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 만난 열정, 에스닉, 멜랑콜리...

[서평] <나는 카메라만 잡으면 떠나고 싶다>

등록 2006.07.07 09:21수정 2006.07.0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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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그라픽스

본격적인 휴가철을 앞두고 여행기가 줄줄이 출판되고 있다. 바야흐로 여행기를 끼고 살게 되는 계절이 온 것. 해마다 초여름은 평소 그냥 지나치던 잡지 코너의 여행전문지를 뒤적이게 되는 시기이다.

몸이 여름이라는 것을 먼저 깨닫고 서점 여행코너를 전전하게 하는 것인지, 여행가고 싶은 마음이 몸을 그쪽으로 몰고 가는 것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여름이 가까워지는 시기부터 거의 반사적으로 여행관련 책들을 읽게 된다.


잘 쓴 여행기는 여행 계획 유무에 상관없이 사람을 설레게 한다. 여행을 떠나게 되면 해당 지역의 맛집 정보나 관광 포인트 등 작가가 추천한 정보를 놓치지 않으려고 일일이 메모를 해 가며 읽고, 또 가지 못할 형편이라면 대리만족을 위해서라도 한 권 챙기게 된다.

대리만족용 책은 가이드북 보다 비주얼에 더 민감해진다. 어디어디를 가봤더니 어떻더라는 기행문보다는 사진 한 장에 폭 빠져 잠시 눈요기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뷰파인더로 시선을 끌어당기는 책

a 모로코의 정신적 수도 페즈. 7900여개의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모로코의 정신적 수도 페즈. 7900여개의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 안그라픽스

개인적인 감상과 여행 경로, 간단한 정보 등을 빼먹지 않아 여행기로서의 외연을 충실히 갖추고 있지만, 여행사진가 윤창호의 <나는 카메라만 잡으면 떠나고 싶다>의 최대 장점은 역시 훌륭한 사진이다.

작가의 뷰파인더에 시선을 빼앗긴 독자라면 현지에 가서도 그가 제안한 프레임대로 풍경을 음미하게 되지 않을까. 한 컷 한 컷 엽서로 만들어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옛 친구들에게 간단한 안부라도 적어 보내고 싶을 정도이다.


이 책은 수선스럽게 장광설을 풀어놓는 여행기가 진부하고 시끄러워서 싫은 사람, 전화번호부처럼 필요한 내용만 엑셀 파일처럼 정리해 둔 포켓용 여행안내서가 여행의 맛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울 것 같다.

컬러 감각이 돋보이는 사진과 함께 많지 않은 분량의 글은 솔직하되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아서 지은이의 추천 정보를 신뢰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다. 한 잡지사의 전속기자가 아니라 여러 매체에 글을 써온 게릴라 작가답게 사진과 글이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다.

작가는 딱 10개의 단어를 골랐다. 그리고 그 10가지 테마를 화두로 여행을 추억한다.


열정-쿠바의 아바나, 휴식-호주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에스닉-모로코, 신비-크로아티아, 멜랑콜리-노르웨이와 스웨덴, 핀란드의 툰드라 숲, 판타스틱-히말라야와 인도, 낭만-칠레, 장엄-러시아, 동심-삿포로, 그리고 원시-피지가 바로 그것.

누군가 이 책에 나온 열 가지 풍경 가운데 세 곳을 무상으로 보내준다고 제안한다면, 고심 끝에 모로코의 페즈와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원시의 열기가 살아있는 피지를 선택할 것 같다.

a 예로부터 천혜의 무역항으로 번영을 누렸던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항구.

예로부터 천혜의 무역항으로 번영을 누렸던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항구. ⓒ 안그라픽스

나도 카메라 들쳐 메고 떠나고 싶어라

페즈는 중세 이전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미로처럼 얽힌 7900여개의 골목길과 그 골목길을 오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당나귀들은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벌떼처럼 교차로를 점거하는 서울 사람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여유를 선물할 것 같기 때문이다.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요새처럼 촘촘하게 지어진 중세 도시 두브로브니크의 주황빛 지붕들은 시간을 잊게 하고 현실감각을 멎게 할 것만 같다.

또 피지의 바다는 어떤가. 푸르다는 단어 한 마디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바다. 빡빡한 생활인들에게 일상의 짐을 툭 던져버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남태평양의 바다는 놓치기 아까운 일탈이다.

여행기를 읽고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기보다 카메라를 한 대 사고 싶어지기는 처음이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열 마디 말보다 힘이 더 센가 보다. 도쿄 공예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여행사진가의 열 가지 테마 여행기는 지구촌에서 놓치기 아까운 전망 좋은 곳으로 떠나도록 자꾸 충동질한다.

나는 카메라만 잡으면 떠나고 싶다

윤창호 지음,
안그라픽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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