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있어도 현대 지킬 터"

e메일로 폭격나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록 2006.05.15 13:04수정 2006.05.1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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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인수전 나서자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주식 대량매입’으로 견제
여성경제인들“현정은 회장의 경영실적 외면…적대적 기업합병 행보”불만


우먼타임스
[권미선 기자] "현대그룹이 어려울 때는 팔짱만 끼고 있다가 흑자로 돌아서니 형(고 정몽헌 회장)의 기업을 정몽준 의원이 비열한 방법으로 뺏으려 한다."

현대중공업과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5월 11일 전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처절한 심정을 토로했다.

현 회장은 이메일에서 "정몽준 의원이 현대그룹 경영은 정씨 직계 자손에 의해서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이런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 사고로 어떻게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 도덕적 자질을 의심케 한다"며 신랄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이어 "정씨 집안에 시집와서 30년 세월을 살았고 자녀를 포함한 모두가 한 번도 정씨 집안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고 역설하며 "그동안 외부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않고 정몽헌 회장이 남긴 거액의 부채를 상환했다.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고 정주영 명예회장님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씀처럼 굳건히 현대그룹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현 회장의 메일에서 묻어나오는 것처럼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의 경영권 분쟁은 현대가의 '적통'을 며느리가 이어받는 것에 대한 아들들의 명분 지키기 싸움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번 분쟁이 조만간 채권단이 내놓을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한 전초전 성격이라는 것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현대건설은 고 정주영 회장의 땀이 배어 있는 기업으로 현대그룹의 적통성을 잇는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일찌감치 현대건설을 살피며 물밑 인수작업을 펼쳤다. 현대중공업은 이런 현대그룹의 행보를 지켜보다가 '현대상선 주식을 대규모 매입'하는 것으로 칼을 뽑아 들었다. 현대건설만큼은 '정씨 가문이 이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현대그룹을 압박하기 위한 액션을 취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중공업 측은 "외부의 적대적 M&A를 막기 위한 백기사 역할을 했을 뿐인데 너무 감정적인 대응 아니냐"고 반박하고 있다.


백기사가 아닌 흑기사라는 의심은 외국계 기업 '골라LNG'가 4월 한 달 동안 사들인 현대상선 주식 66만1920주(17.18%)를 현대중공업 측이 사전에 알리지 않고 단숨에 사들인 데서 더 강해진다. 이로써 현대중공업은 현대상선 주식 26.68%를 소유하게 됐으며 현대그룹을 눈독 들인 KCC와 합친다면 총 지분 32.9%가 돼 현대그룹의 내부 지분 34.47%와 맞먹는 정도다.

현대가의 뿌리 깊은 '아들 승계 경영'도 이번 분쟁이 현대가의 적통성 지키기 싸움으로 비쳐지게 하고 있다.

고 정주영 회장 슬하에는 8명의 아들이 있다. 이들 중 3명은 사망했고 5명의 아들 모두 경영 일선에 있다. 2남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 6남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 7남 정몽윤 현대해상화재 회장, 8남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 등이 그들이다.

현대가 전체가 아들경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유일하게 현대그룹만 고 정몽헌 회장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경영하고 있다.

2년 전 시숙부인 KCC 정상영 명예회장이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탈취 전쟁을 벌였으나 경영권을 장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에도 현대가는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 경영권을 승계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 일각에서는 시동생인 정몽준 의원이 형수인 현 회장을 마주쳐도 모른 척할 정도로 양측 간에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고 말할 정도다. 이 때문에 일부 경제인들은 현대중공업의 적대적 M&A로 의심되는 행보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여성경제단체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 모씨는 "적자기업을 겨우 흑자로 만들어 놓으니 가문 운운하며 빼앗으려 하는 현대중공업의 태도는 도저히 백기사라고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현 회장의 경영 실적은 무시하고 아내는 남편의 보조 역할만 해야 한다는 낡은 사고방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한국기업윤리학회의 장영철 교수는 "적법한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기업을 인수하려는 태도는 엄하게 다스려야 하며, 감정적이 아닌 명확하고 윤리적인 시각에서 사태를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적자기업을 흑자기업으로 바꾼 현정은효과
현대아산·현대증권등 6개 적자계열사 ‘아내의 힘’으로 알토란기업 탈바꿈

2003년 10월 회장직에 오른 현정은 회장은 현대가의 며느리에서 현대그룹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자로 변신하면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물론 스포트라이트 이면에는 남편의 자살과 만년 적자인 회사 실적, 시숙부(KCC 정상영 명예회장)와의 경영권 분쟁, 대북사업에서 북측의 비상식적인 요구를 어떻게 돌파할까 하는 세간의 의구심 등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현 회장은 지켜보던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뛰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현 회장은 경영권을 현대가에 반납하라는 시숙부의 호령을 당차게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현대가의 충복이었던 김윤규 부회장을 잘라내는 단호함도 보였다.
사업보다 지원 성격이 강했던 ‘현대아산’을 2005년도에 흑자로 전환시킨 것도 대단한 성과로 꼽힌다. 부채 비율이 높았던 현대증권의 부채를 대부분 털어내고 흑자로 전환시켜 2005년에는 현대상선을 비롯한 현대증권, 현대아산, 현대엘리베이터, 현대택배 등 6개 계열사가 모두 흑자로 전환되었다.

현 회장의 경영 방식은 직원들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었다.
현대그룹 임직원들은 "2004년 8월 계열사 신입사원을 전부 금강산으로 데리고 가 함께 합숙을 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한 일은 잊혀지지 않는다" 면서 "계열 분리되면서 무너진 직원 들의 사기를 높이고 기강을 잡기 위해 힘을 불어넣어준 것은 큰 업적이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현 회장의 독특한 ‘감성경영’이 주목을 받았다.
대학 입시를 치르는 임직원 자녀들에게 목도리와 함께 이메일을 보내 격려하기도 했으며 복날을 앞두고 임직원들에게 삼계탕을 선물하는 등 직원 챙기기에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현 회장이 임직원들을 세심하게 배려한 덕분인지 현대그룹 임직원들은 현대중공업의 지분 매입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뤄온 현 회장의 경영에 금이 가지 않게 평정심을 갖고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며 "대기업의 여성 CEO로 뚝심 있는 경영자의 모습을 보여준 현 회장이 지금의 자세를 지속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권미선 기자 kms@iwoma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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