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수십 번도 더 중단하고 싶었다"

[인터뷰] 444회로 마감한 <단장기>의 작가 이웅래 시민기자

등록 2006.06.02 10:27수정 2006.06.0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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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444회를 마지막 편으로 대단원의 <단장기> 연재를 끝낸 이웅래 기자.

444회를 마지막 편으로 대단원의 <단장기> 연재를 끝낸 이웅래 기자. ⓒ 조경국

무협지는 검열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열혈독자이자 이른바 (선생님의 판단기준으로) 문제 학생들은 무협지를 보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강구했다. 교과서로 표지갈이하는 것은 기본이고, 낱장을 축소 복사를 해서 참고서 사이에 끼워놓고 보기도 했다. 새로운 책이 나오면 돌려보는 것은 기본이요, 만약 돌려보다 들키더라도 원 소유주를 불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김용 선생의 <영웅문>(원래 제목은 <사조영웅전>이다)은 끊을 수 없는 마약과도 같았다. 곽정과 양과(<영웅문>의 주인공)에 빠져 지낸 시간이 얼마일까. 하여간 <영웅문>은 서서히 인기를 잃어가던 1990년대 무협소설계에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1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긴 당시 구입했던 영웅문 1부 한질이 우리 집 책꽂이에도 꽂혀 있는 것을 보면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밤을 새워가며 무협비디오를 보고 만화방을 뻔질나게 들락거리며 무협지를 애독하던 그 애정도 철이 들자 식기 시작했다. 뭐 이런 것들이야 한때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엔 가슴 한쪽이 아릿했다. 작년 개봉했던 주성치의 <쿵푸허슬>을 보며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 그냥 저우싱츠(주성치)의 연기에 웃기만 했다면 무협소설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이다.

설마 요즘도 무협소설이 인기를 누리고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강호를 누비는 그 재미를 잊지 못하는 독자들은 여전히 무협의 세계를 헤매고 있다. 2004년 8월부터 거의 만 2년 동안 444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단장기>를 아쉬워하는 독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매일 아침 <단장기>를 보기 위해 <오마이뉴스>를 클릭했던 열혈독자들을 대신해 지난 26일 이웅래 시민기자와 만났다.

"아르바이트로 무협작가 되었다"

그가 처음부터 무협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것이 그가 무협작가로 데뷔하는 직접적인 계기였다. 걸핏하면 휴교령을 내리고, 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과외 아르바이트마저 과외 금지령으로 막히자 머리를 식히기 위해 무협지를 읽기 시작했던 것.

그리고 어느 날 그에게 '운명같은' 글귀가 눈에 박혔다. 읽고 있던 무협지 맨 뒷장에 있던 "무협작가 지망생 모집합니다". 당장 그 출판사를 찾아갔다. 그저 읽기만 하던 독자에서 드디어 수많은 무림고수들을 죽이고 살리는 강호의 세계를 그려가는 무협작가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가 무협작가가 되었던 뒷이야기는 김혜원 기자의 '<단장기>라는 애인과 이별을 준비하는 남편'이라는 글을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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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기>라는 애인과 이별을 준비하는 남편


a "무협소설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무협소설 작가로 활동 하던 1980년대 추억을 들려주고 있는 이웅래 기자와 김혜원 기자.

"무협소설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무협소설 작가로 활동 하던 1980년대 추억을 들려주고 있는 이웅래 기자와 김혜원 기자. ⓒ 조경국

"처음에는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없었습니다. 누런 200자 원고지에 습작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출판사를 찾아왔지만 단 한 편도 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 경우에는 출판사 사장님이 괜찮다고 보셨는지 직접 지도도 해주셔서 금방 '지망생' 신분을 벗고 첫 작품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단장기>는 첫 작품이 아니었다. 당시 데뷔하자마자 <무림황제> <천외비주> <야훼겁> 등 많은 작품들을 내놓았다. 대학원 학생 신분으로 결혼해 뚜렷한 수입이 없었던 시절, 무협소설을 쓰는 것은 학비와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그는 당시 한편에 250만원 정도의 원고료를 받았다(최고 인기작가의 경우 한 작품에 1천만 원 정도의 원고료를 받았다고 하니 그렇게 적은 원고료는 아닌 셈이다). 하지만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도 자연스럽게 '강호'를 떠났다.


"당시 쓴 무협소설은 사실 떳떳하게 내놓을 만한 작품이 없습니다. 내용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작가의 고뇌가 들어가는 창작물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감히 작품이라고 말씀드리기도 어렵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무협작가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고, 대학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무협 쪽을 잊어버렸습니다."

"연재 중단할까 하는 생각 수십 번도 더 했다"

a 연재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있는 이웅래 기자. 수십 번도 더 그만 둘 생각을 했었다고.

연재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있는 이웅래 기자. 수십 번도 더 그만 둘 생각을 했었다고. ⓒ 조경국

무협소설이라고 하면 그냥 상상만으로 쓰겠지 생각하겠지만,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그냥 쓴다고 이야기가 엮어졌다면 아마 '지망생'들이 펜을 놓고 출판사 사무실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뻥'을 치더라도 토대가 튼튼해야 독자를 사로잡는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수준있는 무협소설이 되려면 중국 역사를 머릿속에 꿰고 있어야 한다. 고강한 내공을 소유한 독자들에게 어설픈 스토리를 들이댔다간 오히려 작가가 혈을 제압당할 수도 있는 법.

