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의 상처... 아픔은 침묵으로 머무르고

[사진] 전북 정읍 고부면 두승산을 가다

등록 2006.06.06 11:13수정 2006.06.0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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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처진 한 가지를 들추자 가지에 주렁주렁 붉은 산딸기들이 두 눈을 똑 뜨고 놀란 표정이다.
땅에 처진 한 가지를 들추자 가지에 주렁주렁 붉은 산딸기들이 두 눈을 똑 뜨고 놀란 표정이다.서종규
갑오동학혁명의 진원지 전북 정읍 고부면에 있는 두승산(444m)은 아득한 호남평야 가운데 우뚝 솟아난 산이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넓은 호남평야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산이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산 정상 바위에 '말(斗)'과 '되(升)'가 조각되어 있어서 두승산이라고 불렀단다. 이 두승산은 부안의 변산, 고창의 방장산과 더불어 삼신산으로 꼽히는 명산이다.


이 산을 멀리서 보면 거북 형상과 너무 흡사하다. 암석으로 된 이 산의 줄기는 남동에서 북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길게 뻗어 있고, 북동쪽은 가파르며 북쪽으로는 천태산과 이어져 있다.

산 정상 바위에 '말(斗)'과 '되(升)'가 조각되어 있어서 두승산이라고 불렀단다.
산 정상 바위에 '말(斗)'과 '되(升)'가 조각되어 있어서 두승산이라고 불렀단다.서종규
지난 4일 오후 1시 40분, 산을 좋아하는 '풀꽃카페 토요산행' 팀 12명은 광주에서 출발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정읍으로 향했다. 정읍 나들목으로 나가 황토현 전적지가 있는 고부면 쪽으로 가다 보니 눈앞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 나타났다.

오후 3시에 등산로 입구인 고부면 입석리에 도착했다. 입석리는 전국적으로 뽕나무 재배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잠업이 활황을 누리던 70년대엔 누에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대형버스로 견학을 다녀갔던 곳으로 아직도 많은 뽕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요즈음도 입석리에는 20여 농가들이 봄과 가을에 누에를 치고 있는데, 누에고치를 생산하여 비단의 원료인 실크를 생산하기 위함이 아니다. 누에를 길러 약재로 판매하기 위함이다.

한 때 누에치는 것을 포기하였다가 누에가 당뇨와 항암에 효과가 있는 것이 알려진 후로 다시 누에를 치기 시작했다는 곳이다.


농노를 타고 죽 올라가니 청소년 수련원이 나왔다. 청소년 수련원에 주차를 해 놓고 등산을 시작하였다. 청소년 수련원 옆에 조그마한 저수지가 하나 있었다. 우리는 저수지 옆에 난 산길을 타고 올랐다. 곧바로 유선사까지 가파른 길이 계속 되었다.

우리는 산딸기 따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따고 있었다.
우리는 산딸기 따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따고 있었다.서종규
처음에 조릿대가 많은 곳을 지났다. 조릿대는 제법 키도 컸고 굵었다. 조릿대가 많은 곳을 지나자 땅으로 뻗은 나무에 붉은 점들이 보였다. 바로 산딸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땅에 처진 한 가지를 들추자 가지에 주렁주렁 붉은 산딸기들이 두 눈을 똑 뜨고 놀란 표정이다.


맞다. 어린 시절, 산딸기는 6월 현충일 근방, 보리를 베기 시작하면 익었다. 보리타작에 바쁜 일손을 도와야 하는데, 자꾸 그 붉은 산딸기의 유혹에 살며시 빠져 나와 산딸기나무 아래에서 서성거렸다. 잘못하면 산딸기나무 가시에 찔리지만, 그 달콤한 산딸기의 유혹엔 생채기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산딸기를 따먹으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바로 뱀이다. 그 놈의 뱀도 산딸기를 따먹으려는 것인지 꼭 산딸기나무 아래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가다가 돌멩이를 들고 쫓아가면 어느 새 뱀은 사라지고 없다. 그래도 뱀이 나올까 걱정이 되어 그 먹고 싶은 산딸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린 시절 뱀침으로 알았던 하얀 거품들은 애벌레들의 집이다.
어린 시절 뱀침으로 알았던 하얀 거품들은 애벌레들의 집이다.서종규
그놈의 뱀이 뱉어 놓은 침이 풀이나 나뭇가지에 흰 거품이 되어 묻어 있었다. 여기저기 희끗희끗 묻어 있는 뱀침은 징그러웠다. 그 뱀침이 있으면 산딸기 따는 것도 포기하고 빨리 달아났다.

그런데 사실은 그 흰 거품은 뱀침이 아니다. 어느 곤충이 애벌레를 보호하기 위하여 품어 놓은 거품인 것인데 말이다.

유선사라는 조그마한 절에 올랐다. 유선사는 불사를 하고 있었는데, 산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호남평야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유선사에는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산에서 내려오는 조각품이 이색적이었다.

두승산 높은 지역에 자리잡은 유선사에서 내려다 본 호남평야의 모습
두승산 높은 지역에 자리잡은 유선사에서 내려다 본 호남평야의 모습서종규
유선사에서부터는 능선을 타고 나아간다. 조금 가니 두승산 정상인 상봉(395m)에 도착했다. 정상이라는 팻말하나만 우뚝 서 있다. 평범한 산 능선을 따라 더 나아가니 두승산에서 가장 높다는 말봉(444m)이 나타났다.

