에게로 쏠려 있었다.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자신의 의견은 시궁창에 던져버리듯 그의 의견에 따라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제마척사맹의 맹주로서 결정을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라면 감히 말씀드리겠소. 여러분들이 동의를 하신다면 나는 승부를 택하겠소.”

그의 말이 떨어지자 좌중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대부분 무인으로서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떡이며 수긍을 하는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 인물도 있었다. 저들의 제의를 마다하지 않고 뚫고 나간다면 일부는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이지만 만약 가능성 없는 승부에 매달렸다가는 여기 모두가 평생 천마곡 안에서 남은 생을 허비해야 할는지 모른다. 사실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
“........!”

허나 입을 열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인물은 없었다.

“또 한 가지 미흡한 본인이지만 승부는 제가 나서겠소.”

담천의의 말이 떨어지자 좌중은 잠시 소란이 일었다.

“그... 그건...”
“아무리 맹주라지만.....”

담천의의 무공이 약해서일 것이란 생각은 아니었다. 섭장천이 말했듯이 그 경지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라고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젊은 그가 청송자나 독고문을 능가할 것이라곤 믿을 수 없었다. 더구나 승부는 무공만 뛰어나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다. 노련한 경험은 이렇듯 중요한 순간에 그 빛을 더욱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도는 맹주가 나서는 것에 동의하네.”

뜻밖이었다. 청송자는 마치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신뢰가 담긴 음성으로 말했다. 그것은 좌중의 소란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분명 있었다. 거기에 호응하듯 철혈보의 보주 독고문도 고개를 끄떡이며 동의했다.

“본 보주 역시 맹주가 나서는 것에 동의하오. 아마 승부는 본 보주가 나서는 것보다 일할 정도는 더 높아질 것이오.”

이쯤 되자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잠잠해졌다. 이곳에 인물들 중에서 가장 연배가 높은 청송자와 양보함이 없다던 독고문이 동의한 다음에 누가 나설 수 있으랴? 담천의는 청송자와 독고문을 비롯한 좌중을 향해 포권을 취해보였다.

“이 말학 후배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주셔서 감사하오. 이란격석(以卵擊石)이라 해도 최선을 다해보겠소. 참을 수 있는 고통을 참는 것이 인내가 아니듯 진정한 승리란 이길 수 있는 승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오.”

승부를 결정한 사람치고는 너무나 담담한 말이었다. 일을 처리하는 담천의를 주시했던 섭장천이 고개를 끄떡였다. 대단한 아이였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간 동안 담천의는 많이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무리를 이끌기에 충분한 담력과 통솔력을 갖추고 있었다.

담천의의 시선이 모용화궁에게 돌아갔다.

“가주께서 한 가지 수고를 해주시겠소?”

“무엇을 말이오?”

“구양형과 함께 조금 전 본 맹의 제의를 저들에게 전달해 주시는 일이오.”

“...........!”

모용화궁은 내심 당황함과 함께 감탄했다. 자신은 담천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자신을 지목해 그 제의를 하라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섭장천의 부탁을 거절한 자신에게 다시 한번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일방적인 결정일 수 있었다. 아무도 결정하지 못하는 순간에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어쩌면 무인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결정을 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무인이었고, 진정한 무인은 승부를 피하지 않는다.

“알겠소.”

모용화궁은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은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손에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덧붙이는 글 | 5월 말경이면 단장기 연재를 마치게 될 듯 합니다. 감사의 뜻으로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분과 조촐한 모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단장기 게시판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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