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죄의 근원은 상속세다?

신세계 사건으로 불붙은 상속세 논쟁... 재계의 엄살·협박은 이제 그만

등록 2006.05.16 17:25수정 2006.05.1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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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세계백화점 본점. ⓒ 오마이뉴스 박수원

신세계가 상속세를 1조원 내겠다고 발표한 뒤 상속세와 가족기업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재계는 높은 상속세가 경영권을 위협하기 때문에 소위 편법증여를 초래했다며 재벌들의 불법적 행태를 상속세 탓으로 돌렸다. 일부 보수언론은 한발 더 나아가 가족기업이 비가족기업보다 경영성과가 더 좋다며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생각은 복잡하기만 하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경우, 법대로 세금을 내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 때문에 경영권이 위협을 받고 알짜 기업이 외국인에게 넘어가면 어쩌지?'

이러한 원칙과 현실적인 우려 사이의 갈등을 풀어주지 않으면, 재벌들의 엄살과 협박이 국민들을 계속 헷갈리게 만들어 의외의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돈만 있으면 경영능력도 살 수 있나

우선,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상속세를 내겠다'는 재계의 입장은 천민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경영권은 재산권과 다르다. 재산권은 세금을 내고 상속될 수 있지만, 경영권은 상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영권은 주주나 이해 당사자가 경영능력이 있는 자에게 부여한 '권한'이기 때문이다.


경영권의 전제조건은 돈이 아니라 경영능력이다.

아무리 많은 주식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경영능력이 없으면 경영권도 없어야 한다. 한 주의 주식도 소유하지 못할지라도 경영능력이 있으면 경영권이 주어질 수 있다.


세금만 내면 경영권을 승계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천박한 졸부의 인식과 다를 바 없다.

a <조선일보> 16일자 사설.

<조선일보> 16일자 사설. ⓒ <조선일보> PDF

a <중앙일보> 16일자 사설.

<중앙일보> 16일자 사설. ⓒ <중앙일보> PDF

빌게이츠가 알면 명예훼손 소송할 지도

가족기업이 전문경영인의 비가족기업에 비해 경영성과가 더 좋다는 S&P의 보고서를 계기로 세계적으로 한동안 '가족기업 대 비가족기업'의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보수언론은 가족기업에게 유리한 점만을 부각시켜 재벌체제를 옹호하고 있다.

당시 S&P가 말하는 '가족기업'은 ▲창업자가 경영하는 기업 ▲설립자 자손이 최고경영자인 기업 ▲설립자 자손이 직접 경영을 하지는 않지만 이사회의 일원으로 통제권만 행사하는 기업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빌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도 가족기업이다. 창업자가 경영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빌게이츠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상속세 폐지 방침에 강력히 반발하였으며, 자손들에게는 1천만달러만 남겨 놓고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워렌버핏은 42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 전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아들에게는 '최고경영자가 아닌 회장'을 맡겼다. 이 역시 가족기업에 해당된다.

5대째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진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 역시 재벌이 가장 부러워하는 가족기업이다. 그러나 발렌베리 그룹의 주식 소유자는 발렌베리 일가가 아니라 발렌베리 재단이다.

이로 인해 발렌베리 그룹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은 자연스럽게 재단을 통하여 사회에 환원되고 있다. 또한 지주회사를 통한 투명한 지배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부분 전문경영인에 의해 이루어진다.

위의 기업들은 좋은 경영 성과를 내는 '가족기업'이지만, 우리나라의 재벌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런데도, 보수언론은 '가족기업'이라는 단어 하나로 위의 기업들을 우리나라 재벌과 억지로 등치시키고 있다. 빌게이츠·워렌버핏·발렌베리 사람들이 들으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할 지도 모를 일이다.

a <동아일보> 16일자 사설.

<동아일보> 16일자 사설. ⓒ <동아일보> PDF

"무능한 가족은 일을 시키지 말라"

그렇다고, 필자가 좁은 의미의 가족기업(설립자의 후손이 최고경영자가 된 기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빌 포드는 가명으로 포드자동차에 입사하여 다른 신입사원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도요타 자동차의 창업자 도요타 기이치로는 전문경영인 이시다 다이조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 후 경영권은 설립자 동생인 도요타 에이지에게 넘어갔다. 전문경영인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 후 경영권은 창업2세인 도요타 쇼이치로를 거쳐 다시 전문경영인인 오쿠다 히로시 회장으로 넘어갔다.

설립자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이 주어질 수 없듯이, 설립자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자의 자격이 박탈당하는 것은 아니다. 포드와 도요타의 경우와 같이 소유에 의한 경영권 승계가 아니라, 능력에 의한 경영권 승계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외국에서 공부한 것밖에 없으며, 실전 경험 쌓는다고 인터넷 사업을 벌였다가 수백억원의 손실을 계열사에 떠넘긴 채 30대 중반에 임원 자리에 오른 사람을 국내 최대기업의 경영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무능한 가족에게는 일을 시키지 말아라. 회사에 나오지 못하게 하고 월급만 주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증여세로 받은 주식을 우리사주조합으로

a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 사건과 관련, 에버랜드 간부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 사건과 관련, 에버랜드 간부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아무리 재벌 총수가 밉더라도 기업이 외국인에게 통째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한국의 재벌 문제를 아무리 설득력 있게 말해도 이러한 답답함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재벌들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회사 중심의 투명한 지배구조로 전환하고, 금융산업과 산업자본을 분리해 지분을 정리한다면 외국인 투자자에 대항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식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잠시 뒤로 접자. 일단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이 불안하다는 재벌의 엄살에 대하여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주식을 물려주면서 상속증여세를 내는 경우 대부분 주식으로 물납(物納)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주식 보유액이 약1조8천억원인데(15일 종가 기준), 이를 이재용씨에게 물려줄 경우 약 9천억원의 주식이 상속증여세로 납부되게 된다. 이건희 회장의 지분은 그만큼 줄어들겠지만 상속증여세로 납부된 주식은 국가의 소유가 된다. 따라서, 국가가 이를 어떻게 처분하느냐에 따라 삼성전자의 지분이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필자는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하여 국가소유의 주식을 여기에 넘기는 방안을 제기하고자 한다.

삼성전자의 직원은 약 8만2600명이다. 9천억원의 주식을 우리사주조합에 넘기면 1인당 약 1100만원씩 돌아간다.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 연봉이 5천만원이므로 충분히 감당할 만한 금액이다. 만약 감당할 수 없는 직원이 있다면 대부 형식으로 지급한 후 분할로 상환받으면 될 일이다.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한 지분은 외국인 투자자에 대항해서는 우호지분이다. 그러나, 투명경영 확보의 입장에서는 재벌 총수에 대항하는 지분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이 흔들리고 회사가 외국인에게 넘어갈 지 모른다는 재계의 엄살을 그냥 엄살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너무 여리다. 비록 엄살일지언정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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