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분화구 1400m를 걸어보니

[제주의 오름기행 ⑬〕<이재수의 난> 촬영지, 아부오름에 가다

등록 2006.06.21 10:51수정 2006.06.2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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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재수의 난>을 촬영한 아부오름.
영화 <이재수의 난>을 촬영한 아부오름.김강임
'오름의 왕국' 제주도의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 마을에 가면 꼭 들러야 할 오름이 있다. 제주민란을 다룬 영화 <이재수의 난> 촬영지인 아부오름이다. 사람들은 아부오름을 '아버지처럼 존경하는 사람 같은 오름'이라 불렀다.

아부오름은 여느 오름처럼 높은 것도 아니고, 오름 자체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길에서 보면 그저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볼품없는 오름이다.

아부오름의 분화구 심장부.
아부오름의 분화구 심장부.김강임
지난 17일 아부오름으로 이어진 목장길은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는 마치 봄비처럼 신록을 적셨다. 목장 주변에서는 봉긋봉긋 솟아있는 기생화산이 기지개를 켰다.

들꽃잔치가 열린 아름다운 능선.
들꽃잔치가 열린 아름다운 능선.김강임
길에서 보는 아부오름은 고향마을의 뒷동산 같았다. 아주 작으면서도 평평하게 다져진 마을 뒷동산처럼, 10분이면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상에 발을 디디는 순간, 신록으로 뒤덮인 분화구는 나그네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

김강임
"와~! 이렇게 예쁜 분화구가 이곳에 있었다니!" 타원형의 굼부리(분화구를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는 백록담의 분화구를 연상케 한다.

표고(해발고도) 301.3m, 비고(오름 밑에서 정상까지의 실제 높이) 51m, 바깥둘레 1400m. 자연현상으로 이뤄진 분화구는 마치 인공적으로 만든 분화구처럼 거대하다. 정상에 서면 올림픽경기장 같은 느낌과 함께 또 하나의 오름이 숨어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분화구 둘레 능선.
분화구 둘레 능선.김강임
오름 전면을 감싸고 있는 푸른 잔디에 서니 온몸을 초록으로 감고 있는 기분이 든다. 분화구 안에는 각양각색의 들꽃이 계절에 흔들거리니 어느 재벌의 정원이 이보다 아름다울까.

분화구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들.
분화구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들.김강임
선이 고운 분화구의 능선을 타고 1400m를 걸었다. 아름다운 능선의 선율에 취하고 신록의 향기에 취하며 야생화의 흔들거림에 취한다. 분화구를 덮고 있는 야생화를 피해 발걸음을 옮기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다. 행여 가녀린 야생화를 짓밟기라도 할까봐 차마 걷지 못하는 조바심. 자연은 늘 우리를 다시 깨어나게 한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말도 분화구의 초대 손님이다. 초원의 분화구 속에서 말이 풀을 뜯는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자연 앞에만 서면 늘 겸손해지는 마음. 자연의 풍요가 인간을 살찌게 만들기도 한다.

김강임
분화구 속에 인공적으로 심어놓은 삼나무를 따라 길이 나 있었다. 그 심장부는 마치 태풍의 눈 같기도 하고, 사람의 심장 같기도 하다. 분화구 중심은 태풍의 눈처럼 조용하면서 사람의 심장처럼 고동치게 한다. 오름의 분화구 속을 걸어보았더니 어머니의 가슴처럼 온유한 느낌이 든다.

능선에서 바라본 능선.
능선에서 바라본 능선.김강임
분화구 능선을 타고 걷는데 30분 정도 소요됐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주변에 드러누운 크고 작은 기생화산들이 봉우리를 드러낸다. 능선에서 보는 능선의 아름다움. 이 세상은 함께 해서 더욱 아름다운 것들이 참으로 많다. 그리고 자연이 건강해질 때 비로소 내가 건강해진다.

분화구가 아름다운 아부화산


아부오름은 사면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크고 넓은 원형의 분화구(바닥 둘레 약 500m)가 있다. 이 화구는 깊이가 78m로 오름 자체 높이(비고, 51m)보다 27m나 더 깊이 패여 있다. 화구 안쪽 사면이 바깥 사면에 비해 훨씬 가파르고 긴 양상이다. 화구 안쪽 경사면의 중간 부분은 부분적으로 자연 침식되어 있어 스코리아(scoria)층의 노두 단면을 관찰할 수 있다.

아부오름의 전 사면은 풀밭과 초지로 이루어져 있다. 화구 안에는 줄띠를 두른 것 같은 모양으로 조림된 삼나무로 구획되어 있다. 분화구 안에도 둥그런 모양으로 삼나무가 구획된 가운데 상수리나무, 보리수나무, 청미레 덩굴, 찔레덤불이 우거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동부 지역과 황해도 이북에서만 자라는 피뿌리풀도 여기저기서 보인다.

산 모양이 믿음직한 것이 마치 '가정에서 어른이 좌정해 있는 모습 같다' 하여 한자로는 아부악(亞父岳, 阿父岳)으로 표기하고 있고 송당 마을과 당오름의 앞(남쪽)에 있는 오름이라 하여 전악(前岳)이라고도 표기한다. 亞父란 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 阿父는 아버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 구좌읍 송당∼대천 간 도로(1112 도로)로 건영목장까지 간다. 아부오름은 목장 입구에서 남동쪽으로 약 800m 지점에 있는 건영목장 안에 있다. 오름을 오르는 데 10분 정도 소요되지만, 분화구 능선을 타고 걸으면 30분 정도 소요된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 구좌읍 송당∼대천 간 도로(1112 도로)로 건영목장까지 간다. 아부오름은 목장 입구에서 남동쪽으로 약 800m 지점에 있는 건영목장 안에 있다. 오름을 오르는 데 10분 정도 소요되지만, 분화구 능선을 타고 걸으면 30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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