말봉에는 '되'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바위가 있었고, 그 바위 앞에 ‘수두본승(水斗本升)’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다. 그리고 '망선대(望仙坮)'라는 글씨가 있는 바위도 있었다. 옛날에는 '말' 모양의 바위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었다.

두승산 말봉에는 '되'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바위가 있었고, 그 바위 앞에 ‘수두본승(水斗 本升)’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다.
두승산 말봉에는 '되'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바위가 있었고, 그 바위 앞에 ‘수두본승(水斗 本升)’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다.서종규
사방은 황사인지 흐릿하여 멀리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그 넓은 호남평야가 다 보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쪽으로 변산 앞 바다인 칠산바다의 수평선이 푸름을 머금은 채 한 아름 가슴에 안겨오고, 동쪽으로는 정읍시가지가 한눈에 굽어보인다는데 정읍의 시가지만 흐릿하게 보였다.

말봉을 지나 능선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싸늘한 침묵 한 가운데 들어 선 느낌이 들었다. 능선 아래가 모두 산불이 할퀴고 간 상처만 가득 남아 있었다. 그 울창하던 소나무들이 모두 벌겋게 죽어가고 있었다.

능선에 초여름의 녹음이 우거져야 하는 녹음은 간 데 없고, 겨울과 같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이 바람에 날렸다. 말봉을 갓 지난 능선부터 ‘정읍 자생녹차 품종 보존지역’까지 많은 산들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한 번의 산불이 남기고 간 상처는 너무 깊었다.

어디에서 손을 써야 하는지 몰라 몇몇의 소나무들은 잘라 놓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나무들은 밑동이 까맣게 타 있고 잎이 붉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땅에서 올라와야 하는 많은 풀들도 메말라 있었다.

봄의 기운이 아까운 몇몇의 생명을 깨웠는지 땅 속에 뿌리를 두고 있던 칡이며 고사리들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줄기는 다 타버린 나무의 밑동에서 다시 새순이 솟아오르고 있는 떡갈나무가 있었다.

능선 아래가 모두 산불이 할퀴고 간 상처만 가득 남아 있었다.
능선 아래가 모두 산불이 할퀴고 간 상처만 가득 남아 있었다.서종규
산불이 난 자리, 아픔은 침묵으로 머무르고 있었다. 여름이 되어야 하는 산 능선에 아직도 불에 타버린 나무들만 우두커니 서 있는 침묵의 산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행스럽게 가파른 비탈길에 서 있는 소나무들은 불에 할퀸 흔적들이 있는데, 윗가지들이 아직도 살아 있었다.

우리들도 침묵 속을 걸어 내려갔다. 모두 말이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소나무 가지들이며, 붉게 말라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내려갔다. 죽어버린 산의 침묵 속에 갇혀서 내려갔다. 한 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적막만 온 산을 감싸고 있는 것이었다.

한 번의 산불이 남기고 간 상처는 너무 깊었다.
한 번의 산불이 남기고 간 상처는 너무 깊었다.서종규
다행스러운 것은 두승산의 동남쪽 일부만 산불이 할퀴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 봉우리 정도는 침묵만 도는 안타까운 산이 되어 있었다. 산이 높지 않아서 꼭 산책을 하는 기분으로 능선을 밟던 우리들의 마음에 무거운 침묵으로 자리잡은 두승산의 산불 난 현장을 빠져 나왔다.

‘정읍 자생녹차 보존지역’에서 하나의 능선을 넘어 보문사 입구로 나아갔다. 가는 길목엔 누가 살았는지 모를 빈집이 하나 놓여 있었다. 지붕은 새롭게 단장을 하였지만 마당엔 쑥대만 가득 우거져 있었다. 마당에 심어진 앵두는 이제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가파른 비탈길에 서 있는 소나무들은 불에 할퀸 흔적들이 있는데, 윗가지들이 아직도 살아 있었다.
가파른 비탈길에 서 있는 소나무들은 불에 할퀸 흔적들이 있는데, 윗가지들이 아직도 살아 있었다.서종규
보문사 입구를 내려오자 ‘두승산성 서문지’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두승산성’은 ‘승고산성’이라고도 하였는데, ‘증고문헌비고’에는 삼한시대의 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단다.

또한 산성 터에서 백제 계통의 토기나 마제석기가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고려의 토기 조각과 기와가 발견되기도 하였단다. 산성은 천연 절벽을 이룬 뒤쪽 능선을 포함 약 5㎞의 길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6월의 초에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 땀이 많이 나는 산행이었다. 두승산을 능선을 돌아 오후 5:30에 다시 출발지로 돌아 왔다. 우리 일행은 입석리에 많이 심어진 뽕나무밭으로 들어갔다. 까맣게 익어 가는 오디를 따 입에 넣었다. 상대방에 붉어진 혀를 보며 어린 시절을 떠 올렸다.

줄기는 다 타버린 나무의 밑둥에서 다시 새 순이 솟아오르고 있는 떡갈나무가 있었다.
줄기는 다 타버린 나무의 밑둥에서 다시 새 순이 솟아오르고 있는 떡갈나무가 있었다.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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