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서 펼쳐진 월드컵 승리 기원 판굿

[민족예술공연단 공연 동참 취재기 1]

등록 2006.06.08 17:19수정 2006.06.0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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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중 부채춤을 추는 모습 ⓒ 김영조

2006년 월드컵이 눈앞에 다가왔다. 온 세계가 월드컵의 함성에 묻히고 있다. 우리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은 다시 월드컵 본선무대에 올랐고, 4년 전처럼 16강, 8강, 4강을 기원하게 되었다. 우리 겨레도 이제 "대~한민국!"의 물결에 밤잠을 설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4년 전과 달리 한반도가 아닌 먼 남의 땅에서 경기가 열리기에 월드컵 승전을 기원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이 동원될 필요가 있다.

그런 때에 윤인숙 단국대 초빙교수가 단장을 맡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소속 (사)'전통예술단 영산'이 주축이 된 민족예술공연단이 독일을 찾게 되었다. 공연단은 무려 16시간의 여행 끝에 5월 31일 저녁 6시에 암스텔담을 거쳐 베를린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날 주독일 대사관 한원중 총영사가 한 교포식당에서 공연단을 위한 환영만찬을 열어 여독을 위로해 주었다.

다음날인 6월 2일 저녁 7시 30분 공연단은 베를린 시내 '우라니아' 극장에서 독일 교포들과 독일 시민들을 맞았다. 많은 홍보를 하지 못해 걱정으로 시작한 공연은 856석의 극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로 용기를 얻고 공연을 시작했다.

우선 공연단은 2002년 월드컵을 중심으로 한 영상과 함께 이정일 외 4명의 사물놀이팀이 꽹과리, 장구, 징, 북, 태평소와 함께 한 비나리 연주로 시작했다. 바닥을 진동시키는 사물놀이 연주는 독일인 특히 어린이들도 아낌없는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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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우라니아 극장을 메운 청중들 ⓒ 김영조

이어서 위송이 외 10명의 진도북춤은 사물놀이의 포효를 이어받았다. 다음엔 황경호의 장구 반주로 송정민의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가 잔잔하게 가슴을 어루만지듯 펼쳐졌다.

그리곤 흰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은 윤인숙 단장이 윤이상 작곡 <심청> 오페라 아리아 중에서 <친절한 젊은 분에게>와 <지금 나는 떠나야 해>를 문정재의 피아노와 황경호의 대금반주로 불렀다. 이 <심청> 오페라는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 전야제에서 공연되어 호평을 받았는데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2006년 독일 공연에서 다시 연주하게 된 것이다.

다시 윤이상의 곡이 흘렀는데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가락>을 신지훈의 플루트와 문정재의 피아노로 연주했다. 다음 전미라 외 10명의 부채춤이 이어졌다. 펼쳤다 접었다 하는 커다란 부채는 마치 나비의 춤을 연상하게 했고, 쉼없이 돌아가는 아름다운 여인들의 몸짓은 환상 그 자체였다. 청중들은 손뼉과 환호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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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아리아를 열창하는 윤인숙 단장 ⓒ 김영조

잠시의 휴식 뒤에 다시 공연은 시작된다. 먼저 윤인숙 단장이 황병기 작곡의 <우리는 하나>를 황경호의 훈ㆍ대금, 문정재의 피아노, 이정일의 장구 반주에 맞춰 불렀다. 이 노래는 '우리는 하나'라는 가사로만 이루어진 것인데 언제 어디서나 청중들의 반응은 노랫말처럼 하나가 된다. 역시 베를린에서도 한국인 교포들뿐 아니라 독일인들까지 감동 그 자체였다.

윤 단장은 <우리는 하나>에 이어 김동진 작곡 <신아리랑>도 불렀다. 역시 이 노래도 황경호의 훈ㆍ대금, 문정재의 피아노, 이정일의 장구와 함께 했다. 아리랑은 언제나 우리 겨레의 노래인 모양이다. 청중들도 따라 부르며 감격스러워 했다.

마지막 마무리는 이정일 외 18명이 뿜어내는 판굿, 풍물놀이. 이 판굿은 치배(풍물굿에서, 타악기를 치는 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들이 부포상모(상쇠가 쓰며, 백로나 오리털로 만듬), 채상모(끝에 헝겊으로 만든 긴 채를 단 상모), 12발상모(채를 12발, 약 180cm 정도로 길게 한 상모)를 쓰고 온갖 재주를 부린다.

부포상모의 앙증스러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상모의 채를 빙빙 돌리다가 원반돌리기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 판굿의 가장 극적인 부분은 12발 상모돌리기이다. 북잽이는 우선 긴 채를 감고 나온 뒤 청중들을 향해 힘껏 던졌다. 청중들은 깜짝 놀랐지만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채를 자유자재로 돌리는 12발상모놀이는 청중들을 꼼짝 못하게 사로잡는다. 교민, 독일인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까지 큰 손뼉으로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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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굿 중 12발상모를 돌리는 장면 ⓒ 김영조

