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 기댄 할머니들의 지혜로운 삶

[갯살림]경기도 시흥시 오이도갯벌-하나

등록 2006.07.30 17:52수정 2006.08.0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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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칠 것 같던 장마 비가 다시 북상하면서 오이도 갯벌에도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물이 빠지기 시작한 갯벌에는 칠게, 길게, 털콩게들이 먹이사냥에 바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잿빛 갈매기들은 포구주변을 날며 높이 나라 오르는 엄마 갈매기의 하얀 날개가 부러운 듯 고개를 연신 쳐들어 댄다. 녀석들도 이번 가을만 건강하게 넘기면 잿빛날개 대신 하얀 날개를 갖고 높이 오를 것이다.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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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까운 오이도는 주말이면 조개구이를 먹기 위해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젊은 연인들은 물론 중년의 남녀들도 짝을 이루고 바다를 보며 술잔을 기우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때로는 그 술자리가 아침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우산을 쓰고 갯일을 나가는 할머니들이 잘 보이는 2층 조개구이 집에서 두 쌍의 남녀가 아침 술을 마시고 있다. 할머니를 따라 갯벌로 나가며 젊음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일까.


비오는 아침에 오이도 갯벌을 찾는 노인들은 대부분 70대 할머니들이다. 육지에서 이들은 할 일을 찾기는 어렵다. 그저 죽음을 앞둔 천덕꾸러기 노인에 불과하지만 갯벌에만 나가면 젊은이들 저리가라며 뛰어다닌다. 평생을 갯벌과 함께 살아온 삶이 그대로 갯벌이기 때문이다. 오이도가 육지가 되기 전에 이들은 바다와 갯벌만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지금은 그들의 평생 삶을 공업단지에 내주고, 노구를 이끌고 가까스로 살려낸 방조제 옆 갯벌을 드나들고 있다.

김준
이들이 잡는 것은 모시조개다. 작업을 하는 곳은 마을어장이다. 어촌계에서 갯벌을 열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열지 않지만 용돈이라도 하겠다고 나서는 노인들의 발길을 붙들 만큼 냉혹하지 못한 모양이다. 갯일을 하는 어민들이 흔히 신는 노란비신(장화)도 할머니들에게는 버겁다. 우선 할머니 발에 꼭 맞는 비신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알락꼬리 도요새의 다리마냥 마른 종아리는 비신을 붙잡지 못하고 걸을 때마다 덜렁거린다.

게다가 가무락이 잘 자라는 펄갯벌은 할머니 발에서 비신을 뺏어가기 일쑤다. 그래서 이곳 갯일을 나온 할머니들은 손자들의 운동화 끈을 늘 준비한다. 그리고 노란비신을 신고 운동화 끈을 이용해 발목과 발을 질끈 동여맨다. 20여 년 전 시화호 갯벌이 막히기 전 할머니들이 지금의 이주단지가 아닌 오이도 안마을에서 살 때 할머니의 다리도 통통하고 보기도 좋았을 것이다.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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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갯벌에는 오이도 할머니들 열댓 분이 호미로 갯벌을 건드리며 뭔가 잡고 있다. 가만히 이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꼭 도요새가 물 빠진 갯벌을 콕콕 찍어대다 재빠르게 갯지렁이나 칠게를 잡는 모습과 흡사하다. 아니 똑 같다. 할머니들은 호미 끝으로 갯벌을 톡톡 건들이다 갯벌을 판다. 그러면 어김없이 가무락이나 동죽이 있다. 신기한 일이었다.

오이도 갯벌의 할머니들은 잠시 작업에 가무락을 그릇에 가득 잡아냈다. 어제 아이들과 함께 서울에서 갯벌체험을 하기 위해 왔던 엄마들이 가무락은 고사하고 흔한 동죽을 잡는데도 한참 시간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솜씨였다. 갯벌을 모조리 뒤집어 조개를 찾는 서울엄마와 조개가 있는 곳만을 파는 오이도 할머니의 차이는 단순히 다름이 아니다. 몇 번이고 그 모습을 구경하다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할머니들은 가만히 걸음을 옮기며 이곳저곳을 톡톡 건들이다 갯벌 속에서 숨어 있던 조개들이 위험을 느끼며 물을 쏘아 올리며 입을 닫는다는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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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찾는 것은 갯벌을 건들 때 나타난 구멍의 변화였다. 멀어서 반응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구멍을 통해서 올라오는 물의 형태를 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남도 끝자락에 있는 아름다운 섬 '관매도' 해수욕장에서 희한한 방법으로 백합을 잡던 관광객을 봤던 기억이 났다.


모래가 곱고 곰솔 숲이 아름다운 관매도 해수욕장은 최근 많이 알려져 여름철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장마가 한창이던 10여 일 전 관매도를 찾았다. 물이 빠진 모래사장에서 관광객 두서너 명이 자신의 키보다 큰 대나무를 세워 지팡이처럼 모래펄 이곳저곳을 쿵쿵거리며 배회하는 것이었다. 뭘 하는 것일까. 지난 여름에 해수욕객들이 잃어버린 반지나 값나가는 것들을 주우려 다니는 것일까. 궁금증은 얼마 되지 않아서 풀렸다. 이들이 찾는 것은 백합이었다. 대나무로 두들기는 것에 놀라 백합이 구멍 밖으로 물줄기를 쏘아 올린다는 것이다.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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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을 서울엄마들처럼 모두 뒤집어 조개를 잡는다면, 조개잡이로 먹고 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갯벌도 지금처럼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갯벌은 인간들만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갯벌생물들 그리고 서해바다의 큰 고기들이 알을 낳고 자라는 소중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간을 마구 헤집는다고 생각을 해보자. 몇 년 지나지 않아 갯벌은 모두 망가지고 말 것이다. 할머니들이 필요한 것을 잡아내는 지식은 '내년에도 갯벌에서 조개를 잡아야 한다'는 삶의 과정에서 터득한 지혜였다. 이것이 육지 것과 섬사람들이 바다와 갯벌을 대하는 차이였다.

이렇게 조개를 잡고 갯지렁이와 칠게를 잡는 방법은 인간들이 하기 이전에 도요새를 비롯한 새들이 갯벌에서 먹이를 찾던 방법이다. 인간은 이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배웠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마치 고래들이 새끼를 낳고 미역을 먹는 모습을 보며 산모들이 미역국을 먹었듯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라도닷컴-섬섬玉섬'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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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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