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담장 부순 뒤 2년, 이렇게 달라졌어요

[희망버스-대구 ②] '한 마당 가족' 된 8·9번지 이웃들

등록 2006.07.04 11:18수정 2006.07.0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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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2004년 5월 담장을 허문 수성구 10XX 8~9번지. 이 다세대 주택에 사는 8가구의 가정은 담을 허문 대신 넓은 마당을 얻었다. 덤으로 그보다 더 이웃의 정을 얻었다고 한다.

지난 2004년 5월 담장을 허문 수성구 10XX 8~9번지. 이 다세대 주택에 사는 8가구의 가정은 담을 허문 대신 넓은 마당을 얻었다. 덤으로 그보다 더 이웃의 정을 얻었다고 한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대구시 수성구 지산1동 10XX-8번지와 9번지. 이 곳 다세대 주택에 모여사는 여덟 가구는 여름만 되면 즐거워진다.

지난 2004년 5월 8번지와 9번지는 동시에 담을 허물었다. 대구사랑시민회의가 추진 중이던 담장허물기 운동의 일환이었다. 그후 2년. 물질의 풍요보다는 이웃끼리 나누는 정이 더하다는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허물기 전] "담장이 있어도 도둑이 드는데..."

"담장을 허물면 뭐가 좋을까 내심 걱정만 앞섰죠. 하지만 이젠 제가 찬성론자가 돼 버렸어요."

지난 2004년 5월 대구의 담장허물기 운동에 동참해 자신의 담장을 허문 노순주(34·수성구 지산1동)씨는 기자의 방문에 놀란 기색도 없이 담장허물기 예찬론을 펴기 시작했다.

당시 담장허물기를 고집했던 이는 노씨의 남편 정길식(41)씨였다고 한다. 정씨는 텔레비젼을 통해 담장허물기 운동을 접하고서 정씨의 가족을 포함해 다섯 가구가 살고 있는 8번지의 담장을 허물기로 결정했다.


그 때 노씨는 이러한 정씨의 결정에 반신반의했다. 노씨는 "당시에는 왜 멀쩡한 담을 허무는지 걱정이 앞섰다"면서 "담장을 있어도 좀도둑이 여러차례 드나들었는데 담장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 우려가 더 컸다"고 회상했다.

대구사랑시민회의의 문을 두드렸던 정씨는 현장을 답사한 공무원의 충고에 따라 똑같은 모양으로 인접한 9번지 사람들에게도 담장을 허물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9번지 집주인의 반대는 컸다. 노씨는 "9번지에선 주인 어르신이 연세도 많다 보니 굳이 담을 허물 이유가 있느냐면서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적극적인 설득으로 결국 두 담장을 동시에 허물기로 결정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허물고 나서] 어른들은 함께 김장하고, 아이들은 흙에서 뒹굴고

결국 한 가구당 300만원의 시비를 지원받고 8번지와 9번지 주인집이 50만원씩 추렴해 총 700만원의 공사비를 마련했다. 공사는 이내 끝이 났지만 변화는 컸다.

우선 평소 빛이 들지 않아 어둡고 침침했던 마당이 밝아졌다. 가뜩이나 좁은 마당에 담까지 있었는데, 이제는 좀더 넓어졌다. 자신의 집을 찾아 다니기도 수월해졌다.

또 평소에도 비슷한 세대로 친하게 어울렸던 8·9번지 식구들은 마당 수돗가에 한 데 모여 김장을 담갔다. 직접 만든 평상에선 차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생겼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변화가 남다른 즐거움이었다. 노씨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꺼내려고 해도 꼭 부모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알아서 척척 해낸다"면서 "아이들에게 놀이 공간과 흙에서 자라는 식물을 보는 재미가 생긴 것이 더 큰 변화였다"고 말했다.

애초 걱정했던 이웃들의 반응도 2년여 새 사라졌다고 한다. 멀쩡한 대문을 부수고 담을 허무는 공사에 시선이 곱지 않았던 이웃들도 서서히 마을의 쉼터로 이용하고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것.

유일한 단점은? 동네 견공들의 '실례'

무엇보다 도둑 걱정에선 한결 나아졌다는 것이 노씨의 이야기다. 노씨는 "개방형으로 담장을 허물다 보니 도둑이 숨을 공간도 없어진 듯 하다"면서 "거기다 이웃 주민들이 감시자들이 되어주다 보니 이웃들과 친해지는 만큼 도둑 걱정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거기다 가로등 설치에다 경찰의 잦아진 방범도 도움이 됐다.

하지만 단점도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인 만큼 동네 견공들의 '실례'가 고충 중의 하나라는 설명이다. 그래도 담당을 허물기 전에 비한다면 참을 만한 고통인 셈이다.

올해 여름에도 마당에 펼쳐질 평상이 기다려진다는 8·9번지 이웃들. 마지막으로 노씨는 담장허물기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한마디를 보탰다.

"담장을 허물고 나니 이웃들간에 도와주고 받는 것이 더 늘어난 것 같아요. 담장 하나 있으나마나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웃들의 정은 비교할 수 없만큼 커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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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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