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수 있을까?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40] 연꽃

등록 2006.07.17 18:32수정 2006.07.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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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연꽃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애련설(愛蓮說)-주돈이(周敦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시작할 수가 없을 것 같다.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수륙초목지화 가애자심번)
물과 육지의 초목의 꽃이 사랑스런 것이 심히 많다

晉陶淵明獨愛菊 自李唐來 世人甚愛牡丹(진도연명독애국 자이당래 세인심애목단)
진나라의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사랑하였고, 이당으로 부터 오면서 세상 사람들은 목단을 심히 사랑하였다.

余獨愛蓮之出淤泥而不染 濯淸漣而不妖(여독애연지출어니이불염 탁청련이불요)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진흙에)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지만 요염하지 않고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중통외직 불만불지 향원익청 정정정식 가원관이불가설완언)
속은 비었지만 밖은 곧으며 (줄기가)넝쿨지지 않고 가지 치지 않으며, 향은 멀수록 더욱 맑고 당당하고 고결하게 서 있으며, 멀리서 볼 수는 있어도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음을 좋아한다.

余謂 菊 花之隱逸者也 牡丹 花之富貴者也 蓮 花之君子者也(여위 국 화지은일자야 목단 화지부귀자야 련 화지군자자야)
나는 이르건데 국화는 꽃의 은자이고, 목단은 꽃의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의 군자라 하겠다.

噫! 菊之愛 陶後鮮有聞 蓮之愛 同予者何人 牡丹之愛 宜乎衆矣(희! 국지애 도후선유문 연지애 동여자하인 목단지애 의호중의)
아, 국화에 대한 사랑은 도연명 이후 듣기 드물고, 연꽃에 대한 사랑은 나와 같은 자 얼마나 있겠는가, 목단에 대한 사랑은 마땅히 많으리라.


주돈이(周敦頤, 1017~1073)는 송나라의 유학자요,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고 새로운 유교이론을 창시한 인물이다. 이 글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연꽃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간직했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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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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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연꽃의 영어이름은 'lotus(로터스)'다. 80년대 초 김지하 시인의 책 뒤표지의 작가소개를 통해 '로터스상(償)'의 존재를 알았다.

로터스상은 아시아·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작가대표자 회의였으며 인도 작가의 제창으로 1956년 12월 인도의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아작가회의(17개국 참가)를 그 모체로 한다. 로터스상은 아시아·아프리카의 노벨문학상에 버금간다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김지하 시인의 상징적인 의미,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젊은이들에게는 등불이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연꽃을 보면서 그를 떠올렸다.
80년대 이후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의 모습이 아니라도, 그 누군가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를 지금도 연꽃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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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다. 부처님오신날 연등이 연꽃의 모양이니 연꽃은 불교의 덕목인 '자비'를 그 마음에 담아 피었을 것이다. 대종교의 덕목들, 그것이 가시화된다면 이런 비이슬 혹은 맑은 아침이슬같을 것이다.

며칠째 장맛비가 기승을 부린다. 연꽃은 오전 10~11시 사이에 가장 예쁘게 핀다고 하여 혹시나 기대를 하고 비 오는 중에 시간을 맞춰 그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아무리 물 속에 사는 꽃이라도 며칠째 내린 비에 시달린 듯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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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주돈이의 '애련가' 중에서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진흙에)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지만 요염하지 않고"하는 부분은 문학작품에서도 많이 인용되었다.

특별히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진흙에 물들지 않고'라는 그 부분은 유명한 구절이다. 그리고 이 구절은 숫타니타파경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절과 함께 자주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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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의 시경(詩經)의 "무소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일부를 소개한다.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중략>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중략>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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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아직 맑은 날, 가장 예쁘게 꽃이 핀다는 그 시간에 그를 만난 적은 없다. 비 오는 날, 겨울 날 남은 연꽃의 흔적을 만났을 뿐이다.

그 꽃을 바라보면 착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내 욕심대로 살아가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착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고 나를 돌아보는 것처럼, 이 꽃은 혼탁한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자기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그 말을 온전히 살아가는 연꽃, 그 꽃을 바라보면서 흙탕물 가득한 내 마음을 씻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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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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