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도보여행의 준비와 시작

[파르티잔의 지리산 도보여행 ①] 도보여행을 시작하며

등록 2006.07.24 15:38수정 2006.07.2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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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200년 전에 태어나서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무엇을 먼저 준비 할까? 아마 신발이 아니었을까? 그때만 해도 짚신을 신었을 테니 짚신을 준비하는 것이 여행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당시 여행의 기본은 걷는 것이었을 것이고, 걷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한 보행과 발을 보호할 수 있는 신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여행자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 국내 여행을 떠난다면 자동차 점검을 해야 할 것이다. 아니며 기차표를 예약하거나 더 멀리 떠나는 사람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는 것부터 여행을 준비 할 것이다.

전북,전남,경남 그리고 5개 시군, 둘레 800리에 이르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걷기 시작했다.
전북,전남,경남 그리고 5개 시군, 둘레 800리에 이르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걷기 시작했다.조태용
요즘 여행은 점점 그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인도의 캘커타나 바라나시는 방학만 되면 한국 배낭여행객들로 넘친다고 한다. 도쿄에 우에노 시장에서도 한국인 여행자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도쿄를 순환하는 야마노테선 안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한국의 시골에서 젊은 사람을 찾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다.

먼 거리 여행은 그 거리만큼, 이동 수단의 속도만큼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비싼 비행기 티켓을 준비해야 하고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많은 노동시간이 필요하며,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서도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 반대로 거리가 가깝고 이동 속도가 느릴수록 에너지 소비량은 줄어든다. 또한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도 짧아진다.

가장 적은 에너지로 시작할 수 있는 여행은 단연 도보여행이다. 도보여행은 가장 쉽게 출발할 수 있다. 표를 구할 필요도 없고, 티켓을 예매할 필요도 없다. 집 앞을 떠나 자기가 걷고 싶은 곳으로 방향을 정하고 걸어가 보는 것만으로도 도보여행을 첫발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첫 번째 도보여행을 해본 적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초등학교 하굣길이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집에서 3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초등학생이 걸어가기에는 꽤 먼 거리였다. 보통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통학로는 나의 오랜 선배들이 가장 효율적인 길이라고 이미 선정한 규정된 길이 있었지만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는 하굣길에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즐겼다.


매일 반복되는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가려는 의지만 있다면 야산으로 이어진 길로만 갈 수도 있었고, 논둑길로만 갈 수도 있었다. 때로는 낮은 구릉지와 밭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 것도 좋았다.

야산에는 비가 오고나면 온갖 색깔의 버섯들이 고개를 들어 올렸고, 논둑길에는 개구리와 뱀들이 내 발등을 타고 놀았다. 가끔은 개울에 고개를 숙이고 붕어나 미꾸라지를 잡은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2005년 일본 가고시마역 앞.
2005년 일본 가고시마역 앞.조태용
미풍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강아지풀을 뽑아 입에 물고 걷는 것을 좋아했다. 강아지풀 하나를 잎에 물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할 때면 내가 마치 아마존을 탐험하는 탐험가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첫 도보여행은 그렇게 추억되어 있는데 그 때 생긴 버릇이 혼자말하기다. 지나가는 풀과 새 그리고 바람에게 혼자서 말을 걸었다. 손으로 풀을 쓰다듬으면 안녕하고 말하면 풀도 고개를 숙이거나 머리를 흔들며 대답하는 것 같았다. 새는 무심히 날아갔지만 바쁜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친구는 바람이었다. 앞에서 불면 부는 대로 뒤에서 불면 부는 대로 바람은 내가 길을 걷고 있는 동안 항상 함께 했다. 도보 여행자에게 바람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 거센 바람은 성질 사나운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도보여행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나 시작할 수 있다. 평소에 걷던 길을 다른 복장으로 걷는 것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데 여행자의 모습으로 평소에 걷던 길을 걸어보면 또 다른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동네 숲길을 걷는 것도 여행의 시작이 될 수 있다.

2004년 일본에서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 휴일에는 장거리 마라톤 여행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매일 달리던 길을 벗어나서 지칠 때까지 달렸는데 어느 호숫가에 도착한 적도 있었다.

그 호숫가에는 나처럼 달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그들과 호숫가 주변을 달리다가 다시 달려온 길로 되돌아온 적도 있었다. 5시간 정도 되는 짧은 마라톤 여행이었지만 좋은 추억을 남겨 주었다. 호숫가에 불어오던 바람과 운동화를 통해 전해지던 부드러운 흙길의 느낌들 그리고, 달리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눈빛들 그리고, 생소했던 풍경들은 지금도 눈에 보이는 듯하다. 몸으로 직접 느낀 것은 오래가기 마련이다.

아. 그리고 보니 여행의 동반자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신발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신발을 찾기 시작했다. 여행의 동반자인 신발의 상태를 살폈다. 도보여행을 떠나려고 한다면 200년 전의 여행자가 그랬듯이 먼저 신발을 살펴야 한다. 신발은 무엇을 신어도 좋다. 걷는 동안 자신의 발을 편안하게 해주고 보호해준다면 말이다.

하지만 운동화를 신는다면 쿠션이 3cm 이상 되는 신발을 권한다. 걷기에 좋은 운동화는 가벼운 운동화가 아닌 쿠션이 좋은 운동화기 때문이다.

충분한 쿠션과 편안한 신발을 선택했다면 복장을 살펴보기 바란다. 땀이 많이 흐를지도 모르니 땀 흡수와 건조가 잘되는 옷이 있다면 좋겠다. 일반적인 등산복 정도면 걷기 여행준비는 다 된 것이다. 그렇다고 꼭 등산복이 없는데 구입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옷을 준비하기 위해 여행을 미루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지금 떠나고 싶다면 지금 입고 있는 복장 그대로 떠나면 된다. 새로운 옷을 구입하기 위해 시장을 가는 동안 당신에게 다른 일이 생겨 여행을 떠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옷이 아니라 도보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옷보다 중요하다. 이제 모둔 준비가 되었다면 신발을 신고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걸으면 된다. 그렇게 지리산 도보여행도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농산물을 구입할 땐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우리 농산물을 구입할 땐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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