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쏘냐"

[서평] 김진의 <노래하는 여전사 윤희순>

등록 2006.07.20 09:05수정 2006.07.20 10:25
0
원고료로 응원
<노래하는 여전사 윤희순> 책 겉그림
<노래하는 여전사 윤희순> 책 겉그림푸른숲
우리나라는 조선말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명성황후도 시해되었고, 머리도 짧게 자르는 단발령이 내려졌다. 온 천지가 어지러웠고, 나라의 앞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국운이 다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라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전국 곳곳의 의병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들은 돈과 일본군 권력에 매수된 관군과는 달랐다. 어느 누구에게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몸이었다.


의병들 하면 으레 제천의 유인석과 춘천의 이소응, 그리고 여주의 박준영이 떠오른다. 또한 장성의 기우만 같은 의병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농민과 광부, 산포수와 소상인 등 서민의병도 있었고, 격문을 쓰고 군자금을 모았던 양반의병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 남자 의병들과 함께 활동했던 여자 의병들도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른바 '안사람 의병'이 그것이다. '안사람 의병'이란 의병활동을 하는 남편들을 도우며 집안 살림살이를 하는 아녀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더 적극적으로는 남편들과 함께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의병 활동에 직접 나선 여인들을 일컫는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있으니 바로 '윤희순'이다. 김진이 쓴 〈노래하는 여전사 윤희순〉(푸른숲·2006)에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녀는 조선말 강원도 의병이었던 류홍석의 며느리였다. 그곳에서 시아버지와 남편 류제원를 도와 의병들에게 밥도 지어주고 빨래도 해 주었다.

하지만 동네 안사람들 모두가 발을 벗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하여 그녀 역시 몸도 지치고 마음도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녀는 그 힘든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것이 바로 <안사람 의병가>였는데, 그 노래를 계기로 모든 안사람들이 힘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왜놈들이 포악하고 강성한들 우리도 뭉쳐지면 왜놈 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쏘냐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있나
의병 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힌들 왜놈 시정 받을쏘냐
우리 의병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안사람들 만만 세라"
(<안사람 의병가>, 46쪽)



그 뒤 윤희순은 숯을 팔아 쌀을 모았다. 때론 동네 방방곡곡을 돌며 군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어떠한 의식도 없이 쓰러져 가는 청년들의 가슴 속에 불을 지폈다. 그렇지만 의병들은 관군에 쫓겨 점차 쇠퇴해 갔다. 총과 포탄도 턱없이 부족했고, 싸우는 군사 기술력도 관군에 비해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일본은 관군을 매수하여 모든 의병들을 진압했고, 조선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의병들은 조선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때에 시아버지 류홍석도 중국으로 가서 항일운동에 몸을 담았는데, 윤희순과 그의 남편도 세 자녀를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 이역만리 중국 땅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곳에서 윤희순은 시아버지와 남편을 도와 항일운동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이름하여 '노학당'이 그것이었다. 노학당의 설립 목적은 오직 애국정신으로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윤희순은 그곳에서 교장 선생직을 맡았다. 그래서 운영자금도 모으고, 또 틈틈이 학생들도 가르쳤다. 그때 지은 노래가 <의병군가>였다.

"나라 없이 살 수 없네 나라 찾아 살아 보세 임금 없이 살 수 없네 임금 찾아 살아 보세
조상 없이 살 수 없네 조상 찾아 살아 보세 살 수 없다 한탄말고 나라 찾아 살아 보세
전진하여 왜놈 잡자 남김없이 모두 잡자 만세만세 의병 만세 청년 의병 만만세"
(<의병군가>, 90쪽)


그러나 세월을 이길 수 없었던지 1913년 겨울, 시아버지 류홍석은 일흔 셋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더욱이 시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 2년 뒤인 1915년엔 남편 류제원 마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일본 경찰들은 노학당에 들이닥쳐 독립군들을 해체시켰고,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큰아들 돈상이 마저 일본경찰에 의해 죽었다.

그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 윤희순은 차마 뜬눈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었다. 아픔과 고통이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컸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남은 두 자녀만큼은 조선의 독립을 이루길 바랐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35년 8월 1일,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해주 윤씨 일생록>을 마치고 난 윤희순은 한 맺힌 목소리로 <안사람 의병 노래>를 중얼거렸다. 윤희순은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머금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요. 우리 의병 최고로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120쪽)

으레 조선말에 활동했던 의병들을 이야기하면 남자들을 떠올리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곳곳에는 안사람 의병들도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다. 그 가운데 양반 가문의 규수라고 뽐내지도 않고, 제 한 몸 던져 의병들을 돕고, 또 손수 의병가를 지어 의병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폈던 윤희순 이야말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여전사이다.

여전사 윤희순은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 정신만큼은 이 시대에까지 흘러오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가슴속에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그녀가 불렀던 의병가 역시 그 시대의 물결에 잠든 것이 아니라 세차게 굽이치는 파도처럼 오늘 이 시대에까지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그녀가 불렀던 의병가를 따라 부르다보면 분명 나 자신이 그 시대에 서 있는 또 한 사람의 의병이 될 것이다.

노래하는 여전사 윤희순

김진 지음, 김호민 그림,
푸른숲주니어, 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3. 3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4. 4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5. 5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