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야드 사원의 살라딘 무덤. 오른쪽 나무관에 살라딘이 안치되어 있고, 왼쪽은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2세가 기증한 관이다. 생전의 검소했던 삶만큼이나 간소한 무덤이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무덤에 손을 대고 기도를 한다. 다마스커스.김남희
쉬운 퀴즈로 중동 여행의 첫 글을 시작해보자. 제3차 십자군을 이끌었던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와 맞서 싸운 이슬람 세계의 영웅은?
빙고! 살라딘의 이름을, 정확히는 살라흐 앗딘의 이름을 망설임 없이 대답한 당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은 시리아. 북으로는 터키, 남으로는 요르단, 동과 서로는 이라크, 레바논과 등을 맞댄 나라이다. 부끄럽게도 이 땅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거의 유일한 지식은 살라딘뿐이었다. 다양하고 폭넓은 공부를 통해 체계적으로 학습된 지식과는 거리가 먼, 그저 소설책 한 권을 통해 얻은 짧은 상식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한 권의 책 또는 몇 줄의 글이 삶을 흔들기도 한다.
소설 <술탄 살라딘>은 이슬람 세계 영웅과의 첫 만남이었다. 살라딘은 내게 이슬람 세계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의 열쇠를 건네준 이였고, 무지와 편견, 의혹으로 그 세계를 바라보던 눈을 뜨게 해주었다. 시리아에 들어선 이후 나는 그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책을 통해 익숙해진 지명 알레포, 라타키아, 다마스커스를 둘러보는 동안 살라딘은 천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말을 걸어왔다.
살라흐 앗 딘은 1138년 이라크의 티그리트 지방에서 태어난 쿠르드족 전사이다. 14세에 군대에 들어간 그는 곧 이집트,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며 이슬람 세계를 통일하고 술탄의 자리에 올랐다. 십자군과의 수많은 전투에서 전설처럼 승리했고,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십자군에게 함락된 예루살렘을 88년 만에 재탈환했던 인물이다.
오랫동안 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교의 공통된 성지였다. 서기 1095년, 교황의 권위를 강화하고 봉건 제후들에게는 영토와 전리품을 나눠주고, 사분오열하던 유럽을 통합하기 위해 십자군이 모집되었다.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40일간의 포위공격 끝에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이틀간 이어진 살육에서 남자, 여자, 아이를 가릴 것 없이 대다수 무슬림이 살해됐다. 유대인들은 도시를 방어하던 무슬림과 함께 싸웠지만, 십자군이 입성한 후 전체 유대인들이 예배당 주위에 모여 집단적으로 기도하라는 장로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십자군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예배당을 포위한 십자군들은 건물에 불을 지르고 유대인들이 불타 죽는 것을 꼼꼼히 확인했다. 서기 2000년, 로마의 교황은 십자군에 의해 자행된 학살과 만행을 사과했다. 꼭 900년의 세월이 지난 후였다.
"천국의 가장 위대한 속성은 자비"
88년 만인 1187년에 예루살렘을 재탈환한 살라딘은 어땠을까? 유대인들은 예배당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국가 보조금을 받았고, 교회는 그대로 남았다. 복수를 위한 살인은 허용되지 않았고, 모든 신앙의 경배자들이 도시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기독교의 성묘를 파헤치자는 강경파의 주장에 살라딘은 "천국의 가장 위대한 속성은 자비"라고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