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 사퇴 정동영 '상처뿐인 104일'

사력 다해 뛰었지만 남은 건 '독배'... 정치 이력에 '오점' 남겨

등록 2006.06.01 17:18수정 2006.06.0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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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은 지난달 25일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읍소까지 했지만, 참패했다. 정동영 의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열린우리당은 지난달 25일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읍소까지 했지만, 참패했다. 정동영 의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현애철수장부아(縣厓撤手丈夫兒)'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는 것이 참된 대장부라는 뜻. 집권 여당을 이끌던 정동영 의장은 이 말을 남기고 의장직을 떠났다. 취임 104일 만이다. 이로써 열린우리당은 창당 이후 2년 동안 8번째 당의장이 바뀌는 불명예를 보탰다.

정동영 의장은 1일 영등포 당사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이제 초여름이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들여다 볼 틈도 없었다"며 "동서남북, 서울에서 제주, 인천에서 독도, 사력을 다해서 발로 현장을 뛰었다"라고 '신몽골기병'의 소회를 털어놨다.

통일부 장관직을 내놓고 당으로 돌아온 정 의장은 전당대회 출사표를 던지며 "독배를 마실 각오로 나를 던진다"고 말했다. 백의종군할 수도 있었지만 어려움을 피하는 것은 삶의 원칙에 벗어난다며 민심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경쟁자 김근태 최고위원을 제치고 당의장에 당선됐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지지율 1위 탈환과 지방선거 승리를 공언하며 지난 100여일 하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전국을 돌았다. 아내와 경기도 용인 수녀원에 피정을 간 것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휴일을 보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심은 돌아서지 않았다. 결국 독배를 마신 꼴이 되었다. 정 의장은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김근태 최고위원에게 의장직을 넘겼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달 25일 명동에서 허리통증으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유세를 했다.(왼쪽)/ 정 의장이 개표방송을 보며 기침을 하고 있다. 정 의장은 기침으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달 25일 명동에서 허리통증으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유세를 했다.(왼쪽)/ 정 의장이 개표방송을 보며 기침을 하고 있다. 정 의장은 기침으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정 의장은 이날 준비한 회견문을 잠깐씩 '컨닝'했을 뿐 낭독하지는 않았다. 선거 참패에 대한 기자들의 곤란한 질문을 의식한 듯 일문일답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자가용으로 향했다. 기자회견 전 우상호 대변인은 "오늘은 열린우리당이 괴로운 날"이라고 말문을 열었고, 정 의장의 얼굴에는 이날 오전까지 보인 입가 미소도 사라졌다.


우 대변인은 회견을 마친 뒤 "선거 유세로 체력이 약해졌고, 기침과 허리 통증도 심하다"며 "당분간 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주변에서 정 의장에게 종합검진을 제안해 결과에 따라 입원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전날 당사 선거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시청할 당시,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던 정 의장이 크게 기침을 하자 사진기자들은 일제히 플래시를 터뜨렸다. 이를 지켜보던 한 측근은 "마치 (정 의장을 향하는) 총알소리 같다"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정 의장을 향하는 총알 소리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1일 오전 당사에서 5.31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던중 고개를 숙인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1일 오전 당사에서 5.31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던중 고개를 숙인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유인태 의원 등 당 중진들은 정 의장의 사퇴를 만류했지만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선거결과에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강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거결과를 정 의장의 책임으로 보는 시각은 적다. 다만 누군가는 엄중한 민심의 심판에 책임을 지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당의장의 책임은 무한대였다.

사실 정 의장의 당내 리더십에 대해선 우호적인 평가가 많았다. 이해찬 전 총리의 골프 파문이 터졌을 때 당·청 사이에서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 조기진화에 성공했고, 대야 협상에 있어서도 김한길 원내대표와 함께 주도권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민주·
민노와 공조해 사학법 재개정안과 주민소환제 등 개혁법안을 처리한 것은 지지층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결국 열린우리당에 보다 본질적인 책임과 반성을 묻는 민심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선거기간 "정치를 시작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던 정동영 의장. 노인폄훼 발언에 더해진 이번 '오점'이 앞으로 그가 가는 정치 이력에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된다.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마지막 유세가 열리던 30일밤 명동유세장을 찾은 정동영 우리당 의장이 쓸쓸한 표정으로 연단아래에 서 있다.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마지막 유세가 열리던 30일밤 명동유세장을 찾은 정동영 우리당 의장이 쓸쓸한 표정으로 연단아래에 서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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