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32회

공격

등록 2006.06.27 16:57수정 2006.06.2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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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리림은 광자총을 든 채 무작정 달려갔다. 아직도 가이다의 중력은 발을 무겁게 하고 있었고 하쉬보다 상대적으로 여러 가지 물질이 많이 섞인 공기는 그의 호흡기에 무리를 주고 있었지만 짐리림은 당장 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누의 행동도 그렇고 뭔가 잘못 되었어.’


물론 하쉬를 떠나올 때부터 하쉬행성인들은 하쉬와 비슷한 환경의 생물과의 갈등을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특히 그 행성의 생명체들이 문명을 가지고 있을 때와 거기에 덧붙여 외계생명체에 대해 적개심을 가질 때에는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탐사선의 대원들은 누누이 교육받고는 했다.

짐리림은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 가이다 발견 이전에도 머나먼 행성계에서 처음으로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한번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곳은 대부분 산소호흡을 하는 하쉬 행성의 생명체들과는 전혀 다른 생명들이었다. 황산염과 질산염으로 호흡을 하는 그 미미한 생명체들의 행성은 하쉬의 생명체들이 터를 잡기에는 너무나 척박했고 메탄의 폭풍과 지각을 뒤엎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자연환경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에 비하면 이 가이다에서 벌이지고 있는 생물들의 위협 따위는 극복이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잠시 쉬기 위해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웅크린 짐리림은 공격을 받던 밤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일레는 불시에 날아온 묵직한 물체를 맞고 즉사했다. 에질은 달아나다가 가이다의 이상한 생명체가 휘두른 몽둥이질에 죽고 말았다. 그런 참상을 본 짐리림은 달아나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가이다의 짐승이 그의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짐리림은 무엇이라도 들고 공격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옆에 있는 알 수 없는 물건을 움켜잡고 뽑아들었다. 그것은 어처구니없게도 가이다의 힘없는 하얀 식물이었다. 가이다의 짐승은 식물을 건네 든 짐리림을 살려주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 짐승들에게는 아마도 ‘해치지 말라’는 의미였을지 몰랐고 짐리림은 행운을 움켜잡은 셈이었다.

가이다의 짐승들은 짐리림이 그 행동 양식을 보았을 때 약간의 의사소통은 가능한 것으로 보였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짐리림이 듣기에 그들이 나눈 대화라는 건 도저히 언어라고 볼 수 없는 웅웅거림과 낑낑거림이 전부였다. 게다가 가진 기술이라고는 식물을 꺾어 만든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과 돌을 던지고 불을 피우는 것이 전부였다. 단숨에 일레와 에질이 죽임을 당할 때만 해도 짐리림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신만이 살아남은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그 가이다의 하얀 식물이 짐리림에게는 행운이었다. 어쩌면 그 짐승들은 그 식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짐리림은 탐사선을 떠날 때 챙겨왔지만 아직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기록기를 허리춤에서 뽑아들고 중얼거렸다.

-나 짐리림은 ‘가이다’라고 명명된 산소호흡 생명체의 천국에서 기록을 남긴다. 탐사선에서 저지른 사고로 급히 에질과 일레를 데리고 가이다의 거친 생명계속으로 뛰어든 나는 선장 아누의 이상한 대응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에질과 일레가 가이다의 생명체에게 기습을 당해 죽임을 당한 이후로 아누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난 그 생명체를 ‘사이도’라고 명명하겠다. 사이도는 이 가이다의 생태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포식자임에 틀림없다. 불을 사용하고 조악하지만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 하쉬의 우리 오길(하쉬인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들처럼 두발로 걷고 두 손이 자유롭다. 그들이 위협적이긴 하지만 아누가 그런 대응까지 해야 할 정도일까 의문이 든다. 더구나 그들은 날 살려주었고 그로인해 난 숨기고 있는 칼로 줄을 끊어 그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짐리림은 잠시 기록기에서 떨어져 숨을 몰아쉰 뒤 기록을 계속했다.

-광자총으로 나무위에 올라가 있는 그 놈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말하자면 난 가이다에서 처음으로 거래를 한 셈이다. 그놈들이 날 살려주었으니 나도 그들을 살려준 것이니까. 에질과 일레를 잃은 충격은 아직 가시지를 않는다. 그들이 죽자마자 그들의 육신은 썩어 문드러졌다. 하쉬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가이다의 토양과 대기에는 수많은 미생물들로 가득 차 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난 사이도를 피해 달아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계속될지 알 수 없다. 가이다에 있는 사이도가 얼마나 되는 지도 알 길이 없다. 아니, 사실 사이도 보다 더욱 위험한 생명체들이 내 목숨을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


짐리림이 말을 마쳤을 때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한바탕 거센 비를 쏟아내었다. 짐리림은 그 비를 맞으며 웅크린 채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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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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