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의 힘과 생명

[서평]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읽고

등록 2006.06.24 15:50수정 2006.06.2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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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담출판사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지난 해 5월 <한겨레>에 '먼 하늘 가까운 바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됐을 때부터 눈여겨 보았던 소설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소설이 실리는 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 두 사람이 릴레이로 들려주는 사랑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름다운 문장이 고스란히 마음 속을 파고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 달이 지나자 거르지 않고 신문을 챙겨 보기가 힘이 들었다. 아침에 잘 챙겨두지 않으면 신문을 잃어버리기 일쑤였고, 하나를 놓치면 다음 이야기를 봤을 때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기를 한두 번 거듭하다 보니 단행본으로 나오면 그때 읽자고 관심을 아예 꺼버리게 됐다.


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봄날,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둘은 처음 만났다. 당시 준고는 칸나의 일방적인 이별 통고에 가슴 아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홍이는 낯선 이국에서 외롭게 보내고 있던 때였다. 준고는 홍이의 다정함과 깊은 사랑이 있었기에 칸나를 잃고서 빨리 몸을 추스릴 수가 있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홍이와 달리 준고는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씩 해야 할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다. 홍이는 언제나 함께 있을 시간이 부족한 게 불만이었다. 사소한 다툼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고 홍이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흘렀다. 홍이는 아버지의 출판사에서 실장이라는 직함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준고는 자신의 바람대로 소설가가 되었다. 7년이라는 세월은 모든 것에 서툴렀던 그들을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만들었다. 비록 사랑을 잃었지만 에너지는 다른 곳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의 이야기 소재로 소설을 완성한 준고는 마침내 한국어판으로 낸 기념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 출판사는 홍이 아버지의 출판사였고, 통역자가 당일 쓰러지는 바람에 일본어에 능통한 홍이가 대신 통역을 맡게 된 것이었다. 준고는 사사에라는 필명을 쓰고 있어서 둘은 공항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다시 만난 것을 두고 우리는 '운명'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조금은 갈색 빛이 도는 윤기 있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니 지적인 이마가 드러났다. 넓은 이마 밑의 정열적인 눈동자는 온 세상의 빛을 빨아들였다가는 다시 쏟아 내고 있었다. 지금 나는 같은 눈동자를 훔쳐보며 한 번 더 저 눈동자에 그날과 같은 눈부신 빛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 책 속에서


이 책을 보기 전에 영화 <불멸의 연인>을 보게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8번 <비창>은 영화에서처럼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으로 울려 퍼졌다. <비창>은 피아니스트인 준고의 어머니가 음감 교육을 시키기 위해 그가 어릴 적부터 들려주던 곡이었다. 호텔 카페에서 취재를 받고 있는 준고 앞에 홍이가 앉아 있다. 그 음악은 형체도 없이 서로를 '윤오'와 '베니'라고 불렀던 7년 전으로 두 사람을 데려가고 있었다.

지금 홍이 옆에는 민준이 있고, 준고를 떠났던 칸나는 다시 준고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한 사랑을 비워내기에는 민준과 칸나의 사랑은 턱없이 부족한가 보다. 그것은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둘은 각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내버려두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냉정과 열정사이-블루>편에서 먼저 만났던 츠지 히토나리는 같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사랑이야기는 얼마간 닮아 있고 뻔한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사랑'에 대해 총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같지만 그 빛깔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색감을 유지하기에 끊임없이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들이 탄생하는 것이리라.

다양한 장르의 소설 가운데 우리가 연애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한 방법이 아닐까. 실제로 소설이 그런 역할까지 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적어도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 동화되어 함께 사랑하고 아파한다. 그러면서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는 게 아닐까.

사랑 후에 오는 것들 -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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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출판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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