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가 첫 거부권 행사한 까닭은?

[해외리포트] 미국 줄기세포 연구 어디로 가나

등록 2006.07.25 09:37수정 2006.07.2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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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부시 대통령이 19일 백악관에서 줄기세포 연구 정책에 관한 연설을 한뒤 인공수정으로 낳은 아기들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19일 백악관에서 줄기세포 연구 정책에 관한 연설을 한뒤 인공수정으로 낳은 아기들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하고 있다. ⓒ 백악관 홈페이지

2001년 2월 취임한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한 지도 어느덧 5년 반이 넘었다. 이 기간 동안 부시가 의회에 거부권(veto)을 행사한 적은 몇 번일까? 단 한 번이다. 그 유일한 거부권 행사가 지난 주 수요일(현지 시간 7월 18일)에 나왔다.

그동안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에 부시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으르렁댄 것이 150번이 넘었는데 실제로 실력행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대체 무슨 법안이었을까, 부시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와 마찰을 불사하면서까지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바로 줄기세포 연구 지원법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겨울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줄기세포 연구가 이번 부시의 거부권을 기폭제로 미국에서도 논쟁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의회 "연구 지원하자"-부시 "절대 안 된다"

지난 7월 18일, 미국이 술렁댔다. 미국 상원에서 줄기세포 연구 지원을 확대하자는 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미국에서는 줄기세포 연구를 연방 정부가 극히 제한적으로만 지원해왔다. 법으로 그렇게 되어 있었다. 보수세력을 등에 업고 당선된 부시 대통령은 2001년 8월,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연방정부가 줄기세포 연구를 극도로 제한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 날짜 전에 확보된 줄기세포 60개 라인에 대한 연구는 지원하지만 그 날짜 후에 얻은 줄기세포 연구는 지원하지 않겠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까지 미국 연방정부가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견지한 기본 입장이었다. 가장 막대한 지원을 하는 연방정부가 돈줄을 끊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엄격한 규제를 실시하는 것은 미국 줄기세포 연구자들에게는 악몽이자 시련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상원이 줄기세포 연구에 연방정부의 지원을 확대하자는 법안을 만들어 입법화한 것이다. 배아복제에서 얻은 줄기세포 연구도 이제 새로 허용하자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상원에서 이 법이 통과될 때 투표 분포도는 63-37. 각 주마다 2명씩 상원 의원이 모여서 구성한 미국 상원에서 63명이 찬성표를, 37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주목할 점은 이제까지 부시와 입장을 같이 하며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던 공화당 의원들 중 전향한 이들이 꽤 된다는 점이다. 원래 민주당은 줄기세포 연구에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공화당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국 의회에서 찬성표가 더 많이 나왔다는 사실은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바뀐 공화당의 시각을 대변한다.

부시 대통령은 즉각 의회 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배아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연구는 '살인'이라고 재차 규정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인 7월 19일, 재빨리 거부권을 행사했다.

공은 다시 의회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하원. 하원에서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다시 거부할 수 있다. 문제의 법안을 다시 표결에 붙여 하원의 3분의 2 이상이 대통령의 뜻과 다른 쪽으로 투표를 하면 대통령의 거부권은 효력을 잃게 된다.

뚜껑을 열자 235명이 줄기세포 지원법에 찬성을 했고 195명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표가 하원 의원 수의 3분의 2를 넘지 않으면서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이 효력을 갖게 됐다.

상-하원 모두 찬성... 공화당도 지지

표 분포도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상원, 하원을 가리지 않고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찬성표가 더 많다. 이는 작금의 미국 민심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다.

얼마 전 <퓨 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민주당 지지자라고 자신을 밝힌 사람들과 지지 정당이 없다고 밝힌 사람들 중에서는 3분의 2가 줄기세포 연구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원래 민주당이야 줄기세포 연구에 호의적이었으니 그렇다고 해도 놀라운 수치는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에게서 나왔다. 공화당 지지자들 중에서도 반이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한다는 대답이 나온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가 얼마만한 성과를 낼 지, 그리고 언제 상용화가 될 지는 대단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 연구가 담지한 큰 가능성에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거는 것이다. 이제는 작고한 수퍼맨 크리스토퍼 리브는 물론이고 치매를 앓고 있는 레이건 대통령의 아내인 낸시 레이건 등은 줄기세포 연구를 촉구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여론이 이러니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도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도 줄기세포 연구가 쟁점으로 부상하리라는 전망이다. 그래서 이번에 부시가 거부권을 행사하자 공화당에서도 볼멘 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왜 친정과의 마찰도 불사하며 첫 거부권을 놓았을까?

미국 언론에서는 백악관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행보라고 본다. 업무수행 지지도가 40%를 넘지 못할 정도로 바닥인 부시 대통령이 이번 거부권 행사로 핵심 지지층인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점수를 땄다는 것이다.

그동안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 수행과 이민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보수층에서 불만이 심했다. 그런데 이번 건은 그들의 맘을 흡족하게 하는 효과를 내리라 <워싱턴포스트>는 예상한다.

또한 부시는 이번 거부권 행사로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이득도 얻게 됐다. 취임 전부터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가 도덕 윤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공언해 온 그가 다시 자신의 신념을 만천하에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여론은 뭐라 하든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그의 이미지가 다시 한 번 빛나는 순간이다.

어쨌든 부시는 더이상 선거에 나갈 일이 없는 것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부시의 자세가 이렇다보니 부시가 백악관에 버티고 있는 동안은 미국의 큰 손, 연방정부가 줄기세포 연구를 대대적으로 돕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번 거부권 행사를 놓고 미국 여론이 심상치 않다. 백악관에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과 따가운 불만이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11월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이 사안이 어떻게 논의되고 여론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미국에서의 줄기세포 연구는 또다른 분수령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연방 정부가 지원을 안 한다고 미국 전체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물론 절대 아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때운다고, 미국의 몇몇 주는 연방정부를 대신해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캘리포니아 주다. 캘리포니아 주는 2004년 지방선거에서 주민들에게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 때 캘리포니아 주민들 59.1%의 찬성을 받아 통과된 법안(proposition 71)에 따라 캘리포니아 주는 향후 10년간 30억달러(한화로 약 3조원) 기금을 조성해 줄기세포 연구에 지원하기로 했다.

그 후 캘리포니아에서는 구체적으로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공청회가 지루하게 열리고 있다. 민주주의 절차와 투명한 법 운용을 위해서이기는 하지만 주법이 제정된 지 1년이 넘도록 아직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줄기세포 연구자들은 답답함을 표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하버드 대학은 얼마 전 물러난 서머즈 전 총장의 지원 하에 줄기세포 연구소(Harvard Stem Cell Institute)를 개관했다. 또 며칠 전에는 부시의 거부권 행사에 자극을 받은 일리노이 주지사가 주지사 단독 권한으로 줄기세포 연구 지원금을 책정했다. "연방정부를 바라보고 있다가는 도무지 줄기세포 연구에 진척이 없겠기에"라는 것이 그의 변이다.

부시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보수층의 입장을 대변했지만 아무래도 미국은 줄기세포 연구 지지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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