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장 도서의 덫에 빠지지 말라

[편집자 리뷰] 어린이 도서관 김소희 관장의 <참좋은 엄마의 참좋은 책읽기>

등록 2006.06.28 14:37수정 2006.06.2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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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참좋은 엄마의 참좋은 책읽기> 겉표지.

<참좋은 엄마의 참좋은 책읽기> 겉표지. ⓒ 화니북스

어린이와 도서관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 김소희씨. 나는 김소희씨를 작년 여름 그가 관장으로 있는 어린이 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에서 처음 만났다. 이미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맺어 환경 보호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중이라 더는 글 쓸 여력이 없다는 그를 집요하게 설득해 '아이와 책과 엄마, 도서관'이라는 키워드로 좋은 책을 만들어 보자고 뜻을 모았다.

적당한 컨셉트를 잡기 위해 1주일에 한두 번 도서관으로 갔다. 보도블록을 깔아놓은 인도를 걷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곧바로 도서관 안이 되어 버리는 그 심플함이 무척 마음에 드는 도서관이었다. 교실 한 칸 보다 작은 도서관. 그 도서관을 드나들던 나는 어느 날 동화책을 한 권 빼내 읽어 보았다. 다른 일로 바쁜 김소희씨를 잠시 기다리기 위해 순전히 습관적으로 펴 든 책이었다.


그때 읽은 책이 백희나의 <구름빵>과 이태준의 <엄마마중>이었다. 난 지금도 이 두 책이 주었던 그 큰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과히 충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아이들 책이 이렇게 재미있구나! 그 뒤부터 나는 아이들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도 하고, 서점에 가도 어린이책 코너를 반드시 둘러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어린 시절 어떤 책을 읽었지?"

명작이 없는 어린이 도서관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에는 한때 일주일에 한 번씩 특강을 들으러 오는 여대생들이 있었다고 한다. 김소희씨는 그 여대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깜짝 놀랐다고 했다. 1960년대 흑백 시대에 태어난 자신과 1980년대 총천연색 시대에 태어난 대학생들이 어릴 때 읽은 책이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소공녀>, <신데렐라>, <빨강머리 앤>, <허클베리핀의 모험>,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 ….

그만큼 우리나라 엄마들은 세계 명작 위주로 아이들에게 책을 읽혔고, 그에 따라 출판 시장이 만들어지다 보니 세월이 흘러도 아이들이 읽은 책은 비슷했던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류의 책들을 읽고 자랐고, 이런 책들은 지금도 세계 명작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어 많은 아이들이 읽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에는 명작이라는 분류가 없다고 했다. 김소희씨는 세계 명작이라고 일컫는 책들을 몇 권 예로 들면서 그 책이 왜 명작이 아닌지 말했다.


예컨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미국 문학의 위대한 고전으로 우리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는 동화로, 어른이 되어서는 완역본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즐겨 읽고 있다. 더구나 요즘은 '논술대비 세계명작'이란 꼬리표를 달아 놓아 더 많은 아이들이 더 체계적으로 읽고 있다.

하지만 과연 명작일까? 이 책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경멸할 때 쓰는 단어인 '니그로'라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쓴 책이다. 나중에 이 단어가 문제가 되어 빼긴 했지만, 이러한 인종차별주의적인 시각뿐 아니라 폭력과 살인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도저히 아이들이 읽을 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세계명작'이라는 큰제목이 붙어 있어 오랫동안 아이들의 필독서였다.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백인 우월주의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책이다. 백인은 자연을 정복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문명만이 참이고 선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위치에 서 있다. 자연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원주민은 같은 인간으로서 똑같은 존재가 아니라 정복의 대상으로 죽여야 하는 존재로 묘사되거나 정복을 위한 협력자, 곧 노예로 묘사된다.

어른들이 읽었고, 요즘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와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 책들이 많다. 그렇다고 그 책들을 탓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책은 결국 그 책을 쓴 나라 사람들의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세계명작'이라는 말마디만큼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세계명작이라는 말마디 자체가 어떤 책을 판단하는데 있어 객관적인 시각을 흐려놓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소희씨는 세계 명작이라는 말 대신 '다른 나라 동화'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 동화'라고 이름 붙이면 책을 대하는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다른 나라 동화 가운데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나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처럼 흑인을 경멸하거나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자랑삼는 질 낮은 책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비판적인 시각으로 책을 볼 수 있고, 비교적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권장 도서의 덫에 빠지지 말라

김소희씨가 또 지적하는 것이 권장 도서의 덫이다. 어떤 책이 '무슨 무슨 권장 도서'에 뽑히면,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수 백 권에서 수 만 권까지 팔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보니 출판계에서는 이런 저런 권장도서목록에 자기 출판사의 책을 올리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많이 한다. 따라서 권장도서목록이 상업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 될 것이라는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상업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권장도서목록이 좌우되는 것도 문제지만 알맞은 집단에게 알맞은 책을 권장하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김소희씨가 지적하는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어느 독서 단체가 주도해 만들어 각 학교에 나누어 준 '교과서별 추천도서목록'에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옛 이야기' 단원에 추천되어 있고, 수지 모거스턴의 <엉뚱한 소피의 못 말리는 패션>이 '단정한 옷차림을 위한' 필독 도서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책임 있게 검토했다면 <마당을 나온 암탉>이 옛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엉뚱한 소피의 못 말리는 패션>이 옷을 단정하게 입도록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김소희씨는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검증되지 않는 이런 저런 단체에서 제대로 된 절차도 밟지 않고 함부로 남발하는 '권장독서목록'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현실에서 이것은 자칫 아이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엄마의 책읽기에서 아이의 독서 문제 고민해야

김소희씨는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엄마의 책읽기를 통해 풀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엄마 자신이 책을 읽으면 아무런 비판 없이 명작 동화나 위인전을 아이에게 권하지 않게 되고, 권장도서목록도 참고하는 수준에서 적절히 이용 할 수 있는 안목도 갖게 된다고 한다.

엄마 자신은 책을 읽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책읽기를 또 다른 모양의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부라면 당연히 엄마는 할 필요가 없고 아이만 해야 한다. 엄마는 자신 있게 아이에게 책읽기를 강요할 수 있고, 아무 생각 없이 명작 동화나 위인전을 권하고, 권장도서목록 순서대로 표시를 해 가며 읽도록 아이를 다그치게 된다. 독서와 관련해 모든 것이 비뚤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책읽기는 모양이 다른 공부가 아니다. 책읽기는 공부가 아니라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책읽기를 강요하기 전에 엄마 자신부터 책읽기를 즐겨야 한다. 엄마 자신도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할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많은 고민 끝에 만들어진 책이 <참좋은 엄마의 참좋은 책읽기>다. 김소희씨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은 엄마의 책읽기에서 아이의 책읽기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모든 비뚤어진 독서 환경을 바로 잡을 수 있는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지은이 김소희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 관장
사단법인 어린이와 도서관 상임이사 역임

* 안동권 기자는 화니북스에서 <참좋은 엄마의 참좋은 책읽기>를 기획한 편집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지은이 김소희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 관장
사단법인 어린이와 도서관 상임이사 역임

* 안동권 기자는 화니북스에서 <참좋은 엄마의 참좋은 책읽기>를 기획한 편집자입니다.

참 좋은 엄마의 참 좋은 책읽기

김소희 지음,
기탄출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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