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비우고 싶다면, 엠마뉘엘 처럼

[서평] <넝마주이 수녀, 엠마뉘엘>

등록 2006.05.23 11:10수정 2006.05.2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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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넝마주이 동네에서의 내 생활이란 끊이지 않는 활동의 연속이었다. 미사에서 돌아 오면 곧장 어린이들을 돌보고, 그 다음엔 환자들을 치료하고, 저녁 식사, 여자아이들 교육, 그 뒤 저녁 10시경까지 문자 교육, 그 다음 밤참, 취침, 다음 날 같은 일의 반복. 내 기도 시간은 그렇게 소비되었다."

이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인 엠마뉘엘(Soeur Emmanuelle) 수녀의 자전적 일기인 <넝마주이 수녀, 엠마뉘엘>(두레)에 나오는 글이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섬김으로써,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감동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녀는 45년 간 프랑스에서 터키로, 터키에서 이집트로, 로마에서 제네바와 브뤼셀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어린아이들과 사람들에게 가슴 따뜻한 사랑을 나눠주었다.

그 가운데 이 책은 62세에 이집트의 남쪽 카이로에 들어가 살았던 삶을 기록하고 있다. 그녀가 들어간 곳은 모두가 잘 살거나 행복한 삶을 사는 곳이 아니었다. 흔들거리는 침대 하나와 입을 옷이 몇 벌 들어 있지 않는, 뚜껑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궤짝, 그리고 서너 개의 식기만을 갖고 사는, 그야말로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거리를 건져 올리는 '넝마주이'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들은 쥐가 들끓는 누추한 판잣집과 맨발이 오물구덩이에 빠지는 돼지우리 사이를 수없이 오가야 하며, 나뭇조각 하나를 갖고 두 손으로 바닥을 긁어내 청소를 해야 하고, 손발이 온전치 못한 나병환자들에다 문맹과 기술이 없고, 때로는 신분증조차 없이 온 동네를 헤매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아버지와 아들은 꼭두 새벽같이 일어나 당나귀와 마차를 이끌고 멀리 잘 사는 아파트 촌 앞에 선다. 곧장 낡아빠진 누더기 옷을 걸친 아들이 그 아파트 집집을 돌며 초인종을 누른다. 그럴 때면 그 집 주인은 거지에게 주듯이 그 쓰레기통을 건네준다.

그것을 받아들고 돌아 온 넝마주이 집에서는 곧장 쓰레기를 분류하여 돈이 될 것과 안 될 것, 먹어도 될 것과 먹어서는 안 될 것들을 나눈다. 그리곤 나머지 것들을 동네 앞 어귀에다 버리는데, 낮이 되면 그 곳 넝마주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오물 찌꺼기 위에서 뒹굴거나 서로 제치면서 제 것을 움켜쥐기 위해 치고 박고 싸운다.


"당나귀 한 마리가 끄는 낡은 짐수레에 몇 개의 낡고 긴 의자와 작은 책상들, 침대 하나, 탁자 하나를 싣고, 그것들 한가운데 나는 당당히 자리잡고 앉았다. 나는 62살에 혼수를 장만한 셈이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이 빈민촌 안에 살아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25쪽)

그렇게 넝마주이들이 사는 그 동네 한 복판으로 62살 된 엠마뉘엘 수녀가 살림꾸러미를 싸들고 찾아 들어간 것이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교실로 쓸 곳을 먼저 구하여 사람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바느질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아랍어와 영어를 가르쳤고, 집에서 남편에게 맞아 상처가 난 아내들을 따로 정성껏 치료를 해 주었다. 그녀의 정성어린 사랑과 돌봄 속에서 점차 아이들은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몰려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녀 주위에 몰려 든 사람들과 아이들의 종교적인 성향이 그 고민거리였다. 그들은 기독교를 신봉하거나 아니면 알라를 신봉하는 회교도였다. 이를테면 그들 가운데 반은 카톨릭 신앙을 추구하고 있었고, 나머지 반은 모슬렘교도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를 안내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도이면 그들은 이슬람교도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서곤 했고, 반대로 이슬람교도들이 동행하면 그녀가 기독교도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막곤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종교적인 성향과 이념을 뛰어넘어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삶을 살았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대로, 모슬렘 교도들은 모슬렘 교도대로 기꺼이 수용하고 포용했던 것이다. 두 종교간의 우열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었던 것이다. 모슬렘 교도들에게 어떠한 회심이나 개종을 부추기지 않았고, 모슬렘과 기독교도들 간의 공존과 사랑을 몸소 이끌고 가르쳤다.

그래서 점차 기독교와 회교도 아이들이 형제애로 한데 뒤섞여 탐탐을 두드리며 연주도 하고, 또 함께 축구도 하는 등 하나가 되었다. 그 인근에 있는 무료 진료소와 분만실에서는 산모들의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어여쁜 아가들이 태어나기도 했다.

또한 수공업 센터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목공, 용접공, 기계공 등의 좋은 기술들을 배워서 이미 일자리를 찾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살람' 센터가 순조롭게 운영되었으므로 나는 5년 전에 내가 그 운영을 도왔었던 이집트 코프트 정교회의 수녀님들에게 '살람' 센터를 맡기고, 모카탐의 빈민촌(1만 명의 넝마주이들이 사는 곳)으로 떠났다. '살람'과 같은 활동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무(無)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유치원, 무료진료소, 분만실, 바느질과 재단, 문자교육, 수공업 센터, 클럽… 그와 함께 당연히 그래야 하듯이 성공과 실패, 행…그리고 불행, 이 모든 것이 조금씩 조금씩 실행되어 나갔다."(279쪽)

처음 그곳에 뿌리를 내린 지 10년이 지날 무렵 점점 왕성해지자, 그녀는 또 다른 넝마주이들이 사는 '모카탐'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렇듯 그녀는 자신이 뿌리를 내려 이룬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는, 결코 한 곳에 고여 있지 않으려는 참된 비움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자신의 힘이나 능력에서 인함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길 뿐이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섬기고, 무료급식을 하며, 행려자들을 먹이고 재우며, 고아들과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쩌면 그들도 '현대판 엠마뉘엘 수녀'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일을 토대로 사회적인 명성과 성공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으로 자신만의 고인 우물물을 만들어 내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면, 넝마주이들에게 한없이 주고 베푸는 엠마뉘엘 수녀의 삶을 통해 참된 섬김과 돌봄이 무엇인지 그리고 비움이 무엇인지 다시금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넝마주이 수녀, 엠마뉘엘

엠마뉘엘 수녀 지음, 이정순 옮김,
두레,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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