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436회

등록 2006.05.23 11:00수정 2006.05.2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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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방백린이 합장한 손을 펴는 것과 동시에 담천의가 검을 회수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으음....!"
"음.....한 수가 있는 친구로군....!"


두 사람의 입에서 신음인지 탄성인지 모를 음성이 흘러나왔다. 언뜻 방백린의 양손바닥에 혈흔이 비친 듯했다. 하지만 담천의는 약간의 충격을 느낀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검에서 전달되어 오는 알 수 없는 기운이 그의 혈맥을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담천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분명히 자신의 만검은 성공하는 듯했다. 허나 상대는 강했다. 마치 철벽에 막힌 듯한 둔중한 느낌도 느낌이려니와 쥐고 있던 검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온 몸으로 느껴지는 충격은 막막한 느낌을 가지게 했다.

방백린이 슬쩍 칼날들을 흔들며 두어 발자국 내딛었다. 담천의 역시 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칼날들을 스쳐 지나며 한 순간 시야가 가린다면 상대는 절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헌데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직하지만 투박한 음성이 연무장 안을 울렸다.

"이건 매우 불공평하군."

그 음성은 왠지 사람을 긴장시키는 기운이 있어 승부를 벌이는 두 사람 뿐 아니라 좌중의 이목을 소리 난 곳으로 집중시켰다. 하지만 소리가 들려 온 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고, 단지 시커먼 흑영이 대 위로 쏘아가는 것만 보았을 뿐이었다.

번쩍----! 츠츠츠츳----!


갑자기 섬광이 터지며 유성우가 흐르는 듯했다. 곳곳에 야명주가 박혀있어 대낮과 같이 밝은 상황에서도 허공을 감싸는 유성우가 눈을 부시게 했다. 우상이 벼락같이 호통을 치며 몸을 날려 흑영을 향해 쏘아갔다.

"웬 놈이냐?"


스으으으---

그의 검에서 오색영롱한 검기가 뿜어져 나오며 유성우를 감싸 드는 듯 했다. 오색영롱한 검기는 일제히 유성우가 뻗어나가는 것을 차단하며 산산조각내고 있었다. 굉렬한 광휘를 흩뿌리던 유성우가 잠시 빛을 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성우의 불꽃이 재차 터지기 시작하면서 유성우 안에 감추어진 암영(暗影)이 사방으로 비산되었다. 그러자 우상의 검에서 뿜어졌던 오색영롱한 검기가 가닥가닥 끊어지면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으흑......!"

쏘아가던 우상의 몸이 허공에서 줄 끊어진 연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천정에 매달려 있던 칼날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챙그랑--- 촤르르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수십 개의 칼날이 짧은 순간동안 연결된 가는 쇠사슬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허나 모두 떨어져 내린 것은 아니었다. 원을 그리고 있던 주위의 것들이 일정한 원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자, 아직 남아있는 칼날들은 본래 원을 이루고 있던 크기보다 정확하게 반으로 줄어있었다. 사각형의 대 위에 반원을 그리며 매달려 있던 칼날들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작은 원을 이루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래야 공평한지 몰랐다.

"감히 어떤 놈이......?"

우상이 이를 으드득 갈며 늘어진 검을 고쳐 잡았다. 그의 오른쪽 팔뚝에서는 피가 조금씩 배어 나오고 있었다. 단 한 수에 적지 않은 낭패를 당한 것 같았다. 우상 역시 성격상 물러서지 않는 인물이다. 더구나 자신이 공격하다가 낭패를 당한 터라 오기가 치밀었다. 금방이라도 손을 쓸 기세였다.

"우상....! 물러서게."

방백린은 중앙에서 담천의와 접전을 벌이다가 갑작스런 흑영의 출현에 칼날이 빽빽하게 늘어져 있는 방원을 빠져나오나 말했다. 이미 나타난 흑영이 누군지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못 보던 놈인데 꽤 괜찮은 솜씨를 가지고 있는걸.....? 어디 한 판 붙어볼까?"

나타난 흑영이 우상을 놀리듯 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감히 천동의 우상을 조롱할 수 있는 인물은 이 중원에서 세 명이 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인물이 바로 강명이다. 그는 수하들을 어디에 두고 왔는지 나타난 인물은 오직 그뿐이었다. 아마 수하들은 천동의 인물들에 의해 막혀있을 것이고, 우선 강명 혼자만 이곳에 당도했을 것이다. 아무리 천동의 인원이 많다 해도 강명을 어찌 막으랴! 방백린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다가 입을 열었다.

"강사제.... 뻔한 격장지계는 그만 두도록 하게. 아직 시간은 많네."

강명은 고의로 우상을 격동시키고 있다. 만약 우상이 손을 쓰게 된다면 이곳의 상황은 급반전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이 승부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중단된 채 아수라장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아마 강명은 그것을 노리고 있을지 몰랐다.

그제 서야 우상은 자신에게 낭패를 안겨준 인물이 누군지 깨달았다. 그토록 방백린이나 주위의 인물들이 마주치길 두려워했던 사내. 역시 강했다. 천동의 검학을 익힌 자신이 밀릴 정도로 강명이라는 사내는 강했다. 왜 그를 알고 있는 인물들이 그를 꺼려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직도 사제인가? 당신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군. 저 아이하고 뿐만 아니라 당신은 나하고 해결해야 할 빚이 있지 않을까?"

강명의 말투는 거침이 없었다. 사실 욕이 나가지 않은 것 만해도 다행이다. 방백린은 마지막까지 강명에게 가지고 있던 미련을 버렸다. 아쉬웠다. 이런 자리가 아니라면 설득이라도 해보았을 텐데.....

"원한다면 저 친구와 끝낸 다음 자네와 해결할 수 있네."

"나와 먼저 해결하면 안 될까?"

강명은 분명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담천의는 방백린의 상대가 되지 어렵다. 그렇다면 자신이 나서야 하고 최소한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고 싶어도 저 친구가 어떨지 모르겠네."

방백린은 교묘하게 말을 돌렸다. 강명을 상대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강명과의 승부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패하지는 않겠지만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담천의와의 승부를 미루던지, 아니면 불리한 상황에서 담천의와 승부를 결해야 한다.

강명의 시선이 담천의에게 돌려졌다. 담천의 역시 칼날의 숲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엉켜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헐렁한 오른쪽 팔소매가 안쓰럽게 보인다. 자신이 잘라낸 팔이다.

허나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이제 안다. 그가 왜 자신으로 하여금 그의 팔을 잘라내게 했는지... 그의 부친이 끝까지 지키지 못한 자신의 부친에 대한 빚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형제라면 목숨을 던져야 했을 상황에서 던지지 못한 그의 부친에 대한 업을 대신했을 것이다.

"............!"

갑자기 담천의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아주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이 우제를 믿고 맡겨주실 수 있으시오?"

담천의의 말에 강명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그는 연무장이 뒤흔들릴 듯한 대소를 터트렸다.

"핫핫핫......!"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연무장 안을 들썩이게 했다. 매달려 있는 칼날들이 웃음소리에 못 이겨 부르르 떨었다. 강명이 고개를 끄떡였다.

-- 내 너를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으랴!
(제 100 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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