아쉬워하는 청중들을 위해 공연이 끝난 뒤 리셉션을 열었다. 이 자리엔 주한 독일대사관 한원중 총영사 부부가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고, 많은 교포와 독일인들도 참석했다. 김암수(61)라는 교민은 온몸에 태극기를 감고 또 태극기를 휘날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베를린에 산다는 김순옥(64)씨는 상모돌리기가 아주 좋았다고 말한다. 병원 노동조합의 간부로 일한다는 스트라트만 안젤리카(Stratmann Angelika, 55)씨는 "너무너무 좋았다. 그중 판굿은 내 혼을 빼놓을 정도였다. 또 윤인숙 단장의 노래가 너무 맘에 들었는데 특히 <우리는 하나>가 인상깊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나는 베를린 한 언론인을 만났다. 국영 지디에프(ZDF) 방송이 격주로 방영하는 아침 교양 프로그램 '안녕하세요. 문숙입니다'라는 코너의 진행자로 독일 언론이 '종합 예술인' 혹은 '문화의 전령사'라고 부른다는 강문숙씨와 함께 한 이는 바로 베를린에서 가장 크다는 비지(BZ) 신문사의 다니엘라 포포비치(Daniela Popovic') 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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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손뼉을 치는 교포 2세 어린이와 태극기를 온몸에 감은 교포 ⓒ 김영조

그는 처음 한국 전통예술을 접했는데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2006 독일 월드컵 쥐(G)조의 취재담당이라고 하는 그에게 한국팀에 대한 것을 질문해보았다. 그는 박지성, 안정환, 이운재, 이동국 등을 안다며 거침없이 말한다.

"지난번 대회에 한국이 4강에 든 것은 상상하지 못한 대단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놀라운 일이 생길 것이다. 그 까닭은 다른 팀들이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잦은데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전력의 상승을 가져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 선수들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고 있다. 당연히 나도 한국팀을 응원할 것이다."

다음날 공연단은 비가 오는데도 윤이상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묘비와 함께 작은 꽃밭이 펼쳐진 묘소는 아담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비가 와서 오래 있을 수 없었지만 공연단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윤이상 선생의 넋을 기리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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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뒤 대담을 나누는 청중들(위 오른쪽 스트라트만 안젤리카, 아래 오른쪽 다니엘라 포포비치와 강문숙 ⓒ 김영조

베를린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낸 공연단은 이후 함부르크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곤 6월 4일 함부르크한인교회당에서 늦은 5시 30분부터 또 다른 공연을 펼쳤다. 이 공연은 베를린에서 공연된 프로그램과 약간 다른 것이었다. 가야금 독주 대신 황경호의 대금독주 <청성곡>,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아리아 대신 윤이상 작곡 나그네(박목월 시), 김동진 작곡 초혼(김소월 시) 등의 가곡으로 바뀐 것이다.

급히 마련된 작은 임시무대였지만 자리를 한 청중들의 반응은 베를린보다 훨씬 뜨거웠다.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손뼉과 휘파람으로 공연에 화답했다. 그리고 윤단장이 <신아리랑>을 부를 때는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르는 아름다운 광경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역시 <아리랑>은 우리 모든 겨레의 노래임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공연자들과 청중들은 공연 끝 무렵 모두가 한 덩어리로 강강술래를 하는 감격스런 장면도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인태선 담임목사가 공연단 모두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 선물했으며, 청중들은 환한 얼굴로 고맙다는 말을 연이어 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함부르크에서는 단원들이 교민(함부르크한인교회 신도)들의 집에서 민박하며, 독일 가정의 맛을 보기도 했으며, 따뜻한 교민들의 마음으로 잊지 못할 시간을 가졌다고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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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한인교회당 공연 모습 ⓒ 김영조

공연단장 윤인숙 교수는 성공리에 마친 공연 뒤 귀국길에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털어놓았다.

"오기 전까지 나는 여러 가지 걱정을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독일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독일 교민들뿐만 아니라 독일인들까지 열광할 줄은 몰랐다. 진행상 미숙한 점이 조금 드러나기도 했지만 열정적인 공연에 청중들은 그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나는 공연 뒤 많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이는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열정적인 무대를 꾸며준 단원들과 기획을 맡아준 베를린의 최홍자 선생, 그리고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준 함부르크한인교회 목사님과 신도들의 덕분일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더 좋은 또 다른 공연을 준비할 것이다. 이번 공연으로 월드컵 태극전사들에겐 응원이, 우리 교포들에게는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 "

이번 공연은 한국전통무형문화재 진흥재단과 (사)전통예술단 영산이 공동 주최했으며, 베를린 케이엠엠(KMM)이 주관했다. 또 문화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방송(KBS), 와이티엔(YTN), 국악방송국, 신나라, 티원시스템 등의 후원을 받았으며 삼성전자가 협찬했다.

공연단은 6박 7일의 빠듯하고 힘든 일정을 마쳤다. 공연단이나 청중 모두가 흡족한 마음을 나눠 가진 이번 일정으로 윤 단장의 말처럼 월드컵 태극전사들에겐 응원이, 우리 교포들에게는 위로가 되었지 않았을까? 이로써 월드컵에서 우리 태극전사들은 16강을 뛰어넘어 도약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독일 공연 취재기를 연이어 4편 정도 올릴 계획입니다.
   이어질 기사들은 베를린과 함부르크 여행기, 함부르크한인교회와 민박 이야기, 
   간호사와 광부의 독일 이민자 이야기 등입니다.

※ 이 기사는 시골아이고향, 대자보, 참말로에도 송고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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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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