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원래 사회주의적 기질이 있는 나라?

일제시대 <개벽>에 실린 식민지 조선인들의 중국 인식

등록 2006.06.28 13:48수정 2006.06.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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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의 종주국인 구 소련이 붕괴된 후에도 중국 등 몇몇 국가는 여전히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이미 1978년 개혁·개방 이래 자본주의적 시장질서를 상당 부분 수용했지만, 여전히 형식상으로는 사회주의체제를 놓지 않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점만 보아도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중국공산당의 향후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물론 중국공산당이 여전히 건재한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궁금증은 1920년대 식민지 지배하의 조선 지식인들도 동일하게 가졌던 모양이다. 일제시대의 유명한 월간 종합지인 <개벽>에서 바로 그러한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

일제 시대 지식인들도 중국 공산주의에 관심

참고로, 개벽사가 1920년부터 1926년까지 발행한 잡지 <개벽>은 식민지배라는 엄혹한 상황 하에서 제한적인 방법으로나마 일제 지배에 저항한 유명한 언론매체였다. 현재 한국 학계에서 <개벽>은 일제시대의 주요 잡지로 손꼽히고 있다.

1926년 1월 1일에 발행된 <개벽> 제65호에는 '중국 혁명 운동의 기반은 무엇?'이라는 기사가 있다. 그리고 이 기사의 첫 번째 소제목은 '중국 적화(赤化)의 바탕은 무엇'이다.


192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공산당이 서서히 떠오르던 시기였기 때문에 당시의 조선 지식인들은 중국 사회주의세력의 성장 비결이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내린 결론은,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중국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데에도 일정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중국을 대립적인 관점에서 인식하지만 당시의 조선인들은 중국을 동지라는 관점에서 인식하였기 때문에 1920년대 조선 지식인들의 중국 인식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중국을 동지라고 인식한 것은, 두 민족 모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는 동병상련에 기인한 것이었다.

개벽사가 논술 형식으로 실은 이 기사에서는 여러 가지 국내외적 측면에서 중국 공산당의 성장 배경을 분석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중 중국 문화 측면만 소개하기로 한다. 기사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현대 우리말로 수정했음을 밝혀 둔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태고 삼황(三皇) 그 시절에 원시 공산제를 행하였음은 물론 오제(五帝) 이후로 한참 동안 정치적으로 의식적으로 일반적으로 공산제도를 실행하여 왔나니 공자·맹자의 소위 왕도(王道)라는 것이 그것이며, 토지 정전법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개벽>의 필자는 중국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기원을 고대 삼황오제 때까지 소급하고 있다. 그리고 공자·맹자의 왕도사상과 주나라 때의 정전제(井田制)를 공산주의적 제도로 인식하였다.

여기서 정전제는 토지의 평등 소유를 내용으로 하는 주나라 때의 토지제도로서, 역대 중국 왕조에서 이상적인 토지제도로 인식되었다.

중국 공산주의의 기원은 삼황오제?

그리고 <개벽>의 필자는 근대 중국 역사 속에서도 공산주의의 흔적을 찾고 있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사(社)니 회(會)니 하는 이름의 비밀결사(백련회, 삼합회, 가로회)가 있는데, 이러한 결사에서는 모두 재산을 공유하였다. 국민당에서 한때 북방의 유명한 토비(土匪)인 종번수와 회견한 일이 있는데, 그때 종번수는 '우리는 벌써부터 공산주의를 실행하고 있으니, 제군에 비하면 선각자가 아니냐?'라는 호언을 하였다."

여기서는 고대 중국의 공산주의적 전통이 삼합회·가로회 등의 비밀결사에 의해 계승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비밀결사들이 재산 공유를 실천하였다는 점을 논거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녹림객뿐만 아니라 홍수전이가 태평천국을 건설하고 남경을 수도로 삼던 때에 남경에 공산주의를 실행하였던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며, 청나라 말기의 유명한 학자인 강유위(캉유웨이)가 <예기>의 예운편을 통해 대동설(大同說)을 주창하면서, 무(無)국가·무(無)가족·공산공처(共産共妻)를 주장한 것도 역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에 따르면, 홍수전이 건설한 혁명국가인 태평천국(1851~1864년)과 강유위의 대동사상에서도 공산주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개벽> 필자는 말하였다. 여기서 강유위가 공처(共妻) 즉 부인 공유까지 주장하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중국 근대에도 공산주의적 사회개혁 추구

위와 같은 점들을 열거하면서 <개벽>의 필자는 중국 공산화의 원인은 단순히 당시의 국내외 정세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수천년 전부터 중국인들의 내면에 숨어 있는 공산주의적 기질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학자의 학설이나 사상가의 직접 행동에나 적화(赤化)의 역사가 얼마든지 있는 바 중국 민족의 핏줄에는 적화의 소질이 얼마라도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인들에게는 적화의 소질이 핏속에 흐르고 있다고까지 평가하였다. 1920년대 초반 조선 지식인들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개벽>지가 중국 공산화의 원인을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내면세계에서 찾은 점을 볼 때, 당시의 조선 지식인들은 중국인들에게 본래부터 공산주의적 기질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WTO 체제 하에서 중국과 자본주의사회의 관계가 보다 밀접해지는 상황 속에서 중국인들의 이러한 평등 사상 혹은 사회주의적 기질이 과연 어느 정도로 생명력을 지닐지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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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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