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동안 도시에서 사라진 17.9km
담장을 허물면 공간은 늘어난다

[희망버스-대구 ①] 도심 속 마을 공동체는 가능할까

등록 2006.07.03 21:12수정 2006.07.0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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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17.9km(킬로미터).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고속도로을 놓는다면 몇 곱절은 더 만들지 않을까. 하지만 도심 속 인간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만큼 도시의 담장은 높고 공고했다.

지난 96년 대구 도심에선 큰 변화의 조짐이 움텄다. 높기만 했던 관공서(서구청·평리동 소재)의 담벼락이 허물어졌고, 종합병원(경북대 병원·중구 동인동 소재)의 담장도 사라져 공원으로 바뀌었다. 10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담장허물기 운동의 첫 시발점인 셈이었다.

공공건물에서 시작된 변화는 주택으로 이어졌다. 98년 말 한 시민운동가는 자신의 집 담을 스스로 허물었다. 대구YMCA 김경민 중부지구 관장(대구사랑시민회의 실행위원)이 그 주인공. 그는 중구 삼덕동 자신의 집 담을 부수고 이웃들에게 공간을 내주었다. 김 관장의 집뜰은 마을의 휴식공간으로 변모했다.

a <font color=a77a2>담장을 허물기 전... 대구 동구청의 모습. 높은 담장이 관공서의 권위적인 이미지를 줄 뿐 아니라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담장을 허물기 전... 대구 동구청의 모습. 높은 담장이 관공서의 권위적인 이미지를 줄 뿐 아니라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 대구시 제공

a <font color=a77a2>담장을 허문 뒤... 담을 허물고 정원을 조성하자 동구청에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생겼다.

담장을 허문 뒤... 담을 허물고 정원을 조성하자 동구청에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생겼다. ⓒ 대구시 제공

서울도 부산도 인천도 대구를 배워갔다

그로부터 1년여 후 관공서·학교 등 대형 건물의 담장부터 소규모 개인주택에 이르기까지 대구의 담은 본격적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 운동의 정점에는 민·관협의체인 대구사랑시민회의(지역내 학계·종교계·시민단체·행정기관 등 136개 기관·단체 참여)가 자리잡고 있었다. 대구사랑시민회의는 99년 운동 중점 과제로 담장허물기 운동을 채택했다. 담장허물기 운동에 참여하는 시설 수는 매년 꾸준히 늘어났고, 99년을 전후해 65개소이던 것이 지난해 말에는 총 362개소로 확대됐다.

각급 관공서와 학교를 비롯해 삼덕동을 필두로 대구 시내 곳곳에 있는 소규모 가정집까지 총 17.9km의 담장이 대구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시민들에게는 9만 6000여평의 휴식공간이 주어졌다.


대구에서 시작된 담장허물기 운동은 전국적 붐을 탔다. 각 지역에서 지방의제21팀과 공무원 등 1300여명이 벤치마킹를 위해 대구를 찾았다. 서울과 부산·인천 등지에서도 관공서를 중심으로 한 담장허물기 운동이 줄을 이었다. 2004년 제1회 대한민국지역 혁신박람회에서는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민·관이 단합해 '토종 상품'인 담장허물기 운동을 빚어낸 것이다. 이러한 성공 배경 뒤에는 시민사회단체의 '전략적 접근'이 있었다.

김경민 대구YMCA 중부지구 관장(대구사랑시민회의 실행위원)은 "당시 문희갑 시장 체제에서 정책적인 차원에서 '숲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갖고 싶어했다"면서 "아래로부터 위로 담장허물기 운동을 대구시의 중요한 정책 의제로 삼게 했다"고 설명했다.

담과 함께 너와 나의 구분도 허물어진다

a <font color=a77a2>담장을 허물기 전... 담에 둘러싸여 답답한 외관의 주택.

담장을 허물기 전... 담에 둘러싸여 답답한 외관의 주택. ⓒ 대구시 제공

a <font color=a77a2>담장을 허문 뒤... 확 트인 주택. 미관이 깨끗할 뿐더러 사용도 편리해진다.

담장을 허문 뒤... 확 트인 주택. 미관이 깨끗할 뿐더러 사용도 편리해진다. ⓒ 대구시 제공

하지만 담장허물기 운동의 원동력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의 지지가 맞물려 성공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는 것.

김 관장은 "80년대 중반까지 도시공간의 주축이 되는 담은 안전과 방범이라는 상당히 방어적인 개념이었다"면서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민주주의 성숙과 경제적인 성장을 기반으로 열린 공간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 이러한 요구들이 제대로 맞물린 것이 담장허물기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담장허물기 운동이 최대 정점을 이뤘던 지난 2001년 10월, 600여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는 이러한 호응을 반영했다.

