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4회

등록 2006.08.04 08:14수정 2006.08.0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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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는 이상한 인물이었다. 그가 이상하다는 것은 이 세상사람 모두가 알고 있었다. 특히 무림인이라면 그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는 덩치가 컸다. 그리고 무공이 고강했다. 얼마나 고강한지 자세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강하다고 알려진 몇 명의 고수를 몇 초 안되어 쓰러뜨렸다. 그에게 쓰러진 고수는 꽤 이름난 고수가 아니라 정말 찬란한 위명을 가진 고수였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위명을 높이기 위해 비무(比武)를 하러 다닌다거나, 천하제일이란 위명에 목을 매단다거나 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 따위 것은 개나 물어가라고 놔둘 사람이었다.


그는 장난스런 사람이었다. 그의 장난기는 너무나 심해 그에게 장난을 당한 사람이라면 그를 다시 쳐다보지 않을 정도였다. 그의 호기심과 괴팍스런 장난기는 종종 강호에서 엉뚱한 일을 만들어냈고, 그런 일들은 호사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세인들의 입을 바쁘게 만드는 일이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지만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에게 옳고 그름의 구별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정파니 사파니 하는 것도 그에게는 우스운 일이었고, 인간의 도리니 양심이니 하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그에게는 친구가 많았다. 아주 다양한 친구들이 많아서 그는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친구들과 항상 어울릴 수 있었다. 반면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예 만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비는 사람도 꽤 많았다. 그를 만나면 친구든 아니든 일단 뒷골이 쑤셨다. 하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그는 할 일 없이 중원을 누비는 사람이었다. 목적도 없이 사사건건 남의 일에 끼어들어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곤 하는 사람이 그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광검(狂劍)이라 불렀다. 그의 검을 본 사람은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 보기에 그는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정말 그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광검이란 인물은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이런 궁금증을 누르고 갈 길을 가버리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냥 가버린다면 그 날 부로 광검이란 명호를 떼어버릴 사람이었다.


"저 자식들 명성이야 이미 들었지만 정말 골 아플 정도로 끈질기게 쫓는군. 그런데 저 자식들에게 쫓기는 저 놈은 도대체 누구야? 족히 사나흘은 쫓겼을 텐데 아직까지 버티고 있으니 대단한 놈인데…?"

그의 검미가 치켜 올라가고 코끝이 실룩거린다는 것은 이미 이 일에 흥미가 생겼다는 의미였다. 반드시 이 일에 끼어들 것이라는 전조(前兆)였다. 아니 이미 사흘 전 저녁부터 광검의 관심거리는 오직 저 일이었다. 그와 동행하고 있던 사내는 그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 갈 길이 바쁘오."

몸집은 광검보다 작았지만 단단하게 보이는 삼십대 후반의 사내였다. 둥근 눈과 주먹코를 가지고 있어 유순해 보였지만 굵은 목과 사각 턱이 사내다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동시에 매우 강인한 체력을 가진 인물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직 충분해."

옆에 있는 사내를 바라보지도 않고 말하면서 그의 눈은 멀리 한 인물을 뒤쫓고 있는 세 명의 인물들의 움직임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신법은 특이하면서도 놀라웠다. 신법만으로도 능히 일류고수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민첩하고 쾌속했다. 더구나 그 은밀함이란 일반 무림문파의 신법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다른 생각 않고 달려도 약속된 시각에 맞출까 말까하오, 더구나 저들 일에 끼어들었다간 정말 귀찮은 일이 생길지 모르오."

사내는 광검이 행여 다른 생각을 할까 두려운 눈치였다. 이번에 가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아니 오라고 부른 그 인물을 생각하면 한시도 지체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천하가 좁다고 천방지축 날뛰는 광검이라도 그 인물에게는 예의를 지켜야 했다. 더구나 그 인물이 광검을 부른 것은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부탁이라니… 부탁할 일이 있으니 형제들과 함께 내일 저녁까지 들러주셨으면 한다니… 그 인물도 부탁이란 것을 할 줄 아는 것일까?

"약속이야 그쪽에서 한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니잖아. 기다릴 테면 기다리고 싫으면 말래지."

광검의 흥미는 오직 저것인 것 같았다. 어차피 오는 길이어서 저들에게 흥미를 보이는 것 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일로 늦어지게 되면 사실 좋을 것이 없다. 아니 좋을 것이 없는 게 아니라 그들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이다.

그 인물은 그저 눈살 한번 찌푸리면 그만이겠지만 그 인물을 존경하는 수하들과 무림인들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간들 가운데는 종종 정작 윗사람 자신조차도 원하지 않는 과장된 충성심을 보이고자 물불을 안 가리고 일을 저지르는 부류가 있다.

그런 인간들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귀찮기도 할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고운 눈으로 보고 있지 않는 무림인들은 자신의 형제들을 어떻게든 매장시키려 들지도 몰랐다.

"형님…!"

"알았어… 알았다구… 안 되겠다."

건성으로 대답하다가 광검은 갑자기 몸을 날리려 했다. 사내는 그런 광검의 소매를 급히 잡았다.

"이 자식은…? 내가 네 마누라라도 되냐? 옷깃은 왜 잡아?"
"형님 지금 제정신이우?"

"나…? 멀쩡해. 항상 똑 같잖아."
"저기 뛰어가 어쩌게?"

그들은 이백 장 정도 떨어진 계곡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급하게 짙은 회색 옷을 입은 자가 숲으로 뛰어들고 십여 장 뒤에서 세 명의 흑의인들이 빠르게 뒤쫓아 사라지고 있었다.

"저런 장면을 놓치고 지나갈 순 없잖아. 곧 붙을 것 같은데…."

광검은 이미 소매를 잡은 사내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산비탈을 내려가는 광검의 속도는 빨랐다. 하는 수 없이 남아 있던 사내 역시 몸을 날렸다. 어느새 광검의 모습은 산비탈의 반쯤 내려간 곳에 있었다.

"또 사고 치겠군."

자신도 사고라면 뒤지지 않을 정도로 치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대형(大兄)은 움직임 자체가 사고인 사람이었다.

"어 헉--!"

그들이 사라진 숲 속에서 단발마의 비명이 조용한 계곡을 울렸다. 급히 몸을 날리는 사내의 얼굴에도 의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누가 당했을까? 쫓기던 자일까? 아니면 쫓던 자 중 한명일까?

그 역시 궁금증이 일었다. 그러다 그 비명이 쫓던 자 중에 한 명이 지른 비명이라고 깨닫게 된 것은 그 뒤에 터져 나온 또 하나의 비명 때문이었다. 쫓기던 자가 죽었다면 그 뒤에 비명이 터져 나올 리 없기 때문이었다.

'한 명 남았겠군. 하지만 쫓는 자들은 저리 쉽게 당할 자가 아니던데…?'

놀라운 일이었다. 대형의 궁금증보다 이제는 자신이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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