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약 TV 광고 시대 '공익성'도 챙겨라

등록 2006.06.05 16:55수정 2006.06.0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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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통해 처음 방영된 피임약 광고의 한 장면.
TV를 통해 처음 방영된 피임약 광고의 한 장면.여성신문
[김미량 기자] 남성의 95%, 여성의 80% 이상이 혼전 성 경험이 있고(‘젝시인러브’ 20~30대 회원 남녀 2만명 설문조사. 2005), 성 경험이 있어도 반드시 결혼하지 않는다는 여성이 증가하는 등 한국 미혼 여성의 성의식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가운데, 피임약 광고가 처음 공중파 방송에 등장했다.

서울대 여대생이 등장해 “사랑하려면 진짜 똑똑해야 한다” “사랑에 빠져도 챙길 건 챙기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에 여론은 대체적으로 ‘긍정적’ 반응. 그러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여성의 피임약 복용률이 3% 미만인 이유가 피임약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정보 부족 탓이며,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공익광고’ 등의 공적서비스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김민기 방송광고심의위원회 위원장(숭실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은 “외국의 경우 피임기구 및 약품의 상업광고 방송이 낙태, 에이즈, 성병 예방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공중파를 타기 시작한 피임약 광고가 공익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품 판매를 위한 상업광고가 공익적 역할을 하기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조영미 (재)서울여성 정책개발부 팀장은 “충분한 정보 제공 없이 방영되는 상업광고는 ‘피임은 여성의 일’이라는 기존 통념을 강화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피임약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히 강하다. 박금자 산부인과 전문의는 “심지어 낙태를 선택한 여성들에게 앞으로 피임약을 복용하라고 권하면 ‘영구 불임’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피임약에 대한 잘못된 상식은 여성들 스스로 정보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 강한 거부감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의학계에서는 일반 경구 피임약의 경우 안전성 부분은 입증되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피임약 제약사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피임약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게재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관심 자체가 적어 고민”이라고 털어놓는다.

박 전문의는 “피임약 복용은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출산 시기를 결정하는 권리”라며 “이젠 낙태를 피임의 한 방법으로 선택하는 일을 막아야 할 때”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해 35만 건에 이르는 낙태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아직까지도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 2004년과 2005년에 에이즈퇴치연맹은 콘돔 공익광고를 기획·방영했지만 에이즈 예방만 강조돼 피임의 중요성은 간과됐다. 정부 차원의 노력은 보건복지부가 모자보건사업의 일환으로 보건소에서 불필요한 임신을 막기 위해 여성들에게 피임약을 제공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조 팀장은 “안전한 성관계를 위해서는 여성들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동시에 저렴한 피임제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며 “이 같은 정보 제공과 함께 남성의 피임 책임을 강조하고 10대가 피임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는 공적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임은 남성이 쉽다
콘돔 사용률 11.8%...바른 사용법 잘 몰라

다양한 피임법 중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콘돔’. 사용률이 11.8%에 달해 여성용 경구 피임약 3%에 비해 3배 가까이 높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하위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피임약처럼 실사용자가 콘돔에 대한 상식이 약하다는 것.

일반적으로 콘돔 하면 남성용을 일컫는다. 콘돔은 다른 피임법에 비해 접근성이 쉽고 비용 면에서도 부담이 적어 성관계 시 선호도가 가장 높다.

지난해 피임연구회 회장인 순천향대 산부인과 이임순 교수가 400명의 미혼 여성(만17∼25세)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미혼 여성 성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임 경험이 있는 여성의 89%가 콘돔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콘돔의 피임 실패율이 14%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사용자가 정확한 착용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우선 콘돔에도 4∼5년의 유효기간이 있다. 따라서 사용 전 반드시 확인하고 검사필증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콘돔 착용 시 손톱이나 반지 등을 조심하고, 한 번 사용한 콘돔은 재사용하지 않는다. 또 성관계 후에는 성기 축소로 인해 정액이 질 내에 흐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편 지난 10일부터 지하철 내부에 본격적인 콘돔 상업광고가 시작됨에 따라 소비자를 겨냥한 관련 업계의 적극적인 공세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콘돔 쇼핑몰 ‘고추장갑’의 한철준 실장은 "이제는 콘돔에 대한 소비자의 안목이 높아져야 한다"며 "품질 낮은 제품이 도태될 수 있도록 콘돔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남성용 피임약도 상용화 임박

피임약 광고가 공중파 방송에 등장함에 따라 ‘피임약 대중화’ 시대가 예견되는 가운데,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관련 정보를 요구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피임약 복용은 원치 않는 임신을 줄이고, 출산 시기의 자기 결정권 확대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지만 주 소비자인 여성들이 피임약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잘 모르고 있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가임 연령(15∼44세) 여성들의 경구용 피임약 복용률은 3% 미만으로 미국, 유럽, 그리고 아시아 국가 여성들의 복용률 15∼30%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는 임신 경험이 있는 미혼 여성의 95%가 인공유산을 선택하는 현실(2005 한국 미혼여성 성의식 실태조사, 순천향대 산부인과학교실)과 무관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한국 여성들의 피임약 복용률이 낮은 이유를 ‘안전성’이 아닌 ‘정서적 거부감’으로 분석한다. 50년대 초 경구용 피임약이 상용화된 후 반세기 동안 안전성은 충분히 검증되었지만, 많은 여성들은 ‘피임약 복용은 불임으로 이어진다’는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박금자 산부인과 전문의(피임연구회)는 "피임약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여성들 스스로 정보를 찾지도 않고, 오히려 외면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실제로 전문의들은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사후응급피임약’의 경우도 제품에 대한 정보 미흡으로 인한 오·남용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박 전문의는 또 "다양한 피임약품·기구가 시장에서 경쟁하고, 소비자가 좋은 제품의 정보를 공유할 때 피임 방법에 대한 선택권도 넓어진다"고 주장했다.

한편, 피임약의 대중화가 자칫 피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는 분위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업계에서는 "현재 남성 피임약을 개발하고 있으며, 조만간 상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출산 기피 현상으로 인해 피임 기간이 길어지고, 이에 따른 관련 산업의 규모도 크게 성장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국내 경구용 피임약 시장점유 1위의 한국쉐링제약 안지영 차장은 "O사의 공중파 광고로 피임약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기대하지만 광고심의 규정상 제품 정보를 담을 수 없어 광고가 바로 피임약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국내 피임약품 제약사들은 광고보다는 인터넷 미니홈피, 성교육 자료 배포 등을 통한 정보 제공에 더 주력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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