전체 설문조사 대상자 중 80% 이상은 운동에 적극적인 동참의사를 표명했고, 94.6%는 이 운동이 대구의 명예와 자긍심을 높였다고 답변했다. 또 대구의 도시환경이 좋아졌다는 평가도 89.3%에 이르른 것으로 나타났다.

담장허물기 운동은 일차적인 목적은 저비용을 통한 열린 녹지공간의 조성에 있다. 하지만 단순히 환경적 변화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도시공동체를 새롭게 형성해가는 중요한 동기를 준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정신적인 빈곤은 거대한 담이라는 콘크리트를 통해 공고해진다. 풍요는 사적 이익의 틀을 만들려고 하고 그것이 담으로 외현된다는 설명이다.

한 마디로 나의 것과 너의 것을 구분하려는 본성이 담으로 나타나는 것. 담을 허물면서 너와 나의 구분을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의 도시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 셈이다.

아직은 맛보기 수준... 갈 길은 멀고 허물 담도 많다

그렇다면 지난 10년 역사를 거친 대구의 담장허물기는 어느 수준일까. 축약하자면서 아직도 '맛보기' 수준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안타까운 지적이다.

우선 난관은 인식 부족과 예산 부족. 일반주택의 담장허물기 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시 자치행정과 담당직원은 "아직도 시민들은 선입견이 있어서 담이 허물어지면 안전과 방범이 어렵다고 우려한다"고 설명했다.

예산 부족은 더 큰 문제다. 담장허물기 운동에 동참하는 일반주택의 경우 한 가구당 300만원이 시비로 지원되고 있다. 하지만 매년 1억여원에 그치는 예산으로 매년 50~60여 가구에 이르는 담장허물기 신청을 따라잡기 역부족이다.

뿐만 아니라 민선 시장의 정책적 관심과 애정에 따라 정책 추진에 대한 집중력이 좌우된다는 점도 지적받는 대목 중의 하나다.

김 관장은 "도시공간의 괘적한 환경 조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대규모 관공서·학교 등지의 담장허물기가 계속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면서 "하지만 문 시장 체제 이후 등장한 조해녕 시장 체제에서 대규모 담장허물기 사업이 미진한 것은 곱씹어볼 만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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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허물기 운동, 대구시민에겐 큰 자긍심 됐다"
[인터뷰] 담장허물기 숨은 공로자에게 듣다

어느 운동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숨은 공로자가 있기 마련이다. 담장허물기 운동에도 숨은 공로자가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그 사람, 참 열심히 했지"라고 혀를 내두르는 사람. 바로 한수구(51·현 국가청렴위원회 교육홍보팀) 사무관이다. 그는 지난 96년부터 2002년까지 담장허물기 운동의 행정 담당자로 힘을 쏟았다.

- 운동 초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담장을 허물면 도둑이 많이 든다는 인식도 문제였다. 주인보다 이웃이 더 큰 문제였다. 한 백여번 찾아간 집도 있다. 또 IMF 직후였기 때문에 '멀쩡한 담을 허무는데 돈을 쓴다'는 인식이 있어서 예산확보도 어려움이 있었다."

- 아무래도 높은 담장을 허물면 보안 문제를 가장 신경쓰지 않겠나?
"간단하다. 담장이 있으면 도둑이 침입해도 가로막이 돼 오히려 숨을 곳이 된다. 하지만 담장이 없으면 외부에서 감시도 수월해진다. 불안을 불식시키려고 경찰 당국 등에 감시도 철저하게 해달라는 협조도 하면 참여를 유도했다."

- 민과 관이, 특히 시민단체와의 함께 추진하는데 시각차이는 없었나?
"애초부터 시민단체들과 같은 시각에서 출발했다. 논의도 충분히 했고 시민단체나 우리나 서로 적극적으로 협조하자는데 의견일치가 됐던 사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추진하는데도 별 문제가 없었다."

- 담장허물기 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IMF 이후 대구는 살기 힘들고 도시가 정체돼 있었다. 대구에서 있어서 호재가 없었다. 각종 대형사건도 빈번했다. 시민들이 굉장히 위축돼 있었다.

민선 들어와서도 중앙정부 평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담장허물기는 달랐다. 평소엔 대구시민들이 보수적이라고 하는데 이런 생각을 했는냐 담장허물기 운동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주목했다. 그것이 시민들에게 큰 자긍심으로 나타났다."

- 아직 갈 길이 멀다. 지속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보나?
"우선 공무원이 열심히 해야 한다. 민관 협력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는 행정적인 제반체제와 지원이 중요하다. 또 시민단체-관-조경업체 등 민관의 네트워크가 공고히 해야한다. 예산확보 통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정원 관리 해주고 애로사항을 하면서 보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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