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인' 논란, 접점 없이 벌써 한 달

중증장애인, 대구시청 앞 노숙농성 34일째... "면담만이라도 성실히 해달라"

등록 2006.06.20 15:46수정 2006.06.2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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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구중증장애인생존권확보연대는 20일 오전 11시 대구시청 앞에서 기회견을 열어 활동보조인 제도의 도입을 촉구했다.

대구중증장애인생존권확보연대는 20일 오전 11시 대구시청 앞에서 기회견을 열어 활동보조인 제도의 도입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중증장애인의 일상 생활을 지원하는 활동보조인 제도의 조례 제정을 두고 대구지역 장애인·시민단체와 대구시가 한 달여 넘게 접점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대구중증장애인생존권연대·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민주노동당 대구시당 등 지역 24개 시민사회단체는 20일 오전 11시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활동보조인 제도의 조례안 제정에 대한 대구시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활동보조인은 식사와 용변에서부터 이동마저 제한 당하는 등 일상 생활에서 활동을 독립적으로 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을 보조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동안 활동보조인 제도가 입법화 등 법·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해 중증장애인들이 반발해왔다.

이날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그동안 중증장애인들은 가족과 봉사자에게 미안해하면서 인간으로서 권리를 억압받아왔다"면서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서 살아가길 바라는 이들의 활동보조인 요구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중증장애인들의 주장을 지지했다.

이어 단체들은 "하지만 장애인들의 정당한 요구를 대구시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예산 운운하면서 외면하고 있다"면서 "이들의 투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대구시는 면담조차 성실히 임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경찰을 동원해 농성장을 침탈하고 중증장애인의 접근을 막는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또 "지금 당장 장애인의 접근을 막는 바리케이드를 철거하고 책임자는 농성단에게 사죄하라"면서 "활동보조인 제도화라는 너무도 정당한 요구에 대구시는 성실히 답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활동보조인 조례제정을 촉구하는 대구지역 중증장애인들의 시청 앞 노숙농성은 지난달 18일부터 시작됐다. 당시 중증장애인들의 요구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장애인의 권리로 인정할 것 ▲실태조사 ▲활동보조인서비스 제공에 따른 기준 마련 ▲활동보조인 즉각 파견 등 네가지.


중증장애인들은 관계 기관들이 단순히 활동보조인 제도를 동정과 시혜적인 차원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지난 5월 대구시장 선거운동 과정에서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김범일 당선자와의 면담과정에서도 표출돼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결국 중증장애인들은 스스로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위한 국민의 기본권적인 시각으로 제도화에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순한 제도화 접근으로는 예산 부족의 난관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


대구시, 바리케이드 설치하고 중증장애인 접근 통제

다행히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활동보조인의 제도화와 관련한 법 제·개정이 논의될 예정이다. 하지만 중증장애인들은 국회의 법 재·개정 문제로만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구중증장애인생존권확보연대 노금호 집행위원장은 "대구시가 법 제·개정이 되면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관련 법률안에서도 활동보조인 제도의 강제성은 없다"면서 "지자체가 국회의 법 제·개정 논의를 떠나 책임있는 자세로 나서야 활동보조인 제도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장기간 농성에도 불구하고 대구시의 무책임한 태도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노금호 집행위원장은 "한 달 넘는 농성에도 불구하고 대구시는 단 두차례의 공식적인 면담만 가졌다"면서 "일선 공무원을 내세워서 반발을 무마하기 보다는 국장급 이상의 책임자가 협의기구를 상설화하면서 적극적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활동보조인의 제도적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단체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대구시간의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자회견에 이어 대구중증장애인연대는 오는 24일 오후 2시 시청 앞에서 전국 총력 결의대회를 여는 투쟁 수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한편 지난 5월 서울시는 43일간의 노숙투쟁을 벌인 중증장애인들과 활동보조인 제도화에 대해 합의했다.

당시 서울시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중증장애인의 권리로 인정하고 2007년 내로 시 조례 제정을 위해 장애인단체·센터 등과 협의기루를 마련해 공동 논의한다"면서 "시급히 지원히 필요한 사황에 대해서 법 재·개정 이전이라도 실질적인 활동보조가 될 수 있도록 얘산을 추가로 적극 지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예산 때문이라구요? 의지가 문제입니다"
[일문일답] 노숙농성 34일째 맞는 노금호 집행위원장

20일로 노숙농성 34일째를 맞고 있는 대구중증장애인생존권확보연대 노금호(25) 집행위원장.

자신도 중증장애인(근육장애1급)으로 불볕 더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 위원장은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상황"이라면서도 "활동보조인 제도화는 예산문제가 아닌 의지 문제"라고 단호히 말했다.

- 중증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운 점은?
"나의 경우만 보더라도 혼자서 옷을 입을 수도 없다. 집안에서든 밖에서든 화장실을 갈 수도 없는 실정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있어야 그나마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 활동보조인 제도화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도화 미비로 인해 항상 가족들에게 기대야 하는 것이 큰 부담이다. 무엇보다 장애인의 가족 부담률이 95%에 이르고 있다. 결국 가족간의 불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얼마전 인천에서 40대 장애인은 부모의 노환으로 수용시설로 옮겨야 한다는 점 때문에 비관해 자살했다.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 대구시에서는 조례 제정이 예산문제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의지의 문제이다. 지금 당장 죽어가는 장애인들이 있는데도 지방자치단체는 예산문제를 거론하면서 항상 부정적인 입장만 보이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로 보지 않는 것이 더 큰 원인이다."

-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필요로하는 대구지역 장애인들은 얼마로 추산하나.
"구체적인 실태조사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비율이 통상적으로 35%라는 점에서 대구지역 등록장애인 8만여명 중 적어도 2만여명이 이 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본다."

- 한 달 넘는 노숙농성으로 힘든 점은?
"장애인이라는 특성상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상황이다. 무엇보다 대화의 상대로 보고 있지 않는 점이 답답하다. 대구시에서 공식적인 면담을 한 것은 단 두 차례이다. 그것도 부정적인 입장만 비쳤다. 실무자만 자꾸 내세우려고 하지 말고 국장급 이상 책임있는 관계자들과 공식적인 협의를 지속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 이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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