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예쁜 마을, 부럽지 않으세요?

[사진] 도심 한복판의 마을, 삼덕동으로 마실 가세요

등록 2006.07.04 12:10수정 2006.07.0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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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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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마실 한번 도실래요? 마실 돌 마을은 대구에 있습니다. 무슨 도시에 마을이 다 있냐구요? 대구 삼덕동 여기저기 마실 한 바퀴 돌고나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거예요.

삼덕동엔 담장없는 곳이 많답니다. 동사무소와 병원, 교회와 보리밥집 그리고 일반 가정집 합쳐 모두 열한 곳이 담을 헐었습니다. 삼덕초등학교 담도 없어졌는데 담이 있던 자리엔 예쁜 무대가 만들어졌지요.

수채화에 암각화에 병뚜껑 예술까지... 담 구경 좀 해보세요

담은 무시무시한 전제를 바닥에 깔고 쌓입니다. '누군가 나를 해칠 수 있다'는 전제 말이에요.

담은 내 자신과 우리 가정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수단으로 이용됩니다. 담이 이웃과 소통의 단절을 상징하는 하나의 상징물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죠. 아파트처럼 철저히 차단된 주거환경 안에 살면서도 단지 밖으론 또 담을 쌓는 시대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삼덕동엔 담장을 허물진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따뜻하게 열어둔 집들이 많습니다. 담 벽을 아름답게 치장한 거죠. 깨진 유리병을 세워 날을 세우고, 무심하게 콘크리트로 발라버린 담벽은 보는 것만으로 황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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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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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삼덕동엔 한국 전통문양을 솜씨좋게 새겼거나 동굴에서 발견된 고대 암각화를 모사해 꾸민 벽들이 마실 도는 이의 눈을 잡아끄네요. 또 어떤 집은 버려진 병뚜껑을 모아 예쁘게 꾸몄고, 어떤 집은 병풍처럼 벽면을 나눠 수채화풍으로 채색했구요.

그렇게 담이 없거나 담벽을 예쁘게 꾸민 집들을 지날 때면 무덥기로 소문난 대구의 여름 한낮 햇살조차 부드럽게 내려옵니다. 한낮 더위에 짜증은커녕 마음은 알맞게 따스해져 어지간한 일엔 짜증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아요.


신천으로 가는 길에 버스 한 대가 세워져 있네요. 이 녀석의 이름이 뭔지 아세요? '코코'랍니다. 코코는 대구YMCA가 삼덕동에서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 이동도서관입니다. 코코 안에는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동화책들과 책을 편하게 읽을 쉼터가 마련돼 있습니다.

마실 길라잡이가 되어준 분이 "마을에 살면 어린이들이 자라는 것이 다 보인다"면서 "저 아이들 중에 훗날 커서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고 흐뭇한 미소를 짓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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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빈

굴다리에 왔으면 낙서 한번 해야죠

가까이 온 김에 신천으로 내려가 볼까요? 아참, 그 전에 굴다리를 통과해야죠. 굴다리라고 하면 쾌쾌하게 찌든 냄새에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가 연상되죠? 하지만 삼덕동 굴다리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굴다리 안은 아예 흰색으로 바탕칠이 돼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든, 낙서를 하든 그건 알아서 하세요. 그저 스스로 드러내고 싶은 만큼 드러내세요. 벌써 솜씨좋게 그림을 그린 이들도 있군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아직 공간은 충분하니까요.

낙서가 끝났나요? 그럼 신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 한번 하세요.

같은 신천을 끼고 삼덕동 건너편 마을에선 도로를 냈다죠. 자동차들이 무섭게 질주하는 도로 너머로 아파트들이 멀대처럼 서있는 게 안쓰럽네요. 도로 하나를 내고 안 내고의 차이가 이렇게 큽니다. 도로를 낸 마을에서 신천은 그림의 떡일 뿐이지만 도로를 안 낸 삼덕동 주민들에게 신천은 운동하고 나들이가는 생활의 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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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도 제법 흘렸으니 이제 국악원에 가서 편안하게 음악 들으며 좀 쉬게요. 거기 항아리 스피커에서 나오는 선율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국악원 마루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1938년에 지었다는 근대 건축물도 감상해보세요. 지금은 미술관으로 바뀐 곳이죠. 일제시대 만들어진 건물이니 철거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지만 있는 그대로 보존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야말로 치욕을 이기는 참된 방법 아닐까요?

아무튼 삼덕동 마실 도니까 어떠세요? 까닭모를 정겨움이 온 몸에 번질 거예요. 입가에 슬그머니 맺힌 미소 그대로, 시나브로 따스해진 가슴 그대로 인사하세요.

"할머니, 어디 가세요? 얼굴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산아, 초등학교 3학년 올라갔지? 씩씩하니까 좋네."

여기는 대구 삼덕동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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