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오후에 읽고 싶은 '어른을 위한 동화'

[서평] '파페포포' 작가가 그린 <눈 많은 그늘나비의 약속, 프라미스>

등록 2006.05.24 17:36수정 2006.05.2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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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눈 많은 그늘나비의 약속, 프라미스>.

<눈 많은 그늘나비의 약속, 프라미스>. ⓒ 예담

가끔 과립형으로 만들어진 비타민제를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이유 없이 피곤하거나 나른할 때, 한 입 털어 넣고 천천히 침으로 녹여먹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과립형 비타민 같은 경험을 눈도 할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이 있다. 내겐 '어른을 위한 동화'로 분류되는 책들이 그렇다.


지친 어른들의 나른한 오후를 따뜻하게 했던 '파페포포' 시리즈의 작가 심승현의 새 책 <눈 많은 그늘나비의 약속, 프라미스>는 그림 위주의 동화책이다. 책을 넘기면 글씨보다 그림이 먼저 보인다.

숲의 기억으로부터 온 눈 많은 그늘나비 '프라미스', 풀벌레 '보떼', 풀꽃 '꾸르', 해바라기 '플레르', 바람 '엘랑스', 해님 '프리조니'.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름부터 지나치다 싶을 만큼 동화적이고 그림체 역시 동화적이다.

동화적이라는 말이 어떤 느낌으로 전달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어른들에게 내놓아도 내쳐지지 않을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이미지를 <어린 왕자>와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처음 발견했던 것 같다.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그 두 책을 닮았다.

이 책에 등장한 캐릭터 가운데 '숲의 기억 마트리스'와 '해바라기 플레르'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본 듯한 주인공이라면, '풀벌레 보테'와 '눈 많은 그늘나비'는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저자 자신이 우연히 길에서 보았다는, 벽화 위에 그려진 눈 많은 그늘나비의 그래피티(분무기로 그려진 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를 책 마지막 장에 삽입해 둔 것이 이채롭다. '자신을 위로하는 글과 그림이기보다 독자에게 친절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 이번에도 자기 자신을 위한 작업이 되지 않았나 싶다'는 작가의 말과 함께 실린 이 사진 한 장은 책에 나오는 동화보다 더 오랫동안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책은 자연에서 얻은 힌트로 사람 사이의 소통을 고민하게 하고, 엇갈린 시선으로부터 이해의 마음으로 풀려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스토리보다는 햇살이 잘 비치는 날 그린 맑은 수채화 같은 그림들이 더 매력적인 책이다.

스프레이 캔으로 칙~칙~ 뿌려 그린 그래피티 하나를 보고 더 많은 그림들을 그려낸 작가 심승현의 예쁘고 따뜻한 그림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일상의 먹먹한 관계에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


어린이나 청소년, 어른까지 독자 범위를 따로 상정하지 않고 쓰였을 법한 책들은 생명력이 길다. 올해는 프랑스에서 <어린 왕자>가 출간된 지 꼭 60년이 되는 해다. 우리식으로 따지면 환갑을 맞은 그 얇은 책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에도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잊히지 않고 대를 이어 사랑받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러운 마음으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내 경우, 인간관계가 삐끗할 때 파페포포의 짧은 조언들이 고마웠다. 이 책 <프라미스>는 사람들이 어떤 날 펼쳐보고 싶은 책이 될지 내심 궁금하다.

프라미스 - 눈 많은 그늘나비의 약속

심승현 지음,
예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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