"예나 음식, 의복 등 자료를 되도록 많이 찾으려 했습니다. 좀 더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쓰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자료를 모아볼 생각입니다. 독자 분 중에 무예 뿐 아니라 역사나 문화자료가 있으면 제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의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는 <단장기>를 쓰기 위해 상당한 내공을 축적했다. 특히 원말 명초의 중국 역사나, 백련교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 수소문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다고. 특히 당시 역사 속 인물들을 <단장기>에 녹여내기 위한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인물이 실존인물인지 한 번 알아보는 것도 <단장기>를 재미있게 읽는 방법 중 하나다.

아마 이런 작가의 노력 때문에 단장기가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야기를 끌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연재 무협소설은 중간에 한 번 '수가 꼬이면 풀기가 어려워' 연재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단장기>를 매일 아침 클릭했던 독자들도 아마 이 부분을 가장 염려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항상 노련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런 실력은 아마 바둑(그의 바둑실력은 기원에서 1급으로 통한다)을 두며 쌓은 것이리라. 2백자 원고지로 1만매, 그동안 <단장기>를 매일 연재하며 중간에 이야기가 엇나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상상이 간다.

"보름 정도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두세 번 있었습니다. 써놓은 것은 마음에 들지 않고 새로 쓰면 이상해 보이고, 다음 연재 분은 없고. 감정이 잡혀야 쓸 수 있는데 일에 쫓기다 보면 머리 속에 <단장기>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연재를 중단할까 하는 생각도 수십 번 했습니다."

"8월 1일부터 새로운 역사무협소설 <천지> 연재 시작"

a 그는 8월1일 부터 새로운 역사무협소설 <천지>를 연재할 계획이다.

그는 8월1일 부터 새로운 역사무협소설 <천지>를 연재할 계획이다. ⓒ 조경국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역시 <단장기>의 후속작이리라. 이제 다시는 연재는 하지 않겠다 결심했지만, 강호에 한 번 발을 디디면 다시 빼기는 힘든 법. 2개월 동안 휴식기 갖고 8월 1일부터 <천지>라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쉬워했던 독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그리고 좀 더 자료를 모은 다음 <단장기> 2부도 쓸 생각이란다.

"단장기와 연관된 2부도 생각했는데 좀 더 자료를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2개월 정도 쉬고, 단장기를 쓰면서 틈틈이 초고를 써 놓았던 <천지>란 작품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예정 대로라면 8월 1일부터는 <천지>란 작품을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를 배경으로 한 무협소설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구상으로 끝날지 아니면 글로 세상에 빛을 볼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소설과 무협소설 사이의 경계를 긋기 어렵군요."

연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작가의 힘은 작가의 '내공'만 가지고선 힘들다. 독자들의 뜨거운 격려와 따끔한 충고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단장기>를 아껴준 전 세계 독자들(국내 독자들 보다는 해외에 있는 독자들이 더 꼼꼼한 평을 보내왔다고)의 '댓글'과 '쪽지'는 연재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단다. 그동안 그렇게 인연을 맺은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다시 연재를 시작할 그에게 내공을 모아 격려의 '전음' 보내주길.

a <사조영웅전> 원 제목으로 김영사에서 재출간된 김용의 <영웅문>. 1986년 고려원에서 출간된 <영웅문>은 당시 꺼져가는 무협소설의 인기를 되살려 놓았다.

<사조영웅전> 원 제목으로 김영사에서 재출간된 김용의 <영웅문>. 1986년 고려원에서 출간된 <영웅문>은 당시 꺼져가는 무협소설의 인기를 되살려 놓았다. ⓒ 김영사

우리나라 무협소설의 효시로 불리는 작품은 작가 김훈씨의 아버지인 김광주 선생이 1961년 중국작품 <검해고홍>을 번안해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정협지>.

이후 김광주 선생이 1967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비호>는 1968년 출간될 당시 '장안의 지가'를 올렸다고 회자될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이다. <비호>는 작가 김훈씨가 병석에 있던 김광주 선생의 구술을 받아 적었고, 당시 이 작업이 자신의 글쓰기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대만작가 와룡생의 <군협지>등이 큰 인기를 끌었고, 1970년대 후반부터 국내 작가들의 작품활동이 시작됐다. 1980년대 초반 서효원, 야설록, 금강, 사마달, 검궁인 등 국내작가들의 창작무협이 전성기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무협소설은 점점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1989년 역사와 무협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김용의 <영웅문>이 완역되면서 다시 무협소설의 인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1990년대 이후엔 PC통신에서 연재되는 무협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2000년 이후에는 전동조의 <묵향>이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2000~2004년까지 전국 14개 대학도서관 대여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1980년대 ‘현업’에서 작품활동을 했던 이웅래 기자에게 무협소설을 추천해 달라 부탁했다. 작가와 대표작을 옮겨 싣는다.

사마달 <대도무문>, 야설록 <강호벽송월인색>, 서효원 <대자객교>, 금강 <금검경혼>, 용대운 <독보건곤>, 좌백 <대도오>(이상 국내작가), 김용 <영웅문>, 고룡 <유성호접검>(이상 중국 작가)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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