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비즈니스마다 관료가 얽혀있다

[서평] 댄 브리어디의 〈아이언 트라이앵글>

등록 2006.06.21 14:01수정 2006.06.2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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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트라이앵글> 겉그림.
<아이언 트라이앵글> 겉그림.황금부엉이
미국의 '칼라일 그룹(Carlyle Group)'은 출범한지 15년도 채 안 됐다. 그런데도 현재 미국 내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위력적이고 위협적인 사모투자회사가 됐다. 그야말로 세계의 부와 권력과 정치의 한 가운데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그토록 짧은 기간 안에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 사모투자회사이니만큼 무엇보다도 돈을 끌어들이는 능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기업사냥의 우수성에 있을 것이다. 큰 손 투자자를 불러 모아, 부실기업을 큰 차액으로 되팔아 넘김으로서 많은 돈을 긁어모으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손쉽게 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기업에 대한 소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거물급 정보통이 있어야 한다. 또한 개미 투자자들의 심리를 부추기는 데에는 필요한 거물급 손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웬만한 기업이나 회사는 은행과 손을 맞잡고 있고, 정부 고위 관료들도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그들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바로 칼라일 그룹이 단 기간 내에 세계적인 투자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비결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칼라일 그룹의 스토리는 곧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에 관한 스토리가 되었다. 이 삼각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대와 최고권력, 그리고 거대한 비즈니스가 교차하는 곳이다. CIA의 공작, 무기밀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정실주의(情實主義)의 흔적들이 이 회사의 역사에 점철돼 있다. 특히 방위산업체 인수를 투자전략의 기반으로 한 덕분에 칼라일은 현재 미국의 기록적인 방위비 급증 추세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고 있다." (18쪽)

이는 칼라일 그룹의 빛과 그림자를 밝혀내기 위해 댄 브리어디가 쓴 〈아이언 트라이앵글〉(황금부엉이·2006)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그만큼 칼라일은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방위산업 투자에 전념하고 있고, 그것의 이권을 쥐고 있는 전 현직 고위 관료들과 한 몸통으로 일하고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전 세계 전방위에 걸쳐 활발한 외교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다.

실로 그렇다. 칼라일이 끌어들인 저명인사만 봐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바로 닉슨 전 대통령의 인사담당관이었던 프레데릭 말렉을 비롯하여, 젊은 시절의 조지 W 부시도 참여했으며, 그의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도, 전 국방장관 프랭크 칼루치도, 전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도, 전 예산관리국장 리차드 다르맨도,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도, 전 영국 수상 존 매이저도 그들과 함께 일했다.


더 놀라운 것은 칼라일이 미국과 유럽의 정관계 인사들에게만 손을 뻗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박태준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필리핀의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에게도, 태국의 전 총리 아난드 파냐라춘에게도, 심지어는 9․11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의 집안과도 거래를 했다.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도 칼라일이 더 많은 공을 들인 사람은 미국의 현직 대통령인 조시 부시이다.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에 있을 당시 칼라일은 아들 부시를 '케이터에어'의 이사로 앉혀 놓았다. 더욱이 2000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의 재 검표 사태로 어지럽던 그 모든 분위기를 칼라일의 '제임스 베이커'가 잠식시켜 주지 않았던가.


그런 은덕을 모를 리 없는 부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든 칼라일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부시 행정부는 칼라일과 한 몸통이 되어 일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고, 9․11 테러가 일어나도록 방치했다는 비판도 피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칼라일의 역사 안에서 가장 놀랍고 무서운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있다. 빈 라덴 가문은 칼라일을 통해 자신의 혈육을 겨냥한 전쟁으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 부시와 제임스 베이커 3세, 프랭크 칼루치가 지난 몇 년 사이에 빈 라덴 가문을 찾아갔었다는 기사는 미국인들을 또다시 경악시켰다. 사실 빈 라덴 패밀리가 투자한 곳은 '칼라일 파트너스Ⅱ'였다. 유나이트디디펜스를 포함해 다수의 방산업체 주식을 보유한 바로 그 펀드다."(252쪽)

그렇다면 눈을 돌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떠한가? 칼라일이 우리나라의 기업사냥에 뛰어든 적은 없었는가? 2000년 9월 칼라일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미은행'을 인수하려 했다.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그들은 'JP모건'을 앞세워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냈고, 2004년 5월, 칼라일은 보유지분을 모두 '씨티그룹'에 넘기고 7천억 원 이상을 챙겨 빠져나갔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차익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지분을 팔아넘길 수 있도록 자문역할을 해 준 곳이 '김&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세종'이었다는 것이다. 그 두 곳 역시 칼라일의 전철을 밟듯 퇴임한 최고 관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근영 당시 금감위원장이 퇴직 후 세종의 고문으로 옮겨갔고,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 겸 부총리와 최경원 전 법무부 장관,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윤동민 전 법무부 보호국장 등 쟁쟁한 검찰 출신 인사들이 '김&장'으로 옮겨 갔다.

그런데 작금에 이르러 이헌재 사단이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과 관련하여 퇴직한 거물급 관료들이 참여했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그것은 거물들의 이름을 앞세워 거액을 끌어 모으는 '안면자본주의' 방식이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횡행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느 기업에서건 또 어떤 법률회사건 퇴직한 관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자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 관료로서 일하는 동안에 얻은 정보와 영향력을 퇴임 이후에도 활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거대한 비즈니스마다 전현직 관료들이 얽혀있다면 기업구조와 기업경쟁이 어찌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비단 칼라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불어 닥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기에 더욱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아이언 트라이앵글 - 칼라일 그룹의 빛과 그림자

댄 브리어디 지음, 이종천 옮김,
황금부엉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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