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눈을 가진 '순천 촌놈'의 한국 사랑

[서평] 인요한의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등록 2006.07.06 17:18수정 2006.07.0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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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겉표지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겉표지생각의 나무
"나는 성장하면서 대전에서 외국인학교를 다녔고, 서울에서 연세대학교 의대를 졸업했고, 뉴욕의 병원에서 근무했고, 북한에는 17번 가보고,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내 고향 순천만큼 내 마음에 평화로움과 안온함을 주는 곳은 없다. 고향이란 그런 것이다."

이는 190cm가 넘는 키에, 파란 눈을 가진 금발의 사나이 '인요한'이 고백한 것이다. '존 린튼'이라는 분명한 미국식 이름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는다.


사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면 그에게서 4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의 친할머니의 아버지인 유진 벨 목사는 1895년에 한국 땅에 들어와서 선교 활동을 펼쳤고, 22살 때부터 의료와 선교활동을 펼친 윌리엄 린튼 선교사는 그의 할아버지이다. 그리고 전남 군산에서 태어나 전라도 쪽에 600여 개나 되는 교회를 세우며 어려운 사람들을 돌봤던 휴 린튼 선교사가 그의 아버지이다.

그처럼 그의 집안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이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이웃을 위해, 평생을 한국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바쳤던 사람들이요, 가계(家系)인 것이다. 당연히 선친들의 피를 이어 받은 존 린튼, 아니 인요한도 그런 삶으로 매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선친들의 이름을 연이어 빛내는 길이요, 그것만이 이 땅에 태어난 자신의 존재 목적을 바로 실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정체성과 그의 이력들을 밝혀주는 책이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생각의 나무·2006)에 나와 있다.

그만큼 이 책에는 조상 선친들이 한국인들을 사랑하고 섬겼던 일들, 순천 고향 땅 친구들과 쥐불놀이도 하고 서리도 했던 재미난 이야기들, 1980년 5월의 광주 항쟁 속에서 시민들과 외신기자들의 통역을 맡았던 일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관련하여 한국 최초로 앰뷸런스를 만들었던 일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전주 예수 병원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가 선교활동을 주로 순천에서 했던 까닭에 자연스레 그의 고향은 순천이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순천의 오줌보 친구들과 함께 쥐불놀이도 하고, 수박이며 참외 서리도 하며 컸다. 영어를 잘할 것 같지만 오히려 전라도 사투리에 더 능숙했던 그는 또래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의리 또한 많았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 '개구장이 짠'이로 유명했다.


그런 향수쯤이라면 누구나 다 갖고 있기 마련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그가 순천을 품게 된 사연은 없을까? 그의 온 마음과 온 심장 속에 순천을 가득 채울 수밖에 없는 계기가 있다면 뭘까?

그것은 한국형 앰뷸런스를 그의 어머니와 함께 순천에서 최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앰뷸런스는 자기 자신이나 어머니의 뜻과는 무관했다. 처음부터 그것을 만들 뜻은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느 날 아버지는 전남 지역을 순회하고 순천으로 오는 길목에서 그만 대형버스와 충돌하고 말았다. 당시 의료체계가 하나도 없던 순천 병원에서는 곧장 큰 병원이 있는 광주 병원으로 옮기길 원했다. 그래서 수송방법으로 택한 게 택시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 택시 안에서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버지의 그 일을 두고서 아들인 그는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낙후된 순천이지만 만약 응급구조 시스템만 갖췄더라도 그 같은 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여러 경로를 통해,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 낸 것이 한국형 앰뷸런스였다. 그것이 순천 땅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게 되었고, 곧장 전국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한국형 앰뷸런스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십자 마크를 그리고, 앵앵거리는 야광 경광등을 달고 칠을 하니 완벽한 앰뷸런스였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다 났고, 어머니가 기뻐하신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는 이 앰뷸런스를 마치 아버지로 여길 정도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를 부르시면서 그렇게 이 땅에 새로운 일을 계획하셨던 것이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이 씨앗이 되어, 이 땅에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셨다는 것이었다."(233쪽)

지금은 그가 서울 신촌의 세브란스 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진외증조부인 윤진 벨(배유지)의 이름을 딴 '유진 벨' 단체가 하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 단체는 북한에 여러 의료시설을 돕고 지원해주는 일을 한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그는 17번이나 북한을 다녀왔다. 그래서 20만 명의 결핵환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왜 그토록 그가 북한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는 것일까? 그것은 북한 땅에서 고향 땅 순천의 옛 정을 봤기 때문이다. 그만큼 북한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어린 시절의 아이들 간에 나눴던 풋풋한 사랑을 봤던 것이다. 더욱이 북한 의사들은 자신의 살을 떼어 환자들에게 이식해 줄 정도로 살신성인의 정신을 품고 있다고 하니, 그 감동스런 정에 얼마나 목말라 하겠는가.

그렇듯 오늘도 그는 차츰차츰 사라져가는 어린 시절의 끈끈한 정을 붙잡고 있다. 스스로 '순천 촌놈'이라 밝힌 인요한은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모든 한국 사람들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정다운 정을 나누고 있다.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인요한 지음,
생각